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살고 싶다는 간절함은 늘 내 안에 있었다.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며 사는 삶.
부모님은 "네 인생은 네가 알아서 하라"라고 말했다.
그 말은 자유이기도 했지만,
정해진 것이 없다는 뜻이어서 막막하기도 했다.
가정 밖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를 조금 별난 아이로 보았다.
열심히는 사는데, 무엇을 향해 가는지는 모르는 사람.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자주 내 미래를 궁금해했고,
'좀 피곤하게 산다'는 말도 적잖이 들었다.
나는 결국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선택해 왔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이 늘 흔들렸다.
인생 선배들의 확고한 주관으로 '이게 맞다'라고 말할 때면
그 말이 정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주관을 강요하는 사람을 싫어하면서도,
이상하게 그런 사람에게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늘 내 마음의 소리에 손을 들어주었다.
쎄하다고 느껴질 때는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마음이 가는 방향으로 가되,
그 과정은 늘 쉽지 않았다.
나는 줏대 없는 사람은 아닐까,
왜 이렇게 자주 흔들릴까.
분명 여기 있었는데,
나는 계속 나를 찾으러 다니고 있었다.
마치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맡았던 역할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책임져야 한다고 믿었던 상황들.
그 모든 선택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보다는
점점 더 나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나에게는 삶의 기준이 필요했다.
남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
그 기준 안에는 반드시 마음의 평화가 있어야 했다.
인문학을 배우며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착한 삶이 아니라 선한 삶이 해답이었다.
내가 말하는 선은 옳은 방향 그 자체인데,
정답이 없어서 많은 질문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이 길은 쉽게 택하지 못한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햐기 때문이다.
이미 알고 있지만 마주하려니 아팠다.
피하는게 편하기에 그렇게 살아왔나보다.
그러나 인문학을 가까이할수록,
마음이 편해졌고
삶이 훨씬 단순해졌다.
하나 읽고, 하나 생각하며 나누고,
하나씩 삶에 옮겨보는 일.
그 과정을 반복할수록
선택해야 할 것은 줄어들고,
지켜야 할 것만 남았다.
생각은 오히려 비워졌고,
덕분에 결정은 더 빨라졌다.
무엇을 해야 할지보다
무엇을 지키면 되는지가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삶의 정답은 없다.
어디로 가도 내 삶과 연결되니 상관없어졌다.
하지만 삶에는 방향이 있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그 길 위에서 나는 평정을 찾아가며 살아가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세상의 이치대로 살아보는 것.
그러면 삶은,
애쓰지 않아도 조금씩 고요해진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건
무언가를 더 잘 알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모르는 게 더 많아지는 일이며,
삶의 소음을 줄여가는 일이었다.
정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인문학은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던 나를
애쓰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본성대로 나답게 사는 쪽,
옳은 방향을 선택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