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물이에게
1월 17일 4,5번째 [엄마의 유산]을 출간한 작가님들의 편지 낭독극이 있었다.
먼 땅에 있어서 직접 가지는 못했지만,
작가님들의 연습과정과
영상에 담긴 편지극이 주는 감동이 나에게 컸다.
직접 편지를 써서 책으로 주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감동의 경험이 집으로까지 배송이 된다니.
어떤 분이 기획을 하셨는지 참 기획을 잘하셨다.
나도 관객으로서 생각해 보면
여운이 남는 좋은 고객경험이 될 것 같다.
내가 갔다면 누구에게 편지를 쓰고 싶을까 떠올릴 때,
곧 돌을 맞이할 조카가 떠올랐다.
우리 집안의 첫 아이인 이 친구에게 편지를 한 장 써보면서
내가 살아갈 태도에도 다짐을 해본다.
나는 저렇게 살지 않는데 조카에게 이렇게 살라며 할 수는 없으니까.
안녕, 꼬물이!
너의 하나뿐인 이모가 인사한다.
아주 잘 크고 있지?
태오가 태어나고 한 달쯤 지나
이모는 호주로 떠났어.
나의 가장 가까운 첫 조카가
자라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지 못한 건
지금도 조금 아쉽다.
하지만 이모는 여행을 떠난 게 아니었어.
꿈에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해,
내가 하는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그리고 내가 모르는 세상도 경험해보고 싶어서였어.
그래서 후회는 없어.
아무래도 우리는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나 봐.
한국에 돌아와 훌쩍 커버린 너를 볼 생각에
이모는 그저 신난다?
요즘 이모는
'자녀에게 어떤 정신을 물려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작가님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어.
그분들이 선보인 편지극을 지켜보며
이 마음이 태오에게도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이렇게 너에게 편지 한 장을 쓰게 됐어.
네 첫 생일을 맞아 조금은 특별한 선물이 되었으면 해.
이 편지를 읽고 이해하려면
아마도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지.
네가 살아갈 세상은
우리와 또 많이 다를 거야.
그리고 이모도 그 현실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겠지.
그래서 이모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
다만 이 세 가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시대가 어떤 시대이든,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는
이제 조금은 알 것 같거든.
우선,
곧이곧대로 말만 잘 듣는 아이가 아니라
스스로 옳다고 믿는 길을,
양심이 흐르는 쪽으로
행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너로 살아가며 너만의 길을
묵묵히 잘 걸어가길.
그리고 쉬운 길은 없다는 것.
그게 삶의 기본값이 되면
오히려 마음은 편해지더라.
예전의 이모는
쉽게 행복을 빌었는데,
어느 순간 깨달았어.
행복을 좇다 보면 이미 곁에 와 있는 행복을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그래서 이모는
언제나 행복하길 바란다는 말 대신
이렇게 말하고 싶다.
큰 시선으로 보며 고통을 앞당겨 쓰며 살아보고,
시련도 선물처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러면 행복은 굳이 부르지 않아도 곁에 머물더라.
이모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게.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건 이거야.
어른들이 겪어온 세상을 전부 믿지는 말길.
나는 어렸을 때 어른들의 표현과 말이 다 옳은 줄 알았어.
근데 그게 아니더라.
이미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지는 것뿐일 때도 있어.
나라고 다르지 않아.
깨도 깨도 깰 것이 끝도 없는 걸 보면 말이야.
몇백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리는
스스로 보고, 느끼고, 선택해 보는 건 어떨까.
태오야, 아직 돌도 안되어 한창 자라고 있어서
신체의 성장기가 멈추려면 멀었지만
좋은 소식이 있어. 성장은 멈추지 않는대.
성장이 끝이 없다는 사실이 이모는 참 좋아.
아직은 경험이 부족해서 서툴러도
그 과정도 계속 겪어가면
닮아도 괜찮은 어른으로
나도 계속 성장하고 있을 거라 믿어. 같이 가자.
네가 이모를 인식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이모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같이 코 흘리고 웃으며 놀 수 있는 이모,
함부로 단정 짓지 않고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어른으로 곁에 있고 싶다.
엄마, 아빠와 싸워 어디 갈 곳 없을 때
편히 찾아올 수 있는 곳으로.
덧붙여 말하자면
이모는 네가 아기일 때 옆에서 네 엄마를 지켜봤어.
엄마는 너를 키우는 시간을 분명히 즐기는 것을 볼 수 있었어.
힘든 순간도 많았겠지만 강인한 엄마라는 이름으로
너의 성장을 사랑이 담긴 눈을 가지고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이모가 증명해.
태오야, 나는 네가
그런 강인한 엄마의 아들이기도 하고
너답게 잘 자랄 거라 믿어서 사실 걱정 안 해.
존재자체만으로 소중한 우리 조카야.
이모는 언제나 태오 편이고, 많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