나는 꿈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명확하진 않았다.
그래서 누가 "꿈이 뭐예요?"라고 물어보면 그저 두리뭉실한 대답만 내놓았다.
'나만의 프로그램으로 나만의 센터를 갖는 것.'이 나의 꿈.
내가 경험한 것들을 담은 나만의 것이며,
일반적인 헬스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근데 그 안의 소프트웨어는 솔직히 모르겠고,
계속 찾는 중이었다.
나의 경험이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으니
내용물은 계속 달라졌다.
뚜렷하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없던 걸 하고 싶었으니까.
나의 꿈은 마음속 한구석에 두고
그저 현재 있는 곳, 내게 주어진 일을 다하기에도 벅찼다.
내가 있는 곳에 적응이 되어 편안해지면
환경을 바꿔가며 또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을 했다.
돌이켜보니 한창 적응할 때는
추가적으로 더 무언갈 할 수 있지 않았다.
그 이상을 시도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늘 햇병아리였기에 원하는 역할이 주어지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내 역할 이상을 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
그것이 자만일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냉정하게 말하면
내 의욕과 달리 사회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내 능력만큼의 역할만 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인문학을 공부하며 알게 된 사실.
결국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주어진 일에 집중하는 것뿐이었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해야 할 일을 그냥 해내는 것.
그게 전부였다.
그럼에도 고마운 점이 하나 있다면,
내가 자만과 불안 사이를 오가면서도
해야 할 일 자체를 놓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전 자신감이 없어요."라고 말하면서도
행동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자신 없어 보였지만
그 말 뒤에는 언제나
'그렇지만, 해볼래요.'라는 문장이 숨어 있었다.
지금 와서 보면 그것이 겸손한 척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나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태도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요즘의 나는 말과 행동, 태도 하나하나에서
서로 다른 두 얼굴을 동시에 발견이 된다.
지금은 나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점점 또렷해지고 있다.
그것을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분명해지고 있다.
그리고 예전부터 함께해 온
'그냥 하는 마음'이 여전히 곁에 있다.
그래서 믿게 된다.
이렇게만 하면 되겠다고.
대신 더 깊게만 파본다.
오히려 애쓰지 않아서 좋고,
열정이 줄어든 것 같아서 더 편안하다.
내가 말하는 열정은 장작에 불을 붙여 활활 타오르게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마음속 장작은 쓰면 쓸수록 소모된다.
이제는 굳이 타오르지 않아도 괜찮다.
태울 장작이 없어도,
태양처럼 스스로 빛과 열을 내는 상태에 가깝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연소시키지 않아도 충분하다.
역할은 내 능력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니 내가 앞에 나서지 않아도 괜찮아졌다.
내가 해야 할 일만 하면 되어서 오히려 좋다.
반대로,
만약 어떤 역할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그건 내가 해낼 수 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일 테니
그 또한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나는 또 한 단계 자라 있을 것이다.
인문학을 만나니 내가 걸어온 길이
하나씩 해석되기 시작했다.
세상을 배우고
인간을 알고,
그 안에 나를 이해하는 일.
삶의 본질과 세상의 이치를
내 삶에 대입해 보기 시작하자
마음에 평안이 생기고
방향이 잡히기 시작했다.
정말 삶이 단순해지는 느낌이다.
모든 것은 과정이다.
세상을 공부하고
그것을 삶에 적용하며 살아가면
그 과정의 방향은 훨씬 또렷해진다는 게
느끼는 요즘이다.
07화 글이 책으로, 책이 낭독이 되어 대학로에 섭니다.
https://brunch.co.kr/@fd2810bf17474ff/1742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c3Z4R2VoCVZjnu1j7FOnxVFrJ1a5LaNKu4G7H4Q3GRHTvBsQ/viewfo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