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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Sep 27. 2018

당신도 여행을 떠나기 전, 두려움을 느껴요?

여행과 낯섦의 상관관계

길었던 준비 끝에 드디어 가방 하나 메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러 갑니다. 새벽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나 암스테르담을 경유하고 마침내 리스본으로 도착해요. 오랫동안 상상했던 순간이 정말 현실이 되었어요. 여행을 가기 전에 당신에게 편지를 하나 남기려고 해요. 이유는 없어요. 그저 써보려 합니다. 잠 못 드는 당신이 잠 안 자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궁금해할지도 모르니까요.

이번에 탄 비행기 사진은 아닙니다


여행을 앞두고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이번 기회가 아니면, 만나지 못할 사람인 것 같았어요. 얼마나 약속이 많은지 어떤 친구는 이민 가느냐고 장난을 쳤어요. 돈 벌려고 가는 길도, 그곳을 터전으로 삼으려고 떠나는 길도 아닌데, 돌아와서 만나도 되는데, 우리는 왜 그렇게 악착같이 만났을까요? 우리의 마음 한편에 서로를 보고 싶은 그리움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여행을 떠나는 날이 가까워서 만나자는 이야기는 핑계일 수도 있어요. 아무렴 어때요? 만나서 실컷 웃었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친구 H의 선물


친구들은 걱정과 응원을 해줬어요. 다치지 말고, 무사히, 안전하게, 건강히 돌아오라고 했어요. 계속 들어도 들을 때마다 고마웠어요. 저의 안녕을 바라는 사람이 있다니. 멋진 일이죠? 선물도 받았어요. 친구 H는 많은 이들에게 다정하고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에요. H를 마지막으로 본 날, 저에게 귀여운 쇼핑백을 줬어요. 거기에는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할 선크림, 고통으로부터 근육을 보호할 파스, 각종 상황을 대비한 손수건이 들어있었어요. 먼 곳에서도 H는 절 든든하게 지켜주겠네요.


선배님이 선물해주신 섬유 향수

대학 선배님 J는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유용했던 섬유 향수를 선물해 주셨어요. 덕분에 여행이 한층 향기로워졌어요.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주니, 그들을 위해서라도 꼭 안전하게 돌아오려고요. 다시 그들 곁으로.



그런데 문제는 늘 저의 변덕스러운 마음에 있어요. 여행 날짜가 다가오자 덜컥 겁이 났어요. 익숙함에서의 해방. 낯선 땅, 낯선 풍경, 낯선 언어, 낯선 사람들. 처음은 항상 무엇 하나 편하지 않아요. 마치 입학식을 앞둔 기분이 들었어요. 새로운 학교,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공부. 무식하면 용감하지만, 어렴풋이 알면 모든 게 무서워져요. 새롭게 내딛는 발걸음은 언제나 떨리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까 봐 계속 긴장해요. 오랜 시간이 걸려야 적응할 수 있죠. 어쩌면 영원히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낯선 곳에서 저 자신마저 낯설어지면 어쩌죠? 낯선 저는 웃고 있을까요? 울고 있을까요?


도망칠까요? 늘 있던 곳에서 늘 먹던 음식을 먹고 늘 만나는 사람만 만나면 편하겠죠? 사실 전 안정과 편안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없던 일인 마냥 여기면 지금 느끼는 불안도 사라질까요? 사람들은 금방 잊을 거예요. 여행을 포기했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여행을 꿈꿨다는 사실 까지요.


아, 제가 평생 기억하겠네요. 마음에 커다란 상처가 생길 거예요. 치료받지 못한 상처는 점점 곪아요. 아마 사는 동안 내내 스스로를 겁쟁이라 욕하고 원망하고 증오하겠죠. 도망간다는 생각에서 도망가야 해요. 스스로를 사랑하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아요.


보고 싶은 당신, 당신도 비슷한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어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딛는 공포와 떨림. 미지의 세계가 여행이 아니라 일상 속 순간이라도 상관없어요. 세상엔 ‘처음’하는 일이 너무나 많으니까요. 당신은 어떤 선택을 했어요? 선택과 결과에 만족했나요?


여행 한 번 가면서, 지나치게 유난스러워요? 미안해요. 물어보고 싶었어요. 알 수 없는 길을 걷는 첫걸음은 모두에게 무거운지.

듣고 싶었어요. 당신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고. 낯설고 새로운 상황은 무서웠다고.

막상 한 발자국을 걷고 나서 하나도 겁나지 않았다고.


당신, 어제 밤하늘에 뜬 달을 봤어요? 보고 소원을 빌었나요? 저는 달을 보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별 거 아닌 일에 무서워했던 저와 이 편지가 우습게 느껴질 만큼 별 탈 없이 돌아오길 바란다고 빌고 또 빌었어요. 어쩌면 달이 아니라, 자신에게 외치는 주문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제 정말 가야 할 시간이 왔어요.

보고 싶은 당신, 기다려주세요.

여행이 끝나고 이야기보따리를 가득 안은 채 당신을 만나러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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