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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Nov 18. 2018

여행을 가기 위해 일확천금을 꿈꿨어요?

여행과 공모전의 상관관계

여행을 가기 위해 이미 비행기표를 구매한 상태였다. 차근차근 돈을 벌어 떠나기만 하면 되는데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그만둔 아르바이트에 후회나 미련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돈은 아니다. 여행 갈 돈을 모아야 했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이유는 아래 글 링크로 읽어주세요.)

https://brunch.co.kr/@jadeinx/29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볼까 생각도 했다. 결국 생각만 하고 구하지 않았다.  첫 번째로 집 주변에서 일할 자리가 마땅히 없었다. 두 번째로 휴학을 하고 계속 일만 했는데 그만둔 김에 쉬는 게 어떠냐는 달콤한 조언을 들었다. 결정적으로 휴학 전부터 받았던 상처들로 마음이 약해질 만큼 약해졌다. 작은 일에도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자꾸 예민해졌다. 대신 돈이 필요하니 영상 공모전에 출품해 상금을 받겠다는 허무맹랑한 계획을 세웠다. 비웃어도 좋다. 위험하고 한심하며 어리석은 방법이다.


영상 제작과 공모전이 처음은 아니었다. 학교를 다니며 몇 번 출품했고 운이 좋아서 수상도 했었다. 주변에 어떻게 해야 상을 타는지 아는 사람도, 실제로 상을 탄 사람도 많았다. 그렇다고 무조건 수상을 확신할 수 없었다. 우리 모두 공부 잘하는 방법은 알지만 시험 성적은 다르니까. 한 달 동안 4개의 영상 공모전에 출품했다. 다시는 안 할 거라 말하던 영상으로 돌아왔다.


고등학생 시절, 직업 외에 다른 꿈은 없었다. 직업이 아닌 꿈을 꿀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미래의 내 모습은 당연히 방송 PD였고, 무슨 일이 있어도 방송 PD였고, 어떤 노력을 해서라도 방송 PD가 될 줄 알았다. 미디어 관련 학과가 아니면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말해서 선생님을 곤란하게 했었다. 결연한 다짐으로 학교에 입학했고 학과의 영상 제작 동아리에 들어갔다. 기회가 생겨 방송국에 현장실습도 갔다. 입학 후 첫여름 방학이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20살의 꼬마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긴장하지 않고 움리지 않으려 노력할수록 점점 작아졌다.


방송국은 나와 맞지 않는 곳이었다. 현장의 수많은 스텝들이 밤을 새우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지만 조명감독님은 장난이라며 여자 스텝들 허벅지에 팔꿈치로 곡괭이질을 했다.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막내 PD님은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피곤해 보였다. 더 놀라운 건 막내 PD님의 눈이었다. 잠을 못 자 파르르 경련이 오고 다크서클이 가득함에도 눈빛에 생기가 가득했다. ‘이 일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저런 눈빛을 가졌구나’, ‘저런 사람이 PD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방송국에 취직하기도 어렵지만, 평생 일할 자신도 없었다. 5년 동안 방송 PD가 꿈이었는데 한 달 만에 꿈이 없어졌다.


매일 자기 전 천장을 보며 내일 출근을 생각했다

꿈이 방송 PD가 아니더라도 영상 제작 동아리는 즐거웠다. 동아리 사람들과 추억이 쌓였고 함께 영상을 만드는 과정도 즐거웠다. 문제는 매 순간 생겨도 다 같이 해결했을 때 뿌듯함이 더 컸다. 작은 아이디어가 이야기가 되고 하나의 완성된 영상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의 기분은 언제나 떨렸다. 하지만 더 많은 호평을 받고 싶은 욕심과 끝없는 자기만족에 대한 열망은 끊기 어려웠다. 가끔 영상을 만들었던 내 모습에 대해 친구들이 이야기해준다. 배우로 출연했던 친구의 말은 꽤 인상적이었다. 동아리실에서 늘 피곤하고 힘든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눈빛은 흔들림이 없고 살아있었다고. 방송국 막내 PD님 같은 모습이었을까? 영상을 그 정도로 좋아했던 걸까?

어느 순간부터 밤샘이 자연스러워지고, 동아리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깨달았다. 나에겐 재능이 없었다. 영상을 편집하는 리듬감도, 색을 보정하는 안목도 없었다. 아무리 연습해도 아마추어의 한계를 넘을 수 없었다. 전문적으로 영상을 공부한 사람들에 비해 한참 못 미치는 실력이었다. 요즘은 유튜브로 누구나 쉽게 영상을 배울 수 있다. 조금만 배워도 멋진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 영상을 만든 3년이 별거 아닌 시간처럼 느껴졌다.


좋아하던 것들이 거짓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좋아하지 않는데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다가 좋아한다고 믿는지 혼란스러울 때. 거짓이라는 의심에 지금까지의 시간에 대한 허무와 상실이 밀려올 때.


결론은 단순했다. 없는 재능을 극복할 만큼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일상의 많은 부분을 영상으로 채웠지만, 영상만으로 채울 수는 없었다. 조별과제도, 시험도, 여러 가지 학과 활동도, 친구도 전부 중요해서 버릴 수 없었다. 한 마디로 인생을 걸 만큼 영상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영상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흔들림 없는 눈빛을 갖게 했을까?


만들면서 재밌고 주변사람들의 반응도 좋았던 영상

공모전을 위해 오랜만에 촬영을 하고 영상 편집 프로그램도 켰다. 촬영한 영상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자른다. 자막을 넣고 색감을 보정한다. 다듬을수록 하고 싶은 이야기가 온전히 드러난다.  영상을 준비하며 가장 집중한 부분도 이야기였다. 시험 문제를 풀 때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처럼 주최 측에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찾으려고 했다.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배달원이 된다. 메시지를 돋보이게 하는 개성 있는 아이디어를 약간 더하는 정성도 필요하다. 촬영과 편집은 서툴렀지만, 그들의 이야기와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으며 솔직히 두근거렸다. 재미나 설렘 등과 비슷한 감정 같다.


영상을 처음 편집하듯 초심으로 돌아가 생각해본다. 처음 꿈을 꿨던 온전한 마음을 찾아 지난 시간을 자르고 상처 받은 기억을 지운다.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아이였다. 전하는 이야기에 사람들이 공감하고 위로받길 바랐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고 집중할지 고민했다. 방법이 영상이었다. 방법이 보여주는 결과에 집착해 시작한 마음을 잊은 채 세상을 욕하고 스스로를 탓했다. 이제는 전하고 싶은 이야기로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이야기를 전하고 표현하는 일을 좋아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지금은 글을 쓰고 있네요!

사실 이 글을 읽는 내내 여러분이 가장 궁금한 건 내가 좋아하는 일 따위가 아니다.

그래서 일확천금은 성공했을까?

4개 중 1개의 공모전에서 수상했고 주말 아르바이트 2달치의 월급을 상금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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