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해 냈을 때가
사실은 가장 흔들리기 쉬운 순간이다.
기쁘고, 안도되고,
조금은 들뜨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이제는 쉬어도 될 것 같고,
잠시 흐트러져도 괜찮을 것 같아진다.
키루스는 경고했어. 가진 것을 잃어버리는 고통이 가지기 위한 고통보다 더 힘들다고, 성취를 지속적으로 이어가야만 더 큰 성취로 영속되겠지. 무엇이든 영원한 것은 없지만 무엇이든 '번영'이라는 자체목적을 가진단다. 즉, '성취'가 영속적으로 번영의 방향으로 향하게 하려면 '지속'이 전제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성취'한 그 순간, 너의 자세가 너무나 중요하지. 그러니 성취한 그 지점부터 너는 더 큰 꿈을 꾸고 매일 어제 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어 보렴.
(중략)
이렇게 네가 '지속'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고 하루하루 움직이면 어느 순간 '절제'라는 단어는 '지속'이라는 단어로, '지속'은 '영속'이라는 단어로 변화된단다. 그렇게 절제가 지속이라는 단어로 바뀌는 순간 절제할 필요는 없어져.(주)
이 말이
그 지점을 경계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성취에 취하지 말고,
그저 이전과 같은 자세로 하루를 이어가라고.
성취 이후에도
루틴이 바뀌지 않고,
호흡이 달라지지 않고,
삶의 속도가 갑자기 튀지 않는 것.
내 식으로 표현하자면,
'그냥' 이어가는 담담함이 성취를 일회성이 아닌
아예 삶의 일부로 만든다는 얘기를 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특히,
‘지속에 관점을 옮기면 절제는 필요 없어질 수 있다’
이 문장에서
나는 오래 머물렀다.
성취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마찬가지 같다.
나의 삶의 의미에 맞는 방향으로
기쁜 날이든 슬픈 날이든
그저 묵묵히 이어간다면,
그건 억지로 애쓰는 일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흐르는 삶이 된다.
맞다.
그냥 이어가면 되는 거였다.
올해의 연말은 유독 연말 같지 않다.
한 해를 잘 마무리해야 한다거나
새해를 힘차게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도
딱히 들지 않는다.
아무튼 새해에도
내가 삶의 기본으로 삼기로 한 것들,
독서와 운동, 그리고 글쓰기를
그냥 이어가 본다.
그냥.
이상하게도 나는 이 단어가 좋다.
'그냥'이라는 말 안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으면서도
생각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힘이 있다.
남들이 정해 놓은 방향이 아니라
나의 방식대로 가겠다는 의미가 담겨있고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는 느낌도 있다.
행복이 불행과 함께 있다는 걸 알고,
불행 역시 행복과 나란히 붙어 있다는 걸 안 채로
멀리 보고 오늘을 이어간다.
그냥,
그렇게.
(주) 『엄마의 유산 ― 살아버리는 힘, 살아 벌이는 짓!』에 실린 박지경 작가의 〈키루스와 한 끗 차이〉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