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별열차 : 두 번째
앞만 보고 달리는 열차의 바닥에서부터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래바람의 알갱이 한 알 한 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창문이 풍경을 놓치는 속도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아서 머릿속에서 풍경을 기억하고 미련을 남기기도 전에 새로운 풍경을 펼쳐놓는 열차의 속도감이 좋다. 마치 수동으로 돌리는 옛날 영화 필름에 컬러 필터를 입힌 듯한 열차만의 감성이 좋아서 열차만 타면 한참을, 또 한참을 창밖만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기차여행은 언제나 무조건 좋다. 오늘만 빼고.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시끄러워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온갖 종류로 헤어지고 온 사람들이 한 데 모인 열차답게 열차가 출발하기 무섭게 사람들이 꺼이꺼이 우는 소리로 가득하다. 동네에서 손꼽히는 울보들만 모였나? 아니면 너무 울보들이라서 헤어진 건가?
범람하는 통곡은 제각각의 언어를 쏟아내지만, 결국의 맥락은 같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정신 놓고 창문만 바라볼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음악은 무슨 잠을 잘 수도 없을 정도로 시끄러운 울음통에 더 있다간 귀청이 떠나갈 것만 같아 얼마 없는 짐을 챙겨 일어났다. 괜히 탔나 싶었는데, 타자마자 1호차에 자리를 잡은 내가 성급했던 것을 2호차에 가서 알았다.
2호차는 1호차만큼 시끄러웠지만, 모양새는 더 가관이었다. 눈시울이 벌건 사람들이 모두 창밖만 바라보고 있길래 나를 위한 곳인가 싶어서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는데, 어디선가 난데없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우는 손님이 처음인가요’
‘꺼져줄게 잘 살아’
이 세상 이별노래는 모조리 불러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는지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떼창이 끊이질 않는다. 나도 아는 노래라 따라 부르려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음 칸으로 넘어가니, 종교모임을 방불케 하며 둥글게 둘러앉은 사람들이 마치 간증을 하듯 이미 헤어진 사람들을 요목조목 따져가며 욕을 하며 내 사람이 더 쓰레기라고 말씨름을 하고 있었다.
찌질한 사람들. 이별은 사람을 모자라게 만든다. 모자라고 모자라서 밑바닥까지 보이게 한다. 이별의 구덩이 속에서 사람이 어디까지 지독히도 추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는, 같은 단계를 겪지 않으면 모르는 각자의 깊이가 있다. 그래서 다들 이별열차에 타는가 보다. 각자의 깊이에 맞는 칸에 타야 하는가 보다. 그걸 몰랐던 나는, 열차에 타기 전에 울고불고 난리를 다 부리고 나서 타서, 저 느낌을 너무 잘 알아서 이 진지하게 찌질한 사람들이 그저 웃긴가 보다.
정신없이 머리칸을 향해 걷다 보니 어느새 매점칸까지 왔다. 모두 자판기로 판매해 점원도 없고, 다들 아직 나처럼 배고픔이 슬픔을 이기는 단계는 아닌 모양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다. 이 공간에 깔린 조용함이 마음에 든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든 건 자판기 안에 떡하니 놓인 팩소주. 홀린 듯이 팩소주 여럿과 마른오징어, 핫바를 뽑고 자리를 잡았다.
완벽해. 뭐하러 떠난 사람 욕하면서 울었을까? 눈물 아깝게. 시간 아깝게 말이야.
“이번 역은 ‘집착’, 집착역입니다. 10분간 정차 후 출발하겠습니다. 다른 손님들을 위해 내리실 때 두고 내리시는 애정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 써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꿈결 너머로부터 가까워졌다. 찝찝한 숙취가 몰려온다. 벌써 역에 도착할 정도로 시간이 많이 흐른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과음을 한 탓에 까무룩 잠이 들었나 본데, 머리도 아프고 눈에 뵈는 것도 없다. 여전히 매점엔 나 혼자뿐이고, 테이블 위에 구겨진 소주팩들이 널브러져 있다.
잠시 후, 열차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생각보다 많지 않은 사람들이 탔다. 사람들 머리 위에 밤하늘이 깔려있다. 언제부턴지 모를 비도 내리고 있다. 숨 막히는 숙취에 빗바람 좀 쐬고 싶어 몸을 일으켜 문으로 향했다.
“왜 그래? 나랑 같이 여기 조금만 더 있자. 다음 열차 타면 되잖아, 응?”
문 바로 앞에 두 사람이 한 우산을 나눠 쓰며 서 있다. 누가 봐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매달리는 중이다.
“넌 그럼 여기서 내려. 난 열차 계속 탈 거야.”
아, 뭔지 알겠다. 그놈의 이별여행을 온 사람들이다. 헤어지자면 그냥 헤어지는 거지, 꼭 우리의 추억을 제대로 마무리 짓고 싶단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이별여행이랍시고 열차에 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던데 정말 있었다. 매달리는 사람은 떠난 마음을 붙잡으려고 이별여행을 핑계 삼은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매정하게 돌아서서 날 지나치는 이 사람은 정말로 관계를 끝내려고, 마지막 예의는 지키겠다고 열차에 탔나 보다. 남겨진 사람의 표정이 버림받은 강아지마냥 애처롭다.
“여기서 기다릴게! 기다리고 있을게!”
내가 안 보이나? 나는 신경도 안 쓰고 열차 안을 향해 소리치던 내 앞의 사람은 바닥에 둔 짐을 챙기고 홀연히 역사를 빠져나갔다.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나? 자존심 다 버려가며 매달릴 정도로 사랑하는 게 가능하긴 한가?
내가 헤어졌던 순간이 떠올랐다. 애정이 식은 눈으로 서로를 마주하고, 당연하게 이별을 말하고, 당연하게 이별을 받아들였던 그때가 떠올랐다. 사랑할 때의 열정이 헤어질 때는 왜 없었을까? 정말 사랑하지 않아서였을까?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너무도 익숙하게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생각을 거치지 않은 충동이었다. 딱히 네가 보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그냥 비도 오고 그래서, 술에 취하고 비에 젖고 그래서, 너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진 그런 충동이었다.
신호가 간다. 끈질기게 붙잡고 있자니 결국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오기가 생겨 몇 번을 더 해봐도 마찬가지. 생각해보니 자고 있느라 전화를 못 받겠다 싶은 마음에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해보자며 전화를 걸었다.
이번엔 신호가 가지 않았다.
‘수신자의 요청으로 수신이 제한되었습니다.’
수백 마리의 개미가 온몸을 기어오르는 것처럼 소름이 쫙 끼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던져버렸다. 이 순간 정신이 번쩍 든 것마저 믿을 수 없이 수치스럽다. 이왕 술에 취할 거면 제대로 취해서 필름이라도 끊기든가. 애매하게 취해 어쭙잖게 건드린 대가를 자괴감으로 치렀다. 이 와중에 나와의 관계를 차단한 너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으로 말이다.
아무 때나 전화해도 언제든 전화를 받던 너였는데, 언제부터 아무 때나 전화하면 실례가 되는 남이 됐을까. 이젠 너도나도 아닌 남남이 된 우리를 왜 나는 아직까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아서 이별을 받아들인 게 아니었다. 사랑하는 마음이 당연해서, 너를 사랑하는 내 사랑이 당연해서 이별을 무시했던 것이다. 실감하지 못했던 이별이 비처럼 몰아쳤다.
이 이별에서 나를 제일 아프게 한 사람은 이별한 너도 아닌, 이젠 남이 된 너도 아닌, 이별을 외면해 온 나였다.
하루 종일 구경하며 비웃었던 찌질한 사람들 못지않게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펑펑 울었다. 더 세게 울수록 비가 더 거세지는 기분이 들었다. 빗소리에 울음소리가 묻혔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빗소리가 울음소리에 묻히도록 울었다. 네가 뭔데, 내가 뭔데, 우리가 뭐였길래 이렇게 아플까.
“4호차까지 온 사람이 이렇게 울고 있으면 어떡해요?”
그 순간, 비가 그치듯 머리 위로 우산이 씌워졌다. 우산을 잡은 손길을 따라 고개를 들어보니 방금 매달리는 사람을 두고 열차에 올라탄 그 사람이다.
“곧 있으면 열차 출발해요. 집착역에 계속 있을 분은 아닌 것 같은데, 얼른 열차 타요. 여기 있으면 절대 못 돌아가요. 새로 시작도 못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젖어가는 옷과 더 젖을 것도 없는 옷을 때리는 빗방울을 내가 왜 이렇게 초라한 행색으로 맞아야 하나 싶었다. 그 잠깐의 쓸쓸함과 잠깐의 허전함을 이기지 못해 이 꼴이 된 내 자신이 한심했다. 이렇게 되면, 이 사람의 말처럼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되찾으려 했던 내 모습을 찾지 못할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예전처럼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 열차에 탔는데도 말이다.
우산을 쓴 사람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고 끌리는 대로 벌떡 일어났다. 이 사람은 내게 빙긋 웃고는 자기 혼자 열차로 들어가 버렸다. 고맙단 인사도 못해서 얼른 따라 들어갔지만 이 사람은 어느새 사라졌다.
혼자 남았다. 역에 도착하기 전에 그랬듯이 매점칸에 홀로 남았다. 내가 먹었던 술과 음식의 쓰레기들마저 사라지고, 홀로 덩그러니 남았다. 매점칸에 붙어있는 화장실로 들어가 비좁은 틈에서 꾸역꾸역 옷을 갈아입었다. 젖은 옷은 어쩌지 하다가 그냥 버리고 나왔다. 머리카락도 흠뻑 젖었지만 언젠가는 마를 것이다.
5호차로 넘어갔다. 다들 창밖으로 내리는 빗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이들의 틈으로 들어와 나도 창문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제야 제자리를 찾은 듯 잠이 쏟아졌다.
“열차 출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