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해시태그를 빼놓지 않는다

[소설] 달을 타는 아이 : 첫 번째

by Jade in x

“나 인스타 좋아요 눌러줘. 방금 올렸어.”

“오늘 먹짱 영상 언제 올라와? 오늘은 뭐 먹냐?”

“얘들아, 이거 봐봐. 벨 사진 또 올라왔어. 귀여워 미침!”


이제 막 급식을 다 먹고 남은 점심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휴대폰이 들려 있다. 옹기종기 모여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휴대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쓱쓱 닦고 있는데 대화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하루 중 가장 소란스러운 시간. 그 중심에 먹짱이 있다.


“야, 먹짱. 너 영상 언제 올라오냐니까?”


한 아이가 아이들 사이에 가려진 먹짱에게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그에 먹짱은 더 신경질적으로 답하면서도 시선은 줄곧 자기 손에 들린 휴대폰을 향했다.


“아, 나도 모른다고! 아빠가 지 편할 때 올리겠지.”

“진짜 부럽다. 아빠가 촬영도 해주고, 편집도 해주고, 밥도 사주고. 넌 그냥 앉아서 많이 먹기만 하면 되잖아.”

“너도 얘처럼 뚱뚱해져서 쉽게 돈 벌고 싶으면 유튜브 하든가?”


한없이 가벼운 아이들의 말에 먹짱이 친구들을 차례로 노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저들끼리 떠들며 이러쿵 저러쿵 말뿐이다. 먹짱은 당장이라도 너희들이 뭘 아냐며 소리치고 싶었지만 갑자기 자기 옆으로 얼굴을 바짝 들이대 대뜸 얼굴 사진을 찍는 또 다른 친구 때문에 당황스러워 아무 말도 못했다. 아이는 먹짱과 찍은 영광스런 셀카를 곧장 자기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먹짱 #먹방유튜버 #초딩유튜버 #우리반이다, 역시나 해시태그를 빼놓지 않는다.


어째 방금 먹은 급식이 체했는지 속이 쓰리고 답답한 먹짱은 그만 책상에 엎드리고 말았다. 어서 자기 앞의 아이들이 사라지기만을 바랐다. 그러자 정말로 아이들이 먹짱의 곁을 떠나기 시작했다.


점심시간 내내 사라졌던 피터가 뒷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이들은 마치 피터 왕자를 에스코트하는 경호원 마냥 주위를 둘러쌌다. 피터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아이들은 피터에게 말을 거는 건지, 말을 뱉는 건지 모르게 조잘조잘 바쁘다.


“피터야. 너 동생 팅커벨 말이야, 너무 이쁘고 귀엽고 혼자만 다 하는 거 아니야? 넌 맨날 집에서 봐서 좋겠다. 실물이 더 이쁘지, 그치?”

“좋겠다. 너도 벨도. 잘생기고 이쁜 부모 만나서 잘생기고 이쁘게 태어났잖아. 할 거 없으면 나중에 연예인 하면 되고, 우유 많이 먹고 키 크면 모델 하면 되고, 또…”


시끄러워. 피터는 생각했다. 생각만 했다. 교실에 들어서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왜 자기한테만 이리 붙나 싶다가도 저 멀리 우리 반 유튜브 스타 먹짱이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고 곧 납득할 뿐이었다. 아이들은 피터가 말을 받아주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는 눈치였다. 애초에 피터 들으라고 하는 말들이었지만 피터에게 하는 말일 뿐이지 피터와 나눌 말이 아니었다. 피터는 그런 일방적인 대화에 익숙했다.


“근데 요즘 피터 너 사진은 왜 안 올라와? 엄마 아빠가 너 싫어해?”


그때 한 친구의 말에 피터의 눈이 뾰족하게 섰다.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서 소리를 지를 것만 같이 숨이 거칠어진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언제 찍었는지 모를 피터와의 셀카 사진을 자기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바쁘다. #피터팬 #팅커벨_오빠 #우리반 #초딩스타, 역시나 해시태그를 빼놓지 않는다.


점심시간이 끝났다. 수업종이 치자마자 담임선생이 들어왔다. 부랴부랴 자기 자리를 찾아 앉는 아이들에게 ‘종 치기 전에 미리 앉으라 그랬지’라며 혼을 내는 것도 이미 지친 모양이었다. 그 지친 목소리로 엎드려 있는 먹짱을 깨우라고 짝꿍에게 말한다. 피터는 비뚤어진 자기 책상을 벽에 바싹 붙이고, 서랍에서 국어 교과서를 꺼냈다.

나름의 수업 준비를 마치고 고개를 들자 담임이 피터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영문을 몰랐던 피터는 곧 담임의 손에 교과서와 함께 한 권의 책이 들려있음을 보았다. 표지를 언뜻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까만 배경에 별 없이 우뚝 솟은 초승달 하나만 담긴 그 단순한 표지를 피터가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너네 오늘 초승달 뜨는 거 알고 있니? 그 말인즉슨 뭐다? 피터 아버님 글이 올라올 예정이다, 이 말이야. 아버님께 이 열혈팬 선생님이 오늘 글도 너무 기대하고 있다고 전해주렴, 피터야. 너네들도 피터 아버님처럼 돈 많이 벌고 싶고, 예쁜 SNS 스타랑 결혼하고, 아이들까지 SNS 스타 만들고 싶으면 공부 열심히 해야 해. 알았지?”


피터는 초승달이 뜰 때마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달사진과 오글거리는 감성글이 조금 인기 있어졌다고 책으로까지 엮어낸 아빠와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도록 사들이며 좋아하는 담임 같은 독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 어른들을 이해하기에 자기는 너무 어린가보다 싶었다. 그 와중에 먹짱은 피터를 슬쩍 훔쳐보곤 생각했다. 쟤도 참 피곤하게 산다, 고.


담임의 지루한 피터 아빠 찬양 시간이 끝나고 더 지루한 수업이 시작됐다. 피터는 교과서는 엉뚱한 페이지를 펴놓고 창 밖만 바라봤다. 하늘이 맑다. 요즘 보기 드물게 구름조차 드문 푸른 하늘이었다. 피터가 오늘 하루 처음으로 기분 좋게 활짝 웃었다.


맞네, 오늘 초승달이 뜨네. 피터가 생각했다. 그 시선의 끝에 동네산 낮은 정상이 있었다.




그날 밤, 피터는 그 동네산의 낮은 정상을 향해 위험한 밤등산을 감행했다. 다 큰 어른들도 괜시리 마음 속의 악몽을 뜬 눈으로 꿀 것만 같은 위험한 시간에 피터는 꿋꿋이 산을 오르고 있다. 동네에 하나씩 있는 낮은 산이라지만 등산로를 조금만 벗어나도 어떤 미지의 생명체가 나올지 모르는데, 간도 큰 피터는 아무 데서나 주운 기다란 나뭇가지 하나에 의지한 채 오로지 정상만을 향해 나아갔다.


산 속에 사는 생명들도, 산을 둘러싼 동네 속 생명들도, 모두가 잠든 시간이었다. 간간히 불어와 나뭇잎을 괴롭히는 밤바람과 피터의 거친 숨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피터의 숨소리마저 정돈될 즈음엔 바람마저 그쳐 정말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새벽 2시. 그 어떤 연락도 없다. 집에 있는 가족만 갓난 여동생 포함해서 셋이나 되는데, 이 시간에 아들이 사라진 줄 아무도 모른다. 피터는 가슴 한 켠이 아주 조금 아려왔는데, 지난달보단 덜 아린 것이었다. 그 지난달엔 더 아렸고, 그보다 지난 달엔 훨씬 아팠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래서 피터는 다시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넘치는 숨을 삼키며 참다보니 오르막만 있을 것 같던 길이 평평해지기 시작했다. 정상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증거였다. 힘들고 자시고 할 것이 없었다. 피터의 다리가 아까보다 단단하게, 빠르게 산을 내딛었다.


“거의 다 왔어. 다 왔다.” 주문처럼 외치며 달리다시피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질끈 감았던 눈을 슬며시 뜬 순간 피터의 얼굴에 미소가 활짝 폈다. 그림 같은 밤하늘이 피터만을 위해 펼쳐져 있었다. 이토록 쏟아질 듯이 빼곡한 별들은 또 처음이었다. 마치 햇볕 아래서 물장구를 치면 흩어지는 물방울들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반짝이는 것처럼. 수채화를 그릴 때 노란 물감을 뭍힌 붓을 마음대로 탁탁 쳐대며 종이 가득 물감방울을 흩뿌리듯이.


그리고 그 사이에 우뚝 솟은 초승달. 이 하늘에 단 하나뿐이라 더욱 아름다운 초승달을 지난 한 달 동안 피터가 몹시도 고대하고 기다렸다. 그 긴긴 시간을 보상하듯 초승달은 피터만을 위해 선명하게 떠있다.


힘들었던 몸과 마음을 모두 씻은 피터가 정상에서 가장 큰 바위에 올라섰다. 자기 머리 위에 뜬 초승달을 향해 팔을 번쩍 들었다. 아직 손이 닿지 않아 이번 달도 까치발을 들어야 한다. 조심조심, 지난 달처럼 의욕만 앞서서 욕심 부리다가 바위에서 떨어져 다치지 않게.


그리고는 턱-.

피터가 초승달의 다리를 붙잡았다. 그래도 이번 달은 그새 키가 조금 컸는지 단번에 초승달의 다리를 잡을 수 있었다. 매번 까치발을 서도 손 끝조차 닿지 않아 위험하게 바위 위에서 깡충깡충 뛰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초승달을 잡은 팔에 힘을 잔뜩 준 피터가 있는 힘을 다해 초승달 위로 올라탔다. 오늘의 초승달은 유난히 앉기 좋게 움푹 눌려서 그런지 처음으로 한 번에 초승달에 앉아봤다. 피터 스스로도 많이 놀랐는지 달 위에 자리 잡은 자기 엉덩이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두 다리 사이에 초승달의 다리를 끼워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피터의 눈 앞에 수놓였던 밤하늘이 피터를 태우고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꼬박 한 달을 기다린 초승달, 하루 중 가장 어둔 시간 가장 밝은 곳에서 피터는 오늘도 남모를 일탈을 즐긴다.


달을 타는 아이_1편.jpg


[오늘의 인스타그램]

널 지키고, 널 품고, 널 아끼고, 널 챙기고

그러기 위해 강해지고, 단단해지는 것이

그게 널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몰랐던 거지, 날 이렇게 만든 것이 네 사랑이었음을.

네게 받은 사랑으로 비로소 내가 되었음을.

우리 가족. 우리들. 오늘도 사랑해.


neverland_family 씀

하단 은22대지 1-10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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