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 평소 차분하던 선생님 한분이 보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 오셨다.
"아니! 애가 가슴이 아프대요!"
눈이 왕방울처럼 커진 채 고개를 돌려가며 나와 복도를 돌아보는 선생님.
키가 큰 남학생이 가슴을 부여잡은 채 보건실로 들어왔다. 상담용 의자에 앉히고는 살펴보니 청색증은 없고 호흡수의 변화도, 외관상 보이는 이상도 없다. 팔이나 다른 곳은 안 아픈지 물어봤는데 딱 가슴 중앙만 아프다고 대답했다.
혈압을 재고 열을 재봤는데 모두 정상. 혹시 맥박이 불규칙하거나 이상이 있을까 봐 맥을 확인했는데 이상 없다. 산소 포화도를 확인해보려고 옥시 미터를 꺼냈는데 아뿔싸. 전원이 안 들어온다. 건전지가 다 떨어졌나 보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난 보건실에 옥시 미터를 두 개 둔다. 구석 서랍에 있는 옥시 미터를 꺼냈는데, 헉? 전원이 안 들어온다.
작년 12월까지만 해도 다 멀쩡히 잘 작동했는데, 겨울방학 동안 추위에 떨다가 건전지가 다 나가버린 걸까....
아프다고 연신 말하는 학생을 두고 교무실로 달려가서 건전지를 받아와야 하나?
그러던 중 우연히 점검 중이던 체온계들이 보였다. 급하게 체온계를 집어 들고 덮개를 열었더니 옥시 미터와 같은 AAA 건전지. 얼른 건전지를 갈아 끼우고 학생의 손가락에 끼웠다.
다행히 산소포화도도 맥박도 모두 정상이었다.
키 크고 마른 남학생의 경우 고등학교 때 기흉이 갑자기 생기는 일이 꽤 있다. 기흉이라면 날카로운 통증을 느낄 가능성이 커서 물어봤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냥 답답하고 꽉 막힌 느낌이랬다.
역류성 식도염의 경우 위산이 역류돼서 가슴 쪽으로 통증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 흉통으로 느껴서 응급실에 가는 경우도 많은데 왠지 그런 상황일 수도 있어서 일단 제산제를 먹였다. 제산제가 효과가 있는지 지켜보고 싶었는데 때마침 학생의 어머님이 보건실에 오셨다.
어머님께 대충 상황을 설명드리고 쪽지에 학생의 활력징후(V/S), SpO2 등을 메모해서 전달해드렸다.
학생이 왜 흉통을 느꼈는지 나중에라도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쨌든 오늘의 아찔함을 통해 교훈이나 얻어야겠다. 앞으로는 매일 출근 시마다 옥시 미터, 펜라이트 등 자주 사용하지 않는 응급 물품들의 건전지 상태를 점검할 것!!!!!
에휴.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