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de in x Apr 12. 2019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면 눈물이 날까요?

[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 (17) : 끝이자 새로운 시작

많은 순례자들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대성당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한 가지 이유, 한 가지 감정으로 정의할 수 없다. 신을 향해 오는 과정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다. 물집 생긴 발은 도착해서도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욱신거릴 게 분명하다. 아침마다 어깨와 종아리를 묵직하게 누르는 근육통은 스트레칭을 해도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어떤 순례자는 무릎 통증 때문에, 혹은 감기에, 혹은 베드 버그에 물려 고생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순례길에서 만난 나쁜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자신 탓으로 돌렸을지도 모르겠다.  짧게는 며칠이고 길게는 수개월을 걸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온 순례자는 수만 가지 사연을 품고 있다. 그리고 모든 일들을 견디고 도착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을 어찌 한 줄로 정의할 수 있을까. 해냈다는 뿌듯함과 끝났다는 안도감에 아주 작은 허무가 몰려온다. 그들의 신을 만나는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자신도 모르는 낯선 감정들이 섞여 눈물이 흐른다.


도착하는 날 아침에 일어나서 길을 걷자 울컥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해서 북받친 나머지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면 어쩌지 생각했다. 리스본에서 시작한 25일은 짧지 않은 시간이고 사건도 너무 많았으니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 도착했다. 감정이 격해지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다른 순례자들처럼 눈물이 흘러내려야 하는데 감감무소식이었다. 정작 대성당에 와서 줄줄이 이어진 기념품 가게들과 관광객들을 보니 어안이 벙벙했다. 얼떨떨한 기분에 눈물이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든 생각도 썩 감성적이지 않았다.


‘내일 뭐 하지?’


리스본에서 걷기를 시작하고 25일 만에 갖는 첫 휴식이었다. 성실하게 아침 일찍 눈을 떠 충실하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해 걷던 순례자는 걷지 않는 하루가 낯설었다. 안 걸으면 도대체 뭘 해야 할까? 카미노 포르투게스(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의 마무리를 잘하는 방법은 뭘까? 일종의 법칙을 깨야 하는 일, 산티아고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1박 2일의 타임라인을 기록했다.



10월 24일

PM 02:40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했다. 매일 길을 잃은 순례자답게 방향을 헤매다가 인터넷 지도의 힘을 빌려 겨우겨우 찾을 수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성당 앞 광장에는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 누워서 대성당을 바라보는 사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친구를 찾는 사람,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사람까지. 울기는 글렀으니 기념사진이나 실컷 찍어야겠다. 셀프 카메라로 팔을 뻗어 대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가여웠는지 관광객으로 보이는 노부부가 선뜻 사진을 찍어주셨다. 제일 먼저 순례길을 걷는 내내 당사자보다 더 걱정하고 마음 졸였을 가족들에게 사진을 보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걸 미리 알고 있던 부모님께서 기다렸다는 듯 빛보다 빠른 속도로 답을 하셨다.


“우리 딸 정말 멋져.”


귀여운 이모티콘은 덤이다. 엄마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은 산에서 찍은 꽃 사진에서 노부부가 찍어준 딸의 사진으로 바뀌었다.


PM 06 : :00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씻고 배정받은 2층 침대 위에 올라갔다. 갑자기 유심카드가 말썽을 피웠다. 통신이 전혀 연결되지 않았고 와이파이는 알베르게에 사람이 많아 신호가 불안정했다. 30일짜리 유심의 만료기간이 가까웠던 건 사실이나 지금까지 잘 되던 유심에 문제가 생기니 당황스러웠다. 심지어 기다리는 전화도 있었다.


산티아고 도착 전 날, 간단히 샌드위치를 먹으러 멈춘 카페에서 호주인 순례자 엘리와 수잔을 만났다. 야외테이블에 앉고 싶은데 햇빛이 강하게 비추는 자리만 남아 고민하고 있었다. 그늘진 자리에 앉아있던 엘리와 수잔이 옆에 자리를 만들더니 앉으라고 손짓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니 엘리와 수잔은 궁금해했다.


“부모님이 걱정 안 하시니? 연락은 하고?”

“매일 걱정하시지. 메신저로 매일 연락해. 그리고 우리 엄마는 매일 풍경사진 말고 셀카를 보내라고 하셔.”

“하하하, 엄마의 마음 이해해. 엄마께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드려. 여기서 호주 엄마(엘리, 수잔)들이 지켜주고 있다고.”


헤어지기 전에 엘리는 다음날 자신들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데 혹시 약속이 없다면 같이 저녁식사와 축하파티를 하겠냐고 물었다. 다른 순례자 친구들은 이틀 뒤에 도착하기로 해서 다음 날은 마침 혼자였다. 엘리와 수잔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숙소에서 전전긍긍하다가 미약한 와이파이로 전화가 안 될 수도 있다는 SNS 메시지를 보냈다. 간단한 짐을 챙겨 대성당 앞 광장으로 향했다. 순례자들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면 대성당으로 온다. 대성당은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야고보의 유예가 모셔진 장소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도 대성당에 도착해야 비로소 순례길을 끝난다. 순례길의 인증서를 받을 수 있는 사무실도 대성당 근처에 위치하고 관광객들도 기념사진을 찍는 대표적인 장소이다. 엘리와 수잔도 일단 대성당 앞으로 올 거라 믿었다. 숙소에서 나가 광장으로 가는 길에 이상하게 신호가 잘 잡혔다. 아무래도 알베르게 2층 침대가 신호가 잡히지 않는 공간인 것 같다. 그 뒤로도 잘 되던 유심이 침대에만 올라가면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무작정 엘리와 수잔을 기다리며 대성당 앞에 앉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섬세한 조각과 기품 있는 자태는 순례길에서 본 성당 중 제일이었다. 언제나 대성당 앞 광장에는 앉아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우연히 길을 걷는 동안 만났던 반가운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해가 지며 노을이 비친 대성당 끝에 익숙한 걸음과 복장의 순례자가 보였다.



다음날 오기로 했고 오전에 헤어졌던 체코인 순례자 에바였다. 다리가 아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10Km 남짓 남은 지점에서 숙소를 정하려던 에바는 숙박비가 지나치게 비싸서 곧장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왔다. 그녀에게 달려갔다. 다시 만나 반갑다고 인사를 하자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통증이 계속 오는 다리로 끝까지 걸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친 듯했다. 옆에서 그녀의 밝은 모습과 즐거운 추억을 나눴던 나로서는 마음이 찡했다. 그녀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었고 강한 그녀를 응원하고 싶었다. 그녀는 알면 알수록 더 알아가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었다. 사진도 찍어주고 내일 또 보자는 인사와 함께 지칠 대로 지친 에바와 작별인사를 했다. 대성당을 지나 숙소로 가는 그녀의 발걸음은 무거웠으나 뒷모습은 영웅이었다.


PM 08:30

엘리와 수잔을 성당 앞에서 8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서로 오해가 생겨 길이 엇갈렸다. 전화통화가 되었지만, 호주식 영어는 알아듣기 어려웠고 설상가상으로 주위가 시끄러웠다.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에서 기적처럼 수잔이 통화 중인 날 발견했다. 엘리는 하루 종일 걷고도 에너지가 넘쳤다. 만나자마자 포옹을 하며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로 대성당이 떠나갈 듯 “congratulation! (축하해)’ 를 연달아 외쳤다. 맛있는 저녁 식사를 사준다며 빠에야와 각종 해산물을 파는 식당에 갔다.



자신들의 음식까지 먹으라며 나눠준 덕분에 배 터지게 저녁 식사를 했다. 함께 산티아고 도착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아 술 대신 콜라로 건배도 했다. 그녀들은 여기가 천국일까 싶을 정도로 천사처럼 달콤한 말을 해주었다.


“난 디자인에 재능이 없는 것 같아”

“그럼 너의 재능은 뭐야?” (엘리)

“글쎄… 잘 모르겠어…”

“너는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재능이 있어. 아무도 할 수 없는 중요한 재능이야.” (엘리)


애정 넘치는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젤라토를 먹으려 했지만 시간이 늦어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문 닫힌 상점들과 골목 곳곳을 누비며 산책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서 세 번째 순례길을 걸은 엘리에게 수잔이 물었다.


“예전에는 성당이 공사 중이었다고 했지?” (수잔)

“맞아. 항상 보수 공사 중이어서 이렇게 깨끗하고 완성된 모습은 처음 봐. 처음 왔는데 이런 모습을 보다니 운이 좋은 거야.” (엘리)


엘리는 나와 수잔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 둘을 위해 공사가 끝났나 봐” (엘리)


PM 11:00


엄마처럼 챙겨주던 엘리와 수잔은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숙소 바로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이렇게 늦은 시간에 숙소에 들어간 적도 처음이었다. 진한 볼뽀뽀와 포옹에 앞으로 잘 지내고 도착을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더 건넨 후에 헤어졌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선물해준 천사들에게 과분할 정도로 큰 축하를 받았다. 외롭지 않고 걱정 없는 편안한 밤이었다.


10월 25일

AM 08:30

늦잠을 잤다. 6시에 일어나 짐을 싸던 순례자의 생활에 빗대면 분명 늦잠이었다. 가방을 챙겨 나갈 필요가 없으니 개인 사물함에 마음껏 풀어헤쳐놓고 문을 닫았다. 느긋하게 씻었다. 가방 깊숙이 숨겨둔 틴트와 쿠션 팩트로 화장도 했다. 긴 원피스도 꺼내 입고 순례자가 아닌 척해도 꼬질꼬질하고 고생한 티를 숨길 수 없었다. 일단 어디든 가보자는 생각으로 숙소를 나섰다.


AM 10:00


전 날 성당과 숙소를 오가며 눈 여겨본 카페가 있었다. 맛있는 커피를 마실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원두 향이 가득한 카페에 들어가자 젊은 여자 사장님이 친절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내부는 생각보다 작았으나 깔끔했다. 쟁반 크기의 넓은 접시에 담긴 빵들과 유리병 안에 들어간 쿠키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크루아상과 쿠키 하나, 카페라떼를 주문하고 밖이 보이는 길쭉한 창 앞자리에 앉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혼자 앉아 크루아상을 먹는 날 신기하게 쳐다보았고 나 역시 그들을 흥미롭게 쳐다보았다. 산티아고에서 처음 라떼아트가 그려진 커피를 마셨다. 모양만큼 훌륭한 맛으로, 여태까지 마신 커피 중 최고였다.


커피를 마시는 뒤로 꾸준히 단골손님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들어오고 커피를 포장했다. 사장님도 손님들에게 커피 원두를 설명하며 즐겁게 일하셨다. 언젠가 카페를 차린다면 이런 공간, 저런 표정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살표 없이, 계획 없이 발길이 이끄는 대로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는 하루도 꽤 괜찮다.


PM 12:00

12시 미사 전엔 딱히 계획이 없어서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성당 입구에서 헤르본(Herbon)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폴란드 순례자들을 만났다. 서로 반갑게 인사는 해도 그들이 폴란드어 외에 할 줄 몰라서 짧은 영어단어와 손짓 발짓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언어는 달라도 신나게 악수도 하고 도착을 축하하다가 그들을 따라 생각 없이 미사 전에 성당 안에 들어갔다. 내부에 또 줄이 있기에 일단 섰더니 야고보의 어깨를 만질 수 있는 줄이었다. 어설퍼도 할 건 다했다.


미사를 볼 땐 살짝 눈물이 나올 뻔했다. 자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과 성가대의 노랫소리, 연기를 뿜어내며 긴 줄에 매달린 채 흔들리는 향로(보타푸메이로, Botafumeiro)까지.


‘여기가 정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구나. 도착했다’


PM 01: 40

미사가 끝난 후 4일 전에 산티아고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던 한국인 순례자들이 도착했다. 만나서 전날 미뤄둔 순례길 인증서를 받았다. 인증서는 순례자 사무실로 가서 크레덴시알(순례자 여권)을 보여주고받을 수 있다. 거리가 적힌 증명서를 따로 받을 수 있는데 금액을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인증서에 적힌 거리는 675Km. 숫자로는 체감이 안 되는 거리를 끝까지 걸은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PM 03:20

남은 시간은 계속 한국인 순례자들과 시간을 보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시내를 구경하며 상점도 구경하고 케밥도 먹었다. 작은 분수대 옆에서 중고책을 팔고 있었다. 같이 있던 동갑내기 순례자가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뭐 하러 자꾸 보냐고 구박을 했다. 꿋꿋하게 다시 찾아가 보고 싶은 만큼 봤다. 끌림은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오래된 책의 질감과 냄새에 본능적으로 자꾸 시선이 가고 만지고 싶었다.



순례자들에게 인기 많은 식당에서 저녁도 먹고 성당 앞에서 사진도 많이 남겼다. 순례길에서 얼굴이나 전신이 나온 사진이 거의 없었는데 그들이 사진을 찍어준 덕분에 대성당에서 어떤 표정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축하파티는 계속 이어졌다. 맥주를 마시며 각자 가진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이젠 시시콜콜한 농담에도 자지러지게 웃고 서로의 성격을 충분히 알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한국에서의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한국에서 봐도 우린 순례길의 모습 그대로일까? 캄캄한 밤, 조명 켜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끝으로 이어질 각자의 길을 응원하며 헤어졌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다시 만나고 다시 헤어진 모두를 과연 잊을 수 있을까?


10월 26일

AM 07:00


해는 어김없이 떠오르고 가방을 챙겼다. 눈물이 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이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도착하니 무섭고 고생했던 기억이 미화되어 즐거웠던 기억으로 떠올랐다. 후회도 미련도 없었다. 최선을 다해 걸었으니까. 그리고 도착을 축하하고 회포를 풀 친구들이 곁에 있었다. 축하를 받고 축하하느라 1박 2일이 훌쩍 지나갔다.


마지막으로 아직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었다. 순례길이 끝나지 않았다. 하루를 쉬고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약 90Km 떨어진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피스테라(피네스테레)를 향해 출발했다.

에바와의 추억이 더 궁금하다면?▼


한국인 순례자들과 만났을 때 기분은?▼


매거진의 이전글 종교가 달라도 순례길을 걸어도 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