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열차는 집착-미련-체념역으로 가는 이별열차입니다

[소설] 이별열차 : 첫 번째

by Jade in x

단 하나뿐인 사람이었다. 보고 싶어서 보고 싶다고 칭얼거리면 많이 보고 싶었냐며 가득 안아주는 사람, 내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나를 향해 자라난 사람,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더 사랑하는지 겨루느라 넘쳐나는 사랑을 주체하지 못해서 쏟아버릴수록 더 행복하던 사람. 너는 나의 사랑이자 삶이었다.


너에겐 나뿐이고, 나에겐 너뿐인 단 하나뿐인 사람이었다.


“헤어지자.”


이 한 마디로 끝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영혼 없는 그 가벼운 말로는 결코 끊어낼 수 없는 끈끈한 우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끝났다. 끊겼다.


우리의 사랑이 너무 무거웠나 보다. 너무 무거워서 짊어지고 싶지 않은 짐처럼 부담스러웠나 보다. 우리의 사랑은 마냥 무겁기만 했나 보다. 너무 무거워서 어디도 가지 못할 거라고 방심하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고작 그 헤어지잔 말이, 가볍기만 한 그 말이 몰아쳤을 때 꼼짝없이 밀려나 순식간에 서로 멀어졌나 보다.


이별은 일상에 가하는 폭력이다. 예고가 됐건 갑작스럽건, 이별을 당했건 가했건 상관없다.


내 삶의 일부였던 사람이 순식간에 잡아 뜯겨 그만큼의 구멍으로부터 핏발간 추억들이 쏟아지면, 어제까지 멀쩡했던 일상은 무너지고 만다.


어차피 남인걸. 처음부터 내 인생에 존재했던 가족도 아니고, 그저 네가 없던 그때로 돌아갈 뿐인걸. 네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그때처럼만 지내면 되는걸.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한 벌로 나는 매일 눈물을 흘렸다. 모든 시간과 공간 속에서 너를 떠올리다 울고, 지나치는 모든 사람 속에서 너의 모습을 찾느라 또 울고, 혼자 남은 그 순간마저 내가 아니면 너뿐이었던 그 시절이 그리워 울부짖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네가 뭐라고, 너라는 사람이 뭐라고 내가 너를 만나 우리가 됐고, 너와 우리가 된 나를 사랑하게 됐다, 그래서 너를 잃은 내가 미워 울었고, 네가 없는 내가 싫어 울었다. 네가 뭐라고.


그래, 네가 뭐라고 내 일상이 속수무책 무너져야 하는가. 일상을 되찾아야 한다. 찾을 수 없다면 새로 시작해야 한다. 처음엔 네가 뭐라고 왜 내가 변해야 하는지 억울하고 분통해서 마음대로 살았다. 널 욕하고 싶을 땐 욕하고, 네가 보고 싶을 땐 보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다. 옆에 누가 있든 없든 상관 않고 술 마시고, 울고불고, 주정 부리고, 울고불고, 다 필요 없다며 연락 두절, 내 감정을 토해내고 싶어서 대뜸 새벽에 전화해 또 울고불고.


하지만 내 삶에는 너만 있지 않다. 함께 살아가는 가족과 친구, 집과 직장, 그 모두가 사랑하는 나를 위해 일상을 도로 해야 한다. 너 때문에 안 그래도 본의 아니게 소홀했던 그 사람들로 하여금 너를 핑계 삼아 내게 실망하게 만들 수 없다. 더는 너 때문이라는 명목으로 나를 망치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


새 출발을 해야겠다.


역시 새 출발을 계획하기에 여행만큼 좋은 구실도 없지. 새로운 것들을 보고, 경험하며,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하고 오자. 떠나간 것도, 사람도 모두 헌 것이 되어 질릴 때까지.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열차는 집착-미련-체념역으로 가는 이별열차입니다. 승객 여러분의 뒤끝 없이 흉터 남지 않을 편안한 여행을 위해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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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에 타 비어있는 자리 아무 데나 앉았다. 승객은 많지도 적지도 않다. 이렇게 예쁜 날 헤어지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나쁜 생각이 든다.


들고 온 짐은 휴대폰과 지갑, 서른 살에 퇴사하고 여행을 떠났다는 어떤 누구의 에세이 책과 필기할 노트, 그리고 천 원짜리 펜 두 자루가 전부다. 가볍게 시작한 여행인 만큼 후련하게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 어떤 잡생각도, 잡감정도 없이.


“오늘도 이별열차를 이용해주시는 승객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자리에 모두 착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열차 출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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