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별열차 : P.S 당신에게
안녕. 나야. 잘 지내지?
나는 잘 지내고 있어. 매번 열차가 오고 내리는 사람들이 생길 때마다 장사가 너무 잘 돼서 숙박권이 부족할 정돈데, 다 나만 욕해. 그러게 누가 계획도 없이 무작정 내리랬나? 내릴 거면 열차 떠나기 전에 잘 탔으면 됐잖아. 아니면 나처럼 매표소 하나 차려서 장사라도 하든가. 안 그래?
여기 내리는 사람들 정말 웃겨. 바다 한가운데서 노을을 보겠다고 배를 타러 가는데, 가기 전엔 서로 한 마디씩 덧붙이면서 떠나온 사람 욕하기 바빴단 말이야? 근데 뭍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다들 얼굴색이 싹 바뀌어서는 ‘그래도 그땐 좋았지,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보고 싶다’는 둥 아련하기만 해. 다들 노을 지는 걸 보면서 싫었던 기억까지 바닷속으로 가라앉혀 오나봐.
그리고는 열차도 놓치고 머물 곳도 없어서 다 나한테 화풀이를 해. 왜 다 나한테 난리들이야? 하여간 요즘 여기 마음에 안 들어. 맨날 보던 풍경이라 이젠 예뻐 보이지도 않고, 입소문이 탔는지 점점 내리는 사람들도 많아져서 시끄럽기만 해. 할 수만 있다면 이 사람들을 모두 다시 열차에 태워서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낼 수 있으면 좋겠어. 겸사겸사 나도 돌아가면 좋고.
사람이 이렇게 간사해. 절벽 앞에서는 바다 가운데로 가고 싶고, 막상 바다로 나가면 흔들리는 배 위에서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온갖 생각을 다 하다가, 또 막상 뭍으로 나오면 바다가 그리워. 바다가 가고 싶은 것도 뭍이 재미없어서일 거고, 바다를 떠나고 싶은 것도 언제 빠져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일 텐데. 어디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어디서나 다른 것을 탐내. 사람이 그래. 그래서 내가 그 열차에서 내렸나봐.
분명 당신을 잊겠다고, 잊어보겠다고 열차에 탄 거였는데 얼마 못 가 내려버렸지. 당신에게 화가 나고, 싫고, 지긋지긋해서, 그런 당신이 더는 내 삶에 없었으면 좋겠어서 열차까지 탔으면서 여기 내려버렸어. 열차가 너무 빨라서,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고요했던 바다가 열차만 지났다 하면 파도가 몰아칠 정도로 너무 빨라서, 그 속도를 견딜 수 없다는 이유였지. 창 밖 세상은 눈 깜빡일 때마다 변하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열차 안의 괴리감을 도무지 견디기 싫었단 말이야.
나는 천천히, 당신이 내 삶에 남게 될 한 점의 기억까지 모두 음미하며 당신을 잊고 싶었어. 내 삶에 사랑했던 몇 안 되는 사람을 그렇게 빠르게, 가차 없이 잊고 싶지 않았어. 여유롭게 창 밖을 보면서 지나치는 모든 풍경 속에서 당신과 비슷한 것들을 찾아, 최대한 많은 당신을 끄집어내서, 여행이 끝나면 아주 조금이라도 아프지 않도록 당신을 천천히, 깊이 되새기며 잊고 싶었는데. 내가 열차를 잘못 탔나봐. 아니, 열차는 제대로 탔는데 내 마음가짐이 잘못됐을지도 모르겠다.
있잖아. 저기 저 뭍의 사람들처럼 당신도 날 욕하고 있을까? 남들이 날 욕하면 거기에 덧붙여 더 험하게 헐뜯고 있어? 그럴 정도로 내가 밉고 싫어?
아니면 너와 내가 사랑했던 그 시절 그 기억만큼은 자랑스러울 수 있을까?
그래. 잘 지내고 있지? 내가 이렇게 잘 지내는데, 네가 잘 지내지 못한다고 생각하긴 싫어. 네가 잘 지냈으면 좋겠어.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좋아하는 사람들 속에서 좋아하는 이야기만 나누며 너와 네 삶을 조금 더 좋아했으면 좋겠어. 그래야 날 떠난 보람이 있지. 나와 함께 할 시간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날 떠난 거라면, 홀연히 널 떠나보내준 날 위해서라도 지금 더없이 행복해주길 바라.
미련에서, 씀.
(레터리스트 노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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