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실제로 20대를 인터뷰하고 작성했지만, ‘20대’라는 숫자에 집중하기보다 한 사람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와 누구나 공감할 만한 생각을 풀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이번 글은 설레는 20대를 꿈꾸며 21살을 맞이하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청춘의 반짝이는 설렘을 느껴보시길 바라요.
당신에게
눈이 쉽게 허락되지 않는 겨울이네요. 매서운 칼바람이 불고 스산한 겨울비도 내리는데 하얀 꽃송이는 소식이 없군요. 뜻대로 할 수 없는 게 날씨라지만 눈 내리는 밤의 마법이 일어날 수 없어서 울적해요. 눈이 내려야 기억나는 사람과의 추억을 그대로 잊은 채 지내요. 눈이 온다는 핑계로 누군가에게 연락할 기회를 놓쳤어요. 눈이 오면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들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어요. 아이는 친구와 눈싸움할 즐거움을 잃었고 어른은 은근슬쩍 낭만과 동심을 꺼낼 기회를 놓쳤어요.
당신은 눈 내리는 날에 그리운 이가 있나요? 어떤 추억이 몽글몽글 떨어지나요? 눈을 꼭 감고 그때로 돌아가 봐요. 여기는 당신이 고등학교 3년 동안 생활했던 기숙사예요. 지금과 다르게 눈이 아주 많이 오는 어느 밤이었어요. 그런데 한 친구에게 갑자기 문제가 생겼네요. 급한 마음에 급식실로 뛰다가 휴대전화를 눈밭에 떨어트렸대요. 당신과 친구들, 사감 선생님까지 나서서 찾았지만 소복이 쌓인 눈 사이에서 보이지 않아요. 처음에는 찾아야 한다는 걱정으로 시작했는데 나오지 않자 하나둘씩 마음이 달라져요. 휴대전화 찾기를 포기하고 눈을 가지고 놀아요. 손에 닿는 눈은 분명 차가운데 기분은 포근해져요. 크게 웃을 수 있는 소중하고 즐거운 밤이었어요. 다행히 다음날 눈이 녹아 휴대전화도 찾았으니 행복한 결말이네요.
인터뷰 내용에 맞추어 직접 그린 그림입니다
눈 내리는 분위기를 원래부터 좋아했다던 당신의 지난겨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이번엔 당신이 살던 부안의 어느 바닷가, 작은 마을로 왔어요. 곧 새해를 알리는 종이 울릴 거예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할머니를 따라 작은 교회에 왔고 목사님은 설교 중이네요. 촛불과 트리로 꾸며진 덕에 제대로 연말 분위기가 나요. 당신은 그런 풍경을 좋아하지만 익숙한 듯 덤덤하게 휴대전화만 봐요. 십, 구, 팔, 남은 시간이 하나씩 내려가요. 두 개의 눈송이가 내리는 해에 태어난 당신은 드디어 스무 살이 되었어요. 당신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표정과 행동으로 새해를 맞이해요. 그러나 앞으로 많은 부분이 달라질 거예요.
이제 눈을 떠봐요. 당신의 스무 살이 끝날 무렵 우리는 만났어요. 지금은 스물한 살이 되었어요. 지난해 동안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고 당신은 말했어요. 19년이라는 긴 시간보다 스무 살이 된 일 년간 더 많은 경험과 도전을 했대요.
당신 생각에 20대는 직접 자신을 만들어가는 나이이기 때문이겠지요 10대는 입시가 주는 부담감에 시달리고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살아가야 하지만, 20대는 스스로 무슨 꿈을 꿀지 자유롭게 선택하고 책임지는 나이래요. 수줍어하면서도 당차게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펼쳐놔요.
당신은 서울에 위치한 대학교에 입학했어요. 신입생답게 당신의 1년을 학기 단위로 나눠서 설명해요. 1학기에는 학교 공부 대신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고 놀고 싶었대요. 춤과 뮤지컬 동아리에서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영화와 관련된 대외활동도 했어요. 공모전도 나갔으니 놀았다고 하기엔 너무 바쁘게 지냈어요. 2학기 때는 열심히 살기로 다짐했대요. 아르바이트와 공부도 열심히 하고 끝이 없는 과제를 기여코 해결했어요. 그리고 다른 생각이 나지 않도록 독서를 한대요. 오랜만에 책을 읽는 자신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니 일거양득이군요.
새로운 장소와 낯설었던 일상에 만족했나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당신은 좋아하는 걸 알아가요. 학교 근처에서 자취 중인 당신은 집에 가는 게 가장 행복하대요. 예전에는 적막하고 지저분해서 가기 싫던 집이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한 후 달라졌어요. 당신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고양이가 나와서 코로 뽀뽀해줘요. 과제로 새벽 늦게까지 밤을 새도 고양이는 자지 않고 기다려요. 지친 하루에 다가온 생명의 온기란 얼마나 따뜻하고 사랑스러울까요? 새로 얻은 기쁨은 당신의 행동마저 바꿔요. 아침엔 고양이가 깨워서 일찍 일어나고 함께 사는 식구를 위해 더 깨끗이 청소해요.
인터뷰 내용에 맞추어 직접 그린 그림입니다
신선한 자극을 통해 스스로조차 모르고 지내던 낯선 모습을 만나요. 당신은 예상보다 훨씬 더 공포영화를 잘 보고 좋아한대요. 남들보다 공포영화 속 인물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예측하는 능력도 있어요. 당신의 눈은 자기 전, 불 끄고 무서운 영화를 보는 순간에 초롱초롱 빛나요. 좋아하는 걸 열심히 설명하는 총명한 눈빛에 홀려 뭘 좋아하는지 계속 물어봤어요. 뮤지컬이나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 관람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일이군요. 집에서는 유자차를 자주 마시는 습관을 만들었어요. 청소를 하고 씻은 후 차를 마시는 상쾌한 기분은 직접 해본 사람만 알 수 있어요. 추운 날씨에 따뜻한 차 한 잔, 당신에게 소중한 찰나를 또 하나 찾았어요.
익숙하지 않은 일을 시작할 땐 당신의 부족한 점도 찾게 해요. 당신은 여러 가지를 시도하길래 도전을 즐기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혼자서는 용기가 나지 않는대요. 대외활동에 참가해도 혹시나 떨어질 것 같고 주변에서 아무도 하지 않으면 두려운 마음이 생겨요. 친구들에게 같이 하자고 말해봐요. 부족한 점을 알아도 달라지는 건 왜 이렇게 힘들까요? 당신은 계속 새로운 경험을 원해요. 현재에 익숙해지지 않고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이 미래의 큰 자산이 될 거라 믿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 앞으로는 혼자서도 겁내지 않고 도전해보고 싶대요.
처음 본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쌓으면 고민도 생겨요. 작은 마을에서 자랐기 때문에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친구들이 같았어요. 오랜만에 만나도 친숙하고 전화만으로 기분을 알아차리는 깊은 사이라고요.
대학교를 다니며 새로 사귄 친구들이 늘어났는데 당신은 약간 혼란스러워 보이네요. 친구와 보내는 시간은 분명 즐거운데 버겁기도 해요. 친구에게 마음이 상하거나 다투게 되면 더 우울해진대요. 좋아하는 만큼 슬픔이 배가 되니 혼자가 낫다고 생각하나 봐요. 그리고 너무 자주 놀아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기분을 느껴요. 심지어 친구와 같이 자취를 하기 때문에 집에서도 자신만의 시간이 부족하고 혼자 사색할 공간이 필요해요. 친구들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한편으로 멀리하고 싶은 상태군요. 새로움이 물음표를 남겼어요.
스스로를 알아가는 일은 복잡해요. 상황이 바뀌면서 성향도 계속 변해요. 날씨만큼 변덕스러운 게 사람이잖아요. 변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과정은 끝이 없어요. 좋아하는 음식이 어느 날 질려버리고 잘 입던 옷에 더 이상 손이 가지 않아요. 내면의 가장 못난 모습을 만날 땐 화들짝 놀라요. 숨거나 도망치기도 하지요. 스스로의 눈을 가린다고 사람들이 못 볼 거라고 생각하는 아이 같아요. 당신은 지금 자신을 절반만 알고 있대요. 자신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 많다고 했어요. 당신은 누구인가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까요? 당신은 이제 질문을 시작했어요.
인터뷰 내용에 맞추어 직접 그린 그림입니다
당신은 개성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어요. 남들과 다른 나만의 차별적인 장점을 갖고 꿈꾸는 분야에서 인정받고 싶어 해요. 고등학교에서는 꿈과 관련된 기술이 차별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대학교 친구들은 모두 같은 공부를 하고 관련된 기술을 다룰 수 있어서 당신의 장점이 사라졌대요. 그리고 새로운 세상은 넓고 대단한 사람은 많으니 당신도 모르는 사이 움츠러들어요. 어떤 친구는 특출 나게 자신의 분야에 재능이 있고 다른 친구는 취미를 장점으로 만들어요. 한 때는 자격지심도 가졌대요. 마음이 조급해지고 하루빨리 남들과 다른 특징을 찾고 싶어 하네요.
스스로를 아는 것만큼이나 남들과 다른 독특한 특징을 찾는 건 어려워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어도 결론은 당신이 내려야 해요. 오히려 당신에 대해 전부 아는 척 훈수를 두거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어른 흉내를 내는 사람들을 만나 속이 시끄러울 때도 생겨요. 밀려드는 일로 정신없이 바빠지면 장점 찾기에 집중할 여유가 사라져요.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보고 차별화된 부분을 찾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해요.
사실 특별함도, 평범함도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눈에 보이는 능력은 특별한가요? 그렇다면 유자차 마시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 매번 알람을 맞춰 놓은 당신의 성실함은 장점이 될 수 없는 건가요? 고등학생 때 바라던 해외 봉사활동을 떠나게 만든 당신의 행동력과, 놀고 싶은 마음을 참고 힘든 과제를 만족스럽게 마무리하는 당신의 노력은 특별하지 않나요?
인터뷰 내용에 맞추어 직접 그린 그림입니다
누군가는 눈이 내리지 않는 컴컴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당신을 부러워할지도 몰라요. 기준에 따라 한 끗 차이잖아요. 어쩌면 눈 덮인 기숙사의 휴대전화를 찾을 때와 비슷해요. 찾으려고 할 때는 눈에 덮여 보이지 않고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보이니까요.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당신의 경험이 쌓이면 어느덧 기준이 생기고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오늘도 자신을 찾느라 잠 못 이루는 사람들에겐 고독하고 외로운 밤이겠지요. 그들을 위해 하늘에서 눈이 오면 좋겠어요. 뽀드득뽀드득 창밖에서 누군가 눈 밟는 소리에 외롭지 않기를. 오롯이 혼자인 새벽에 눈의 따스함을 느끼고 미소 짓기를, 느리게 떨어져 나무에 살포시 내려앉은 눈을 보며 초조함을 덜어낼 수 있기를. 눈이 햇빛에 비춰 보석처럼 반짝이는 아침을 기대하기를. 내리는 눈을 세다가 까무룩 깊은 잠에 빠지길 소원해요. 포근한 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