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쫀쿠'덕분에 알았다. 나의 병

by 글쓰는 트레이너

최근에 내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병을 발견했다.


타인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하는 병.

배려해야 되는 존재로 있어야 되는 병.

남에게 양보해야 된다는 병.

그런 이미지여야 된다는 병.


남편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했다.

그에게 진단해 보라고 했더니

그가 바로 진단을 내린다.

일명,

흔히 알려진 '착한 아이 코스프레'.


이 치장이 얼마나 사람을 진솔하게

만들지 못하는지.

굳이 배려할 상황이 아니더라도,

양보할 필요가 없어도 굳이굳이 배려를 해버린다.

마음과 다르게 행동해 놓고도 쿨하지 못하

마음은 찝찝다.


최근 핫한 '두쫀쿠'덕에 나의 병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었다.


친구가 직접 만들었다는 두바이 쫀득 쿠키.

2개를 얻었다.

처음 맛보는데 겉은 쫀득 속은 빠작.

크게 달지 않는 원물 가득한 피스타치오 앙금.

내 스타일이었다.


하나 먹고 하나를 더 먹고 싶었다.

하지만 지인을 주고 싶어서 참았다.

맛있는 걸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었고

내가 그만큼 당신을 생각한다고

이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이번에도 얻게 된 두쫀쿠.

이번엔 무려 5개나 얻었다.

이번에도 지인에게 나눠줘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하나씩 먹다 보니 어느덧 하나 남았다.

거기에서 고민이 되었다.

지인을 줄까 내가 먹을까.

내가 먹고 싶은 게 컸고 정말로 먹고 싶었다.


주기로 약속했던 것도 아니고

줘야 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줘야 될 것만 같았다.

내가 먹으면 왠지 모르게 이기적인 것만 같았다.

이뿐만이 있으랴.

누가 안 해놓은 설거지,

내가 설거지하는 김에 해야만 할 것 같고.


누가 나에게 물건을 달라고 했을 때,

나에게 필요 없으면 무조건 줘야 할 것 같다.

(그냥 싫으면 안 줘도 되는데 말이다.)


또 이뿐이랴, 가족이 내가 있는 쪽으로

놀러 온다고 했을 때 어떻게 만족시킬지

생각하며 부담이 살짝 되었다.


3번의 패턴은 봐야 내가 보인다던데

최근, 일련의 일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누구는 참 착하다고 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똑바로 내 비열함을 직시할 수 있다.

나를 무시하고 타인중심으로 생각을 하느라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쿨하지 못한 것이다.


반전인건 나는 이런 착한 사람을 싫어한다.

이런 사람의 과한 배려 때문에

상대방입장으로서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의 나는 내 중심으로 생각하며 떳떳한 아이였는데 성인이 된 나는 내 존재는 어디 갔는지 착한 사람으로 길들여졌는지 모르겠다. (사회에서는 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더 윗사람은 생각해야 된다는 것이 큰 것 같기도.)


여하튼, 나는 나를 믿고 이기적이기로 했다.

정확히는 양심대로 움직이고

정직하게 행동할 나를 믿고 말이다.


내가 말하는 이기는 나를 중심으로 두고 생각하는 것이다.


두쫀쿠 저 5개를 혼자 다 먹어 이 썩는 것보다

원하는 지인에게 주는 것.

누가 설거지를 좀 늦게 하더라도

나는 내 것은 제때 한다는 걸 지키기.

물건이 나에게 진짜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 때

필요한 사람에게 처리하기.

여행 올 가족을 어떻게 만족시킬까 가 아니라

내가 그 가족과 어떻게 놀아야 재밌을까를 생각하기.


이렇게 내 중심으로 생각하면

나도 이롭고 타인도 이롭게 된다.

타인에게 바라지 않아도 된다.


내 중심으로 일어난 현상들을 들여다보면

내가 보인다.

나를 똑바로 보니 나아갈 지점이 보인다.


'그래 맞아. 이게 나지!'

완전 본래로 돌아온 기분이다.


내 중심으로 생각하기.

그리고 양심을 따르기.


그러면 정도에 벗어나지 않으며

나를 챙길 수 있게 될 것 같다는 번뜩한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을 한결 단순하게 만들 이 두 가지.

아싸. 나만의 방향성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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