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자신감 좀 가져."
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다.
선배가, 상사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속으로는 반문했다.
'없는 자신감을 어떻게 있는 척해요.'
그러면서 난 늘 "전 잘 못해요."
이 말을 비교적 쉽게 했다.
잘하지 못하는 나를 숨기기 위해
그 사실을 먼저 꺼내면서
진짜 기량을 펼치지 않으며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었다.
최대한 발휘 후에 못한다는 말은 아프니까.
내가 먼저 못한다고 말하면서 의기소침해지면
용기를 주는 상대의 피드백에
상처를 조금 덜 받을 수 있었으니까.
자신감 없음을 내보인 이면의 정체가 이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문학을 공부해가면서
나에게 하나 생긴 것이 있다면,
뻔뻔함이었다.
여전히 잘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니
태도가 달라졌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해 드러내기로 했다.
못하는 상태가 보이더라도
피드백을 받으면
나는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뻔뻔해졌다.
예전엔 몰랐다.
'제가 과연 할 수 있을까요?'는 말도 자주 하곤 했는데.
이 말 안에는 결국, 처음이어도
나는 잘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믿음.
어쩌면 그 안엔
자만이 함께 들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동시에, 나는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하나의 인식을 발견하게 되었다.
자신감 없어 보이는 모습이 곧 겸손이고,
자신감 있어 보이는 태도는 자만이라는 생각.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해석에 가까웠다.
자신감이 있어 보이느냐, 없어 보이느냐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일 뿐이고,
겸손과 자만은
그 이면에 자리한 태도라는 사실.
나는 그동안 본질을 보지 않은 채
현상에만 연연해 왔다는 걸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나는
'내가 부족하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는
믿음 아래에서 부족하든 말든 내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내보이고 다듬고 개선하면
나는 결국 더 나아질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겉으로 보이는 태도보다
내가 어떤 마음을 지니고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로 했다.
겸손한 마음을 항상 지니고 살자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그런 미덕을 계속 키워나갈 나를 믿기로 했다.
또한 나 자신을
하나의 얼굴로 단정하지 않고,
여러 가능성을 가진 사람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부족하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순간을 회피하지 않고
진심으로 집중해 본다.
연습에 집중하는 태도는 예전과 같다.
달라진 건 그 연습을 대하는 나의 얼굴이다.
나는 못난 나를 인정하며 드러냈을 뿐인데
오히려 주변에서는
나를 더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봐준다.
이 글은 인문학을 공부하며
나의 인식이 달라지고, 넓어지며
그 인식의 변화가
선택을 바꾸고
결국 행동을 바꾸어 온
하나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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