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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Apr 20. 2019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새로운 길을 시작했어요?

[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 피니스테레길 (1) : 모든 일에 감사하자

세상엔 ‘끝’이 참 많다. 포르투갈 호카곶도, 남아메리카 우수아이아도, 덴마크의 스케인도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 생긴 말일까? 이제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세상의 끝을 말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특정 지역을 ‘세상의 끝’이라 부르고 일부러 찾아간다.


심지어 산티아고 순례길에도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피스테라(Fisterra)가 있다. 피니스테레(Finisterre)라고도 불리는데 전자는 갈라시아 지방의 언어이고 후자는 공식 스페인어 표기이다. 위치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서 서쪽으로 90Km가량 떨어져 있다. 순례자들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출발해 이 곳으로 향하는 길을 카미노 피니스테레(Camino Finisterre)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피니스테레에서 북쪽으로 약 30km 거리의 성모 마리아 발현지 ‘묵시아(Muxia)’까지 가는 순례자도 있다.

피스테라는 여러 이유로 유명하나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숫자가 0으로 된 표지판이 특히 유명하다. 순례자가 끝까지 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과거 순례자들은 피스테라에서 신발이나 옷 등을 불에 태웠다고 한다. 지금은 불을 피우는 행위를 할 수 없지만, 순례자의 신발 모양을 한 조형물이 그들의 아쉬운 마음을 대신하고 있다.


여행 출발 전엔 피니스테레에 대해 거의 모르는 상태였고 걸을 계획도 없었다. 막상 포르투갈길을 걸으니 원래 정했던 날짜보다 도착 예정일이 더 앞당겨졌다. 날짜에 맞게 미리 비행기표를 사둔 터라 여백의 시간이 생겼다. 그때 순례자들이 추천해준 장소가 피니스테레였다. 순례자들은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걷기나 길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편이다. 피니스테레가 어떤 곳이고 얼마나 걸리는지 모두 그들의 입을 통해 들었다.


특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해서 만난 인상 좋은 스페인 순례자 아저씨는 피니스테레에서 돌아온 상태였다. 스페인어 단어 몇 개밖에 모르는 내가 ‘Fisterra Bonita?(피스테라 예뻐요?)’라고 묻자 현란한 손짓과 함께 ‘Bonita. Muy Bonita(예뻐. 아주 예뻐)’를 연신 외쳤다. '다들 칭찬할 때는 이유가 있겠지. 예쁜 곳을 보면 좋지.'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카미노 피네스테레를 걷기 시작했다.


피니스테레를 가리키는 비석과 노란 화살표

피니스테레 길에 대해 순례자들이 해준 이야기 중 몰라도 상관없으나 알면 흥미로운 정보가 하나 있었다. 카미노 피니스테레를 가는 길 초입에 뒤를 돌아보면 멀리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앞만 보지 말고 꼭 뒤를 돌아 대성당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보라고 당부했다.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정말 대성당의 외형이 보였다. 심지어 떠오르기 시작하는 아침의 해와 어디서 흘러 온지 모를 구름 떼가 어우러져 대성당이 한층 신비로웠다. 앞으로 걸을수록 대성당이 멀어져 점점 작아졌다. 잠시 머물렀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게 감상에 젖은 안녕을 고하고 새로운 끝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앞뒤로 풍경을 보거나 주위를 살피려 두리번거린 적은 있어도 아예 뒤에 집중하며 걸은 기억은 별로 없다. 순례길은 도착지를 향해 걸으니 후진을 해서 이미 지난 장소로 돌아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따라서 뒷모습은 벌써 보고 듣고 경험한 과거라고 생각해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았다. 그렇게 때문에 몸은 앞으로 걷되, 끊임없이 뒤로 돌리는 시선이 낯설고

또 하나의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제까지 내가 걸은 순례길이 맞을까? 피니스테레의 풍경은 의문을 갖기에 충분했다. 길 옆으로 높은 언덕과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다. 가슴이 뻥 뚫릴 듯 넓디넓은 대지는 원래 걸었던 카미노 포르투게스(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와 달랐다. 걷기로 가빠진 숨을 잠시 내려놓고 멈췄다. 우두커니 서서 시야를 꽉 채운 풀을 보고 주체할 수 없는 초록 기운을 충전했다. 넓은 평원을 앞에 두고 호들갑을 부리는 내 옆에서 카미노 프란세스(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를 걸은 순례자는 프랑스길 풍경과 익숙하고 비슷하게 느끼고 있었다.



오히려 프랑스길에서 온 순례자들은 피니스테라의 다를 기대했다. 피니스테레 숙소에서 만났던 러시아 순례자는 30일 넘게 프랑스길로 내내 육지를 걸어오면서 바다를 간절히 바랐는데 피니스테레에서 비가 와 바다를 제대로 보지 못한 속상함을 드러냈다. 카미노 프란세스(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를 걸었든, 카미노 포르투게스(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를 걸었든 순례자들에게 카미노 피니스테레는 새로운 길이었다.


세상의 끝이라는 말은 육지의 끝이라는 의미에서 생긴 듯하다. 육지가 끝나는 지점이니 당연히 피니스테레는 바다를 맞닿고 있다. 같은 ‘바다’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순례길의 바다는 모습이 제각각이었다. 포르투갈의 바다를 진한 남색 혹은 속이 비치는 투명함으로 표현했다면, 피니스테레에 가까워질수록 만나는 바다는 파워에이드를 쏟아놓은 색이다. 파랑에 에메랄드색 한 방울, 투명함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바다는 걷기에 지친 순례자들의 마음에 에너지 드링크 역할을 한다.



평원과 바다를 말했으니 산을 이야기할 차례이다. 걸었던 바로 포르투갈길보다 피니스테레길의 경사가 더 급했다. 실제로 경사가 심해 대체하는 길까지 있다. 웬만큼 잘 걷는다고 자부하는 순례자들도 50도는 족히 될 듯한 경사에 놀라곤 한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날카로운 경사를 올라야 거대한 산을 깎고 구비구비 강물이 흐르는 멋진 경치를 볼 기회를 얻는다. 평원과 바다 그리고 경사진 언덕과 산을 오르고 다시 내리길 반복해야 세상의 끝, 피니스테레에 도착할 수 있다.



순례길은 신기하게 마음꿰뚫어 본다. 피니스테라길을 걷기 시작하는 날, 다행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하루 쉬면서 몸은 회복되었다. 대신 자꾸 쉬고 싶고 걷기 싫은 마음이 자라났다. 또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은 순례자라는 자부심은 순례길을 알 만큼 안다는 치기에 불을 지폈다. 모든 길을 포르투갈길의 경험에 빗대어 생각하는 단단한 자만과 착각이었다. 


돌이켜보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삐뚤어진 마음을 어떻게 아는지 늘 새로운 패를 꺼냈다. 때론 길을 잃어 바닥에 주저앉게 만들고 쏟아지는 폭우에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카미노 피니스테레에선 마음을 다시 설레게 할 풍경을 보여줬다.



언제나 전부 안다고 확신하는 태도는 위험하다. 사람도 길도 하늘의 날씨도 매일 변한다. 지금 눈 앞에 주어진 무언가가 내일이면 사라진다. 항상 고민해야 한다. 누군가에 대한 판단이 편견은 아닐까? 편견으로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혹은 소중한 무엇을 익숙하다는 이유로 소홀히 했나? 오랫동안 쌓인 시간이 새로움을 발견할 기회를 가렸을까?



모두가 피니스테레로 다시 떠나고, 가는 길을 추천한 건 아니었다. 시간의 여유와 개인의 자유에 따라 피니스테레는 선택사항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만난 몇몇 순례자는 피니스테레까지 걷겠다는 말을 듣고 장난 삼아 'Crazy Girl'이라고 놀렸다. 수 백 킬로미터를 걷고 또 걷는 모습이 대단하다는 반응이었다. 한 자릿수 이내로 줄었던 순례길의 숫자를 다시 89Km로 바꾸는 일은 그들의 말 따라 미친 짓 같다.


그래도 시간이 허락한다면 피니스테레로 떠나자. 거기서 모르는 새 자란 낡은 생각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가끔은 낡은 생각을 깨기 위해 미칠 준비가 되어야 한다.

피니스테레에 도착!순례길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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