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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Aug 05. 2019

당신은 어른스러운 사람인가요?

[에세이] 어른도, 아이도 아닌 당신의 인터뷰 : 네 번째 편지

이 글은 실제로 20대를 인터뷰하고 작성했지만, ‘20대’라는 숫자에 집중하기보다 한 사람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와 누구나 공감할 만한 생각을 풀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이번 글은 '어른스럽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 인터뷰이의 이야기입니다. 글을 읽으며 여러분이 생각하는 어른이 무엇일지 고민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당신에게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도 잠에 들지 못해요. 다시 눈을 뜨니 초점 없는 눈동자가 허공을 향해요. 이런 새벽이 처음도 아닌데 오늘따라 유달리 마음이 어지럽게 흩어지는 까닭을 알 길이 없어요. 시계 초침 소리를 발소리 삼아 떠났던 기억들이 다시 걸어와요. 하루를 돌이키며 그때 말했으면 좋았을 말을 속으로 내뱉고 괜히 꺼냈나 싶었던 말을 삼켜요.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려도 시간을 과거로 돌릴 수 없기에 미련이 남아 제자리를 빙빙 머물러요. 어차피 잠들지 못할 새벽이라면 당신 생각으로 밤을 지새워야겠어요.


인터뷰 내용에 맞추어 직접 그린 그림입니다

당신이 말해준 과거 이야기가 떠올라요. 마치 그 시간 속을 함께 했던 것처럼 상상해요. 당신은 늘 괜찮다고 말하는 아이였어요. 무엇을 사달라고 먼저 해본 적이 없고 어른들이 물어봐도 괜찮다며 거절했어요. 당신을 아는 어른들이 ‘이런 애 처음이었다.’고 할 정도로요. 유독 철이 일찍 들고 어른스러웠어요.


지금도 당신은 어른스러운 사람으로 보여요. 언제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주어진 일을 미루지 않고 해결해요. 말을 논리에 맞춰 똑 부러지게 하면서도 상대에게 귀 기울이는 사람이지요. 아이 때와 똑같이 다른 사람이 건네는 선물과 도움을 어색하게 느껴요. 문제가 생겨도 친구들에게 털어놓기보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고민하고 나이와 경험이 훨씬 많은 사람에게 조언을 구해요. 친구들이 조금 서운할 만큼 상처를 쉽게 드러내지 않아요.


무엇이 당신을 어른스러운 사람으로 만드나요? 행복이란 감정을 가족들과 갔던 속초 바다에서 처음 느꼈다고 말할 정도로 당신에게 가족은 소중한 존재예요. 왜 갔는지, 바다 말고 무얼 봤는지 잊었으나 바람 사이로 머리가 휘날리며 사진을 찍은 기억은 당신의 일부가 되었어요. 중요한 존재여서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삼 남매의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기 때문에 항상 마음 한편에 고생하신 부모님께 죄송함이 있었다고 말했어요. 같은 핏줄이라도 제각기 다른 형제들과 나눈 세월이 지금의 당신을 만들었어요. 갖고 싶은 건 가져야 하고 싶은 일은 꼭 해야 하는 성격의 형제를 보며 그와 반대된 삶을 꿈꾸게 되었어요.


어렸던 당신은 어른이 된 미래를 상상하곤 했어요. 20살이 지나면, 20대 중반이 된다면, 어느 정도의 삶의 경험을 쌓았을 거라 가늠했어요. 한 살 차이라도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1학년은 완전 다른 세상인 듯했어요. 어린 당신에겐 20대 중반에 만날 세계가 아주 크게 보일 테니 더 많이 겪고 성장했을 거라고 짐작했겠지요.


어느덧 어른스러운 아이는 자라서 20대 중반이 되었고 이젠 나이에 부담감을 느껴요. 20살과 현재의 당신 사이에는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1년 반의 시간이 있었어요. 시간은 흘러 지금은 목이 막히고 가슴이 저릴 만큼 아팠던 느낌만 남고 현실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은 점차 색이 바래 희미해요. 일 년이 넘는 시간이 사라져 텅 비어 없어진 기분이 들었나요. 시간과 함께 그 속에 당신이란 존재가 있었나 허무한가요. 분명 20살 때보다 많은 순간을 겪었는데, 흘러가는 시곗바늘을 따라 믿기지 않을 만큼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갔어요.


이젠 앞으로의 시간을 두려워해요. 당신은 다행히 직장을 구했고 곧 사회생활을 시작해요. 많은 이들이 좋은 일을 하게 되었다며 축하해주는데 당신만 웃지 못하고 있어요. 마치 모르는 사람이 보낸 내용을 알 수 없는 선물상자를 받은 사람 같아요.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몰라 뜯어보기에 겁이 나요. 주변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있어요. 당신보다 더 설렌 그들의 표정을 보며 한숨을 쉬어요. 당신에게 안 맞는 일이라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면, 일을 그만두고 싶어 진다면, 이런 고민이 끝나지 않고 이어져요.


당신의 가까운 친구가 재취업을 했다고 들었어요. 전 직장보다 여러 면에서 나은 곳이라 만족하지만, 고생하고 힘들어하는 친구를 옆에서 지켜보며 당신의 미래도 다르지 않을 거라며 걱정했겠지요. 최근에 당신이 받은 선물상자는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 담겨 편하지 못한 마음에 도착한 건가요.


인터뷰 내용에 맞추어 직접 그린 그림입니다

혼란스러워요. 알고 있던 당신은 어른스럽고 스스로의 일을 알아서 척척 해내는 사람이었는데 이토록 괴로움에 흔들리는 모습이라니. ‘어른스럽다’는 단어가 낯설어요. 어른스럽거나 나이답게 사는 게 어떤 삶인지 알 수 없네요. 당신보다 나이가 많은 이는 당신을 어른스러우나 어린아이로 보겠지요. 당신보다 어린 사람들은 당신이 20대 중반 정도의 충분한 경험을 했을 거라 가늠해요.


당신에게 어른은 기준이 분명하게 정해진 사람이 아니었어요. 나이와 상관없이 타인에 대한 상식적인 선을 지킨다면, 누군가를 어른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싶지 않다고요. 불과 얼마 전까지 당신은 마음의 여유가 없거나 남과의 비교에 집착하는 삶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사람마다 둘러싼 환경과 쌓이는 경험이 다르니 분명 시야를 좁게 만들고 각박하게 만드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나 봐요. 모두가 마음에 어린아이를 품고 살 듯 각자의 어른도 있겠지요.


살아있는 한 시곗바늘은 끊임없이 움직여요. 어른이 될 필요도, 아이가 될 필요도 없이 자신의 시계에 맞춰 살아가야 해요. 시계의 모든 바늘은 똑같이 움직이지 않아요. 초침을 쉴 새 없이 앞으로 걸어 나가고 분침과 시침은 초침보다 천천히 가요. 같은 거리의 한 칸인데 바늘마다 의미도 달라요. 하지만 세 개의 바늘은 원으로 돌고 돌아 결국 0에서 12가 새겨진 글자를 반복해서 돌아요. 당신의 시계도 비슷해요. 어떤 속도로 나아가든 어쨌든 탄생에서 시작해 죽음까지 원을 그리며 돌아가겠지요. 그러니 당신의 시계로 살아가길 바라요.


인터뷰 내용에 맞추어 직접 그린 그림입니다

당신도 나이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찾았어요, 나이는 인정하되 순간에 집중해 충실히 살아가기로 정했어요. 20대 중반이라면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거나 얼마만큼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기로요. 대신 당신이 가장 아끼는 공간인 따뜻한 집에서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으며 시간을 보내요. 당신의 부모님은 피식 웃으셨다지만, 예전보다 느껴지는 체력의 한계를 이겨내고자 운동을 하고 더 건강해지기 위해 노력해요. 큰 결심은 아니어도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행동처럼 1초의 움직임만큼 작은 행동부터 시작해요.


상상의 시계를 돌려 당신의 미래를 미리 봐요.  꿈꾸던 당신이 거기 있어요. 당신의 세계를 풍부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거기에만 매몰되지 않는 사람이요. 좋아하는 것이 많은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깊이 빠져 살고,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관심을 갖고 알아가는 시간이지요.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취향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요.


과거와 현재의 당신처럼 미래의 당신도 스스로 해결책을 찾고 있어요. 누가 대신 답을 정해주거나  살아줄 수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당신의 시계 안에 들어가고 싶어요. 당신의 시간이 비어 있다고 생각되지 않도록 멀리서 지켜볼게요. 시간 속에서 분명 당신의 존재를 똑똑히 보았으니 슬퍼하지 말라고 말할게요. 나이의 무게가 느껴질 땐 당신의 일 년을 축하하기 위해 좋아하는 케이크를 들고 찾아 갈게요. 당신 곁에 머물게 해 주세요.


야속하게 새벽의 시계는 잠 못 든 이를 기다려주지 않고 떠나요. 당신 생각을 하느라 모든 새벽을 써버렸어요. 감지 못한 눈으로 어두웠던 방을 가득 채운 주황빛의 아침 해를 바라봐요. 아침이 되었으니 이만 당신을 만나러 가야겠어요.


당신의 시계 곁에

제이드인엑스가.




제이드인엑스가 청춘들을 인터뷰한 이유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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