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영화 ‘킹덤 오브 헤븐 :디렉터스 컷(2020)’
이 글은 시사회 초대받은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지금까지 무수한 이름이 남았지만, 그들을 수식하는 말은 제각기 다르다. 어떤 선택과 행동이 그들을 난세에 태어난 영웅, 희대의 악당, 어진 군주로 구분 짓게 했을까? 요동치는 12세기, 이름을 남긴 사람들의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킹덤 오브 헤븐’은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격변의 시대와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블록버스터 영화다. 대장장이로 살아가던 ‘파비앙(올랜도 블룸)’은 우연히 십자군 기사 ‘고드프리(리암 니슨)’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영주의 직위를 받으면서 삶에 변화가 생긴다. 한 인간의 내면과 더불어 주변 인물의 상반된 관점을 통해 유럽과 중동에 걸친 십자군 전쟁을 날카롭게 묘사한다.
러닝타임이 자그마치 190분이지만,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 영화의 어느 부분도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까다로운 주제를 선택한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인물의 서사와 감정선을 섬세하게 따라가면서, 전투 장면의 속도감이나 웅장함을 놓치지 않았다. 특히 배경음악과 효과음 때문에 영화관에서 볼 때 몰입감이 극대화된다. 영화 속에서 시간 변화가 자주 일어나는 만큼 폭풍우 치는 거친 파도에서 모래로 이어지는 등 사소한 컷 전환에도 신경 쓴 모습이다. 그리고 ‘돛단배’, ‘십자가’ 같은 상징적인 소재를 사용해서 관객들이 영화의 메시지를 해석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기억할만한 강력한 명대사까지 깔끔하다 ‘글래디에이터(2000)’, ‘마션(2015)’ 등 쟁쟁한 영화를 연출한 감독답게 ‘디렉터스 컷’이라는 단어가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었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 : 디렉터스 컷' 예고편이 궁금하다면▼
‘킹덤 오브 헤븐’을 보기 위해서 십자군 전쟁과 관련된 배경지식이 필요한 건 아니다. 주인공인 파비앙이 프랑스가 아닌 예루살렘 출신이라는 점과 ‘파비앙’과 예루살렘의 여왕 ‘시빌라(에바 그린)’의 관계처럼 실제 역사와 미묘하게 다른 부분도 있다.
하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그들의 대사나 행동이 색다르게 보인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십자군 전쟁은 중세시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가 예루살렘을 차지하기 위해 벌어졌다. 1094년, 당시 교황이었던 우르바누스 2세는 교회의 영향력을 확장할 목적으로 전쟁을 계획한다. 이후 수차례에 걸친 전쟁이 ‘십자군 전쟁’으로 불리는 이유는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은 신을 위해 피를 희생하겠다는 뜻으로 빨간 십자가를 가슴이나 등에 붙였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1차 십자군 전쟁의 승리로 예루살렘을 100년 가까이 차지한 그리스도교와 그곳을 되찾기 위해 맞서는 이슬람교의 대립을 보여준다.
길어진 전쟁은 지옥 같은 상황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고대 유럽에서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여행하던 길은 도적으로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되었고, 수도사와 같은 의무를 진 ‘템플 기사단’은 발견 즉시 이슬람교도를 죽인다는 규칙을 만들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이 만연한 시기였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인들은 길어진 전쟁으로 분열하기 시작한다. 잔혹한 죽음과 함께 신의 존재는 희미해지고 승리자가 돈과 명예를 얻는 구조에서 인간의 욕심이 극단에 이른다. 영화 속에서는 유럽의 부자가 예루살렘에서 거지가 될 수 있고 반대도 가능하다는 대사로 언급된다. 인물들은 서로 다른 욕망을 좇아 갈등하고 몇몇 인물들은 광기에 사로잡힌다.
인물의 욕망은 각자 바라는 천국의 이정표가 된다. 돈, 명예, 사랑, 살인, 무엇을 추구해도 상관없지만, 그들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결과가 끔찍한 지옥일지라도 말이다. 주인공 ‘파비앙’의 선택은 ‘고드프리’에게 영향을 받았다. 영화 초반 삶의 목적을 잃은 그에게 운명처럼 나타난 ‘고드프리’는 영주 직위를 물려주며 말한다.
"적 앞에서 두려워 말라.
용감하고 강직하라.
죽음을 맞이한다 해도 늘 진실을 말하라.
약자를 보호하고 그릇된 일을 하지 마라.
그게 너의 서약이다."
그의 말에 따라 ‘파비앙’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천국에 도달할 수 있는지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역사는 되풀이되고 과거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아무리 지옥 같은 시대가 찾아와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고 천국을 그릴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천국을 향해 나아가야 할까?
* 참고자료
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1(2011), p.15-37
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2(2011), p.20-36, p. 251-334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