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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Apr 09. 2019

제목마저 지워버린 당신의 이야기

[무비패스] '나의 작은 시인에게(2019)'

이 글은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어떤 문장,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충분히 전해질 수 있을까? 영화를 볼 때는 흥미롭고 재밌게 봤는데, 막상 쓰려니 막막하다.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평범한 유치원 선생님 ‘리사’가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지미’의 시를 자신의 시 수업 시간에 발표하며 일어나는 사건을 담고 있다. ‘리사’가 누구인지부터 글을 시작해야겠다.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세상에서 지워지고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놓아버린 ‘리사’를 위해 존재하고 이 글도 그녀를 위해 바치는 일종의 헌사이기 때문이다.


'나의 작은 시인에게' 공식 예고편▼

https://kakaotv.daum.net/v/396848225


‘리사’는 어떤 사람일까? 그녀의 직업은 유치원 선생님이다. 알파벳 하나도 성심성의껏 가르치고 공부가 지루한 아이들을 위해 ‘에라 모르겠다.’식으로 함께 노래 시간으로 바꿔버린다.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낀다. 물론 가정에서도 그녀는 노력한다. 다정한 남편과 오순도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들에게도 아낌없는 사랑과 관심을 주지만, 사춘기인 아이들은 그녀의 말에 무관심하고 엇나간다. 글로 쓴 역할에서 풍기는 그녀의 분위기는 밝고 건강하기만 하다. 성실한 누군가의 엄마이자 아내,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선생님. 옥에도 티가 있기 마련이고 틈 없이 완벽해 보이는 것일수록 작은 틈에도 전체가 무너진다. 그녀의 작은 틈은 그녀를 산산조각 낸다.


‘리사’의 틈은 어디서부터 생겼을까? 그녀의 취미는 시를 쓰는 일이다. 열정 가득한 눈빛으로 늘 시를 고민하고 잘 쓰길 바란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단순히 좋아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마치 그녀에게 시는 리사라는 이름 대신 선생님이나 엄마 등 역할로 불리는 자신을 증명할 수단으로 여긴다. 시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길 갈망한다.


문제는 그녀가 쓴 시가 기대만큼 인정받지 못한다. 수업시간에 시를 발표하기 무섭게 다른 학생들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선생님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다. 끊임없이 평가하고 반박하는 시간 속에서 그녀는 작아질 뿐이다. 좋아하는 시를 즐기지 못하고 스트레스와 상처가 쌓인다.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말한다. 그녀의 시가 정형화된 느낌이라고. 조금 더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반대로 생각해서 정형화되지 않은 시를 만나면 그녀는 자신을 드러내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리사’의 틈은 ‘지미’를 만나고 완벽히 벌어진다. ‘지미’의 시를 자신의 것처럼 발표하자 모두 큰 호응을 보인다. 특히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열렬한 찬사를 그녀에게 보낸다. ‘지미’의 시로 인정받은 그녀의 집착은 점차 심해진다. 유치원 선생님이 아니라 친구 같은 존재가 되길 바란다. 성으로 부르는 ‘스피넬리 선생님’이 아니라 ‘리사’라고 부르라고 시키며 시가 떠오르면 개인번호로 전화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녀에게 주어진 역할이 지워지고 존재 자체로 의미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지미’의 시의 어떤 부분이 그녀를 송두리째 흔들었을까?


Anna is beautiful. 애나는 아름답다.

Beautiful enough for me. 나에게 충분히 아름답다.

The sun hits her yellow house. 태양이 그녀의 노란 집을 두드린다.

It is almost like a sign from god. 마치 신이 보낸 신호처럼.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시 중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뒷부분에 애나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후속 시가 또 등장할 정도로 핵심적인 시구절이다. 이 시의 내용이 ‘리사’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고 생각했다. 충분히 아름답다는 말이 한 인간으로 사랑받고 싶었으나 정작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 그녀가 원했던 말이었다. 그녀를 흔든 시를 시작으로 존재를 드러내려는 몸부림은 계속 이어지지만, 물 위로 떠오르려 버둥거릴수록 잠기는 것처럼 ‘지미’의 재능에 대한 집착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역할도, 그녀 자신도 지워진다.


‘리사’는 파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영화는 그녀의 감정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때로는 섬뜩하게, 때로는 안타까운 뒷모습을 보여준다. 눈물을 흘려도 주로 참거나 금방 닦아내고 울지 않은 척 노력한다. 선글라스를 끼고 눈을 보여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지미’에게 너의 존재가 자신처럼 사라질 거라 애원하는 순간마저 찰나의 순간이다. 금세 눈물을 닦고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서있다. 얼굴 아래로 몸이나 동작만 잡히는 화면도 수없이 등장한다. 그녀가 쓰는 시처럼 영화의 시선이 감정을 절제해 화면에 담는다. 슬픔은 끝이 없다고 나지막이 내뱉는 그녀의 얼굴은 어떤 표정이었을까? 그녀와 영화가 숨기려고 할수록 그녀의 슬픔과 절망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표정 없이 너무나 생생해 소름이 끼친다.


시사회에서 받은 투명 포토카드


‘나의 작은 시인에게’라는 제목은 낭만적이다. 영화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흥미롭고 제목이 주는 마케팅 효과가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제인 ‘The kindergarten teacher(유치원 선생님)’에 공감할 것이다. 아이에게 초점을 맞추기엔 그녀에게 무척이나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억하자. 천재 꼬마 시인 ‘지미’가 아니라 한국어 제목에서 조차 지워진 ‘리사’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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