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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Nov 23. 2018

12시간, 제가 본 암스테르담의 모습은 진짜일까요?

[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전: 12시간 레이오버 암스테르담 여행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일말의 호기심도 없는 도시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출발지인 리스본과 우리나라 사이엔 직항 항공권이 없다. 그래서 어떤 장소를 반드시 경유해야 하는데, 그곳이 나에겐 암스테르담이었다. 구매할 당시 가장 싼 비행기표가 마침 암스테르담을 지났고, 마침 경유지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12시간이었다. 절묘하게도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과 시내의 거리가 가까워서 오가기 편리하다던데. 유럽의 첫 여행지가 예상치 못하게 암스테르담이 되었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암스테르담의 첫인상은 춥고 어두웠다. 아침 6시쯤, 입국심사를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 밤처럼 컴컴했다. 공항 의자에 앉아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데 도저히 해가 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답답함에 무작정 도착한 암스테르담 중앙역도 마찬가지였다. 밖으로 나가자 해 대신 달이 보였고 짙은 어둠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게다가 패딩을 입는 아침 공기를 얇은 셔츠 한 장으로 버티기엔 너무 추웠다. 추위에 겁을 잃었다. 일단 걷기로 했다. 해가 떠오르고 무언가 볼 수 있길 바라며.


비둘기와 함께 본 암스테르담 사인

갈 곳 없이 한참을 방황하며 암스테르담을 걸었다. 환경미화원들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도시는 점점 깨끗하게 변하고 운하가 보이고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제일 유명한 암스테르담 사인으로 걸어갔다. 늘 사람으로 북적거린다는 이야기가 무색하게 5명 정도 있었다. 사진을 찍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까지 암스테르담은 강이 흐르는 조용하고 한적한 도시였다.


암스테르담의 두 번째 모습은 빈센트 반 고흐였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까지 하고 반 고흐 미술관에 갔다. 하지만 정작 반 고흐에 대해 아는 정보는 많지 않았다. 동생 테오와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았고 살아있을 때는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화가였다.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자른 화가’라는 인식이 강해서 거친 붓터치에 과감한 색채의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등 미술 시간에 봤지만, 그가 왜 유명하고 대단한 화가인지 이유는 몰랐다. 이유는 몰라도 일단 유명하니 가보자는 마음이었다. 


분명히 내가 아는 반 고흐가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모습의 반 고흐도 있었다. 일 층에 비슷한 자화상들이 여러 개 전시되어 있길래 빠르게 훑어봤다. 그때 눈동자 색이 모두 다르다는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다시 감탄하며 하나씩 그림을 살펴봤다. 평면의 반 고흐가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그의 그림이 살아 움직였다. 바다를 표현한 작품에서는 파도에 휩쓸렸고 그림 속 들판의 풀이 바람에 흔들렸다. 갑자기 일본풍의 그림이 등장해서 반 고흐가 그린 그림이 맞는지 당황했다. 생애에 걸친 작품을 보니 그는 섬세하게 선을 다루고 색을 조합할 수 있는 화가였다. 이유 없는 전설은 없다. 

반고흐 박물관

미술관에서 나오니 도시가 달라졌다. 햇빛 덕분에 날씨가 한결 따뜻해졌다. 더 이상 조용한 암스테르담은 없었다. 사인 앞에는 몇십 명의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거리를 걷는 동안 쉴 새 없이 자전거가 옆을 지나갔다. 활기가 넘치고 기념품 가게는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물건들로 관광객을 유혹했다. 유명하다는 감자 튀김집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으로 올 때와 같은 길을 걸어서 돌아갔지만, 같은 모습은 하나도 없었다. 

마요네즈 소스는 짰지만 감자튀김은 맛있었다

암스테르담의 마지막 모습은 친절했다. 기차역에서 만난 직원 아저씨는 웃으며 공항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알려줬다. 공항에서 짐을 검색하는 직원들도 지금껏 가 본 공항 중 가장 친절하게 대기하는 사람들을 안내했다. 리스본행 비행기를 타는 발걸음이 무거운 걸 보니 짧은 시간 동안 암스테르담에 정을 들었나 보다.


비행기에서 암스테르담 사진을 봤다. 다양한 시간 속에 같은 장소들이 담겨있었다. 겨우 12시간, 과연 내가 본 무엇을 암스테르담은 얼마나 진짜일까? 이 시간들 중 어떤 모습을 암스테르담이라고 기억하게 될까? 해가 뜨지 않아 춥고 어두웠던 도시? 어디서나 자전거를 볼 수 있는 도시? 반 고흐를 떠올릴까? 아님 운하와 그 운하 앞에서 사진을 찍는 많은 관광객의 모습이 남을까? 다른 여행객들은 내가 본 암스테르담이 맞다고 할까? 틀렸다고 말할까? 혹은 어느 정도 맞지만 다 맞은 건 아니라고 할까? 앞으로 내가 지나칠 도시와 길에 대해 어떤 부분을 보고 얼마나 알게 될까? 내가 볼 모습들이 그 길의 전부일까? 


여행에서 우리는 그곳의 역사, 문화, 음식 등 모든 걸 보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작고 단편적인 모습을 본다. 누군가에겐 인생 여행지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잊고 싶은 끔찍한 장소일 수도 있다. 실제로 본 여행지의 풍경 위에 그날의 온도, 사람, 기분이 겹겹이 쌓여 하나의 편집된 이미지가 된다. 일상이라고 다를까? 눈동자 색이 모두 다른 반 고흐의 자화상이 떠올랐다. 그동안 하나의 눈동자 색만 지닌 반 고흐만 있는 것처럼 세상을 바라봤을까? 나는 스스로의 어떤 부분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스스로를 하나의 색을 가진 사람이라 여겼을까? 여행은 시작되었고 나 자신과 삶에 대한 질문도 함께 쏟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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