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별 되세요"

[소설] 이별열차 : 세 번째

by Jade in x

집착역을 지나니 시끄러운 사람들이 걸러진 듯 열차 안이 꽤나 조용해졌다. 열차의 관리 하에 내린 사람들이 사랑과 미움의 정을 단 한 톨도 두고 가지 않았기에 남겨진 사람들은 조금 더 편안한 진동 속에서 열차에 머무를 수 있었다.


눈물이 마를 날이 없던 눈자위는 붓기를 가라앉혔고, 주변 시선 신경 않고 망가졌던 사람들은 슬슬 화장을 하고 냄새나는 옷을 갈아입었다. 밥 먹을 겨를이 없던 순간을 지나 매점에서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탐낼 여유가 생겼고, 슬슬 열차에 타기 위해 떠나온 사람들에게 연락해 잘 있다며 안부를 전할 여력이 생겼다.


실컷 자고 일어나 남들처럼 밥도 먹고, 잠시 잊은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열차칸을 옮겨 다녔다. 열차에 처음 탔을 때 들고 있던 여느 책을 드디어 읽어보려고 제일 조용하다 싶은 칸에 정착했다.


첫 장을 읽기도 전에 밖에서부터 꺄르르 지저귀는 누군가의 웃음소리에 산통이 깨졌다. 곧 웃음소리는 내가 있는 칸의 문을 열었다. 먼저 들어온 사람이 행복한 듯 웃으면서 뒤로 걸어 들어왔고, 이어 들어온 사람은 금방이라도 눈 앞의 사람에게 입을 맞출 듯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남사스런 꼴을 견딜 수가 없어서 얼른 날 지나치고 다른 칸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다가올수록 둘 중 하나의 목소리가 들어본 듯해 얼굴을 쳐다봤다. 그 사람, 집착역에서 날 구해준 그 사람이었다.


눈이 마주쳤다. 확실한 건, 그 사람도 날 알아봤다는 것이다. 찰나였지만 파르르 떨린 눈꺼풀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도 그 사람도 먼저 서로를 아는 체하지 않았다. 그저 눈이 마주치고, 서로 시선을 주고받고는, 그렇게 자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까지만 했다.


그나저나 집착역에서 만나던 사람을 두고 온 거 아니었나? 만나던 사람이 아니었는지, 만나던 사람이 한 명이 아니었는지, 아니면 그새 새로운 사람을 만난 건지 의아하던 참이었다.


“이번 역은 ‘미련’, 미련역입니다. 이 역은 관광지가 많기로 유명하여 잠시 내린 승객들께서 열차를 놓치는 사고가 빈번하오니 내리실 때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벌써 미련역에 도착했나 싶어 창 밖을 바라보는 순간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미련역의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져 놀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자기만의 창문을 차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왔다. 열차가 멈추자마자 나를 포함한 거의 모든 승객들이 열차에서 우르르 내리고 말았다. 아마 나를 포함한 이 모든 사람들은 창문을 통해 본 광경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겠지.


이들 모두는 사랑에 홀려 일상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사람들일 테니 이번 여행을 통해 본 모든 풍경을 사랑할 준비를 마쳤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세상 끝에 섰다.


바람도, 구름도 한 점 없이 푸르기만 한 하늘과 맞닿은 고요한 바다. 깨끗한 수평선에 걸친 햇빛을 머금고 반짝이는 수면. 마치 수평선이 햇살을 걸러 실을 짜내서는 바다 위에 은하 수를 놓은 듯하다. 태양 없이도 푸르게, 따스하게 빛나는 하늘이 바다인지, 하늘을 그대로 머금고 수면 사이에 진열해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가 하늘인지, 둘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저 아름다이 찰랑이는 이 찬란함을 보고만 있기가 아깝다.


손을 뻗으면 손가락 끝에라도 닿을 수 있을까?


“위험하니까 물러나세요!”


누군가 내 팔을 잡아끌고는 뒤로 물러서게 했다. 그때서야 내 발 밑이 텅 비어있음을 볼 수 있었다. 햇살결에 홀린 사람들이 깎아지르는 절벽과 그 아래서 사정없이 몰아치는 아찔한 파도에 지레 겁을 먹고 하나 같이 뒤로 물러섰다. 역무원은 날 잠시 노려보곤 곧 다른 승객들을 단속하러 떠났다. 사람들은 아쉬운 마음에 저마다의 카메라를 꺼내 사진 찍기 바쁘다.


“우리 열차는 사별 급행열차를 보내기 위해 미련역에서 약 30분 간 정차하겠습니다.”


마침 평소보다 오래 정차한다니 절대 잊지 못할 만큼 진득하니 있다 가자 마음먹었다. 앉을 곳을 찾아 걸었다. 걷다 보니 사람들이 떼로 몰린 지점이 여럿 있는 것이 보였다. 저긴 뭔데 사람이 저렇게 많을까 싶어 다가갔다. 사람들을 헤집어 확인한 실체는 다름 아닌 매표소. 사람 하나 들어갈 정도로 작은 매표소의 한 벽면을 꽉 채운 포스터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이별을 위해, 새로운 출발을 위해, 새로운 인생을 위해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우리 <추억투어>는 여러분을 가장 아름다운 바다 끝으로 안내하는 나룻배 투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루 단 10명! 한정수량이니 이 기회 놓치지 마세요!’


세상에. 어쩐지 관광지가 많다더니, 간간히 있는 매표소마다 저 바다를 두고 다양한 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나룻배부터 크루즈까지 가지각색의 투어와 바닷물에 노을빛 색소를 타서 담은 병을 파는 선물가게 등 아주 다양하다. 어디서든 사람이 몰리는 곳은 돈이 몰린다고, 그걸 노리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단 생각에 내심 대단하다 생각했다.


그 와중에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쓸쓸해 보이기까지 한 매표소가 있다. 직원은 꽤나 지루한 지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손톱을 다듬는 중이었다. 그래도 내 인기척은 느꼈는지 시선도 안 주면서 말은 하더랬다.


“어서오세요-.” 내 평생 이렇게 성의 없는 인사는 처음이었다.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데, 여긴 무슨 매표소예요?”


내 물음에 그제서야 눈썹을 찡긋하며 날 쳐다본다.


“저렇게 투어 티켓 끊고 바다 끝으로 가는 사람들은 백이면 백 다 열차 놓쳐요. 다음 차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기차역 노숙자가 될 수는 없잖아요? 그럼 뭐가 필요하겠어요? 잘 곳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여기서 숙박권을 파는 거예요.”


아마 책상 위에 쌓인 숙박권이 다 팔리다 못해 부족할 거라는 말을 덧붙이는 직원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직원은 나를 올려보더니 자세를 똑바로 하고 앉아 말했다.


“왜요? 하나 줘요?”

“아니요. 그냥 물어봤어요.”

“왜요? 다른 사람들 만큼은 바다가 안 예뻐 보이나 보죠?”

“아니요. 너무 예뻐서 저도 가고 싶은데, 그렇다고 다음 열차를 기다리고 싶진 않아요.”


직원의 표정이 약간 변했다. 자기 손목시계를 슬쩍 보더니 매표소 문을 열며 내게 들어오란다. 위험하다나 뭐라나. 못 이기는 척 들어갔더니 곳 사이렌이 울리고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이번 열차는 사별 급행열차입니다. 위험하오니 안전선 밖으로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고는 굉음과 함께 열차가 달려왔다. 너무 빠르다 못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몸을 휘청거리고, 매표소 창문이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덜덜 떨릴까. 저 열차는 뭐가 그리 급한 걸까?


“사별열차는… 그런 건가요? 죽어서 헤어진…”

“그렇죠.”

“그럼 사별열차는 어느 역에서 멈춰요?”

“안 멈춰요.”

“왜요?”

“멈출 필요가 어딨어요? 미련이 남는 것도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있을 때나 생기는 거예요. 집착도 마찬가지고. 저 바다가 사별한 사람들에게 과연 아름다울까요? 아름다워 보일 수는 있죠. 하지만 아무리 예쁜 곳, 맛있는 것, 재밌는 것이어도 함께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지 그리움마저 행복한 거예요. 그 행복감이 바다를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거죠. 사별열차가 저렇게 빨리 달리는 이유는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서예요.”


그 말에 다시 창 밖을 봤다. 수평선에 걸친 바다는 별보다 반짝이는 햇살을 머금고 있다. 그 아름다움이 마치 이미 지나버려 붙잡을 수 없는 과거와, 지나고 나야만 아쉽고 그리운 청춘이 한 데 집약되어버린 듯하다. 저렇게 예쁜 곳을 함께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이 곳을 오기 위해 떠나보낸 사람. 아무리 지긋지긋하고 미워서 떠났어도 그 사람 덕분에 이 곳이 내게 아름다워졌다. 사랑했던 그때는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우리처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별열차에 탄 것이. 적어도 지금 저렇게 바다가 아름다워만 보여서.

“이제 열차 타요. 곧 떠나겠어요.” 직원이 매표소 문을 열어줬다.

“좋은 하루 되세요.” 내가 말하자, 그는 말했다.


“좋은 이별 되세요.”




열차에 타려고 올라서는 순간 누군가 다가왔다. 그 사람, 집착역 그 사람이다. 또 혼자다.


“매표소에 한참 있길래 여기 남는 줄 알았는데 열차 타시나 봐요?”

“빨리 집에 가야죠. 그러는 그쪽은 아까 같이 있던 분 놔두고 혼자 타시나 봐요?”

“아, 그분은 나룻배 타러 갔어요.”

“숙박권만 불티나게 팔리겠네요.”


장난스럽게 웃는 그 모습이 싫지 않게 느껴졌다. 여행의 여흥 때문인가.


“이것도 인연인데 헤어진 사람들끼리 맥주 한 캔 할래요?”


마침 나도 묻고 싶었던 터라 덜컥 제안을 받아들였다. 먼저 열차에 타는 이 사람을 따르다가 문득 등 뒤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싶은 욕구가 차르랑거렸다. 하지만 이내 눈을 감았다. 이 그리울 풍경은 내 마음속에 있고, 이미 열차에 탄 이상 저 풍경은 처음만 못할 것이다.



꽤나 한산해진 열차가 덜컹거린다.


“우리 열차는 마지막 역으로 향하기 위해 출발합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을 위해 모든 짐과 감정을 정리해주시기 바랍니다. 열차 출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