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달을 타는 아이 : 세 번째
피터는 좁은 공간에서 누군가와 단둘이 있어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와 집에서 보냈고, 학교에서는 친구들이, 집에서는 엄마와 아빠와 동생이 늘 함께였다. 물론 그 누구도 자신을 봐주진 않았지만. 이렇게 점심을 거르면서까지 화장실을 찾는 이 시간은, 달을 타는 시간을 제외하고 피터의 삶에 혼자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
그렇기에 피터는 지금 이 순간 먹짱과 단둘이 있는 화장실이 세상에 겪은 수많은 공간 중 가장 낯설었다. 화장실에 들어선 피터의 몸짓이 어색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화장실 안쪽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문 바로 앞에서 쭈뼛거리고만 있다. 피터의 머릿속이 복잡하다.
애들이 찾던데, 얘가 왜 여기 있지? 얜 배도 안 고프나? 먹짱이라면서 배가 안 고플 때가 있나? 내가 나가야 하나? 지금 나가면 이상하게 볼 텐데. 볼일이라도 봐야 하나? 난 뭐든 마렵지 않은데. 어쩌면 좋지?
이런 피터의 속사정을 알 리가 없는 먹짱의 눈에 피터는 뭐 마려운 강아지일 뿐이었다. 그 뭐였더라, 티비에서 봤는데. 화장실 못 가리는 강아지가 주인한테 혼나면 그다음부턴 볼일 볼 것도 참고 그런다던데. 딱 그 꼴이잖아.
“애들이 너 찾던데.”
어색한 침묵이 불편해질 즈음 드디어 피터가 말을 꺼냈다. 괜스레 숨을 참고 피터의 말을 기다리고 있던 먹짱의 숨이 조금 트였다. 피터의 눈엔 그 모습이 한숨을 쉬듯 보였다.
먹짱은 한참 쳐다보던 피터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도로 세면대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잔뜩 젖어있던 머리칼이 그새 마르기 시작했다. 앞머리가 요란하게 뻗치려 하기에 서둘러 앞머리를 매만졌다.
“오늘 뭐 나와?”
“뭐?” 뜬금없는 먹짱의 질문을 피터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열심히 머리를 굴려 애들이 급식표를 두고 수군대던 것을 기억해냈다.
“카레덮밥이랑 칠리새우.”
“또?”
“음… 브로콜리였나. 맛없는 거였어.”
“그럼 또 자기들이 먹기 싫은 것만 왕창 주려고 나 찾는 걸 거야. ‘넌 살 빼야지~, 이따 집에서 맛있는 거 먹을 거잖아~ 우리가 다이어트 도와줄게~’ 막 이래. 맛있는 거 자기들만 먹으려고. 오늘 잔반 없는 날이지? 지들이 남긴 거 나보고 먹으라고 하겠지. 내가 무슨 음식물 쓰레기통도 아니고.”
피터는 먹짱이 뭐든 먹고 있는 모습과 그 모습에 열광하는 아이들의 모습만을 봤기에 먹짱이 왜 저렇게 투덜대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싫으면 안 먹으면 되잖아.”
“안 먹으면 애들이 싫어해.”
“뭘 싫어해?”
“유튜버 주제에 비싼 척한다고 뭐라 한단 말이야.”
“네가 안 먹으면 애들이 너 싫어해?”
“먹방 유튜버니까 어쩔 수 없지.”
“그럼 먹으면 좋아해줘?”
먹짱은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는, 신기하게도, 피터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란 것. 그리고 둘째는, 자신이 왜 피터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것. 정확하게는 자존심이 상했다. 먹으면 좋아해주냐는 질문도, 안 먹으면 싫어하느냐는 질문도, 그 어떤 질문에도 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 답하기 싫은 마음 그 자체가 드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다. 화가 났다. 분명 피터에게 난 화가 아닌데, 그때의 먹짱은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해서 피터에게 화를 냈다.
“아, 몰라. 시끄러워. 너가 뭘 알아? 알짱대지 말고 화장실 왔으면 볼일이나 보고 밥이나 먹으러 가. 여긴 내가 먼저 왔으니까 내 꺼야. 너 나가.”
피터는 억울했다. 먹짱이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억울했다. 피터는 먹짱을 알지 못했고, 사람들은 저마다 화를 내는 주제가 다 다르다. 부모님의 인스타그램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빠가 동생에게 밥을 먹여주는 평범한 동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가 갑자기 댓글에 악플이 달린 적이 있었다. 누구는 한 번도 육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다가 책 낼 때가 돼서 대중을 의식하며 찍은 가식적인 영상이라고 욕했고, 누구는 영상 구석에 잡힌 고급 승용차 키를 보고 애들 가지고 장사해 돈을 번다고 욕했다.
그날 피터의 아빠는 그냥 엄마보다 일찍 일어나 밥을 보채는 동생이 귀여워 영상을 찍었을 뿐이라는 걸 피터는 알았기에 사람들이 왜 아빠를 욕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러려니 했다. 사람들은 온갖 것에 화를 내곤 했고, 별 걸 가지고 트집 잡기를 좋아했으니까. 그러다가 또 새로운 동생의 사진이 올라오면 귀엽다고 난리였고, 새로운 아빠의 글이 올라오면 감동적이라고 난리였다. 사람들은 변덕쟁이란 것을 피터는 너무 잘 알았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피터는 왜 그에게 먹짱이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알지도 못하는 이유로 누군가의 화를 당하고 싶지 않았다. 쉬익쉬익- 피터가 눈썹을 찡그리는 만큼 숨을 뱉었다.
“나 배 안 고파. 볼일 보러 온 것도 아니야. 여긴 원래 이 시간에 내 아지트였어. 원래 여긴 내 꺼야. 나갈 거면 너가 나가. 왜 나한테 성질인데?”
“뭐야? 삐쩍 마른 주제에 밥이나 먹으러 가!”
“다이어트할라 그런다 왜! 너야말로 안 먹어서 다들 너 싫어하기 전에 밥 먹으러 가시지?”
먹짱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의 눈이 피터의 몸을 따라 시선을 그렸다. 헐렁한 반팔 속에 그대로 드러난 팔은 앙상한 나뭇가지와 같고, 반바지 밑으로 뻗은 다리는 과장하면 이쑤시개와 같았다. 저런 몸을 가지고 감히 자신의 앞에서 다이어트를 말하니 먹짱은 어이가 없었고 웃기지도 않았다. 분명 자신을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도 안 하는 다이어트를 왜 너가 하는데? 장난하냐?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잖아, 맞지?”
“뭐래. 너가 다이어트 하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인데? 너가 뭔데 내가 널 왜 놀려? 너야말로 장난하냐?”
“그럼 다이어트 왜 하는데? 말해보라고!”
“너가 알아서 뭐하게?”
“그냥 좀 알면 안 되냐?”
“넌 말해줘도 몰라.”
“한번 알아보면 될 거 아니야.”
“그러니까 너가 알아서 뭐하게?”
“나도 다이어트할라니까 그런다, 왜!”
이상했다. 그 이상함은 피터와 먹짱 둘 모두 느꼈다. 두 사람의 눈이 제대로 마주치는 순간 이유 없이 날이 섰던 두 사람의 서슬 퍼런 눈빛이 사그라들었다. 왜 싸웠을까? 왜 화를 냈을까?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무작정 싸우고 화를 냈던 두 사람은 이제 적어도 싸우고 화를 내야 할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미간에 잡힌 주름을 조금 편 피터가 사그라든 목소리로 말했다.
“왜 하려는데, 다이어트?”
“왜, 나 같은 돼지는 다이어트하면 안 되냐?”
여전히 먹짱의 목소리는 날이 섰지만 화가 났다기보단 으레 친구들끼리의 퉁명스런 대화에 가까워졌다. 그래서 이번에 피터는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너 먹방 유튜버잖아. 먹어야지 애들이 너 안 싫어한다며. 근데 다이어트하려면 안 먹어야 하잖아.”
“그…치. 맞지. 근데…”
먹짱이 처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행여 듣지 못할까 봐 피터는 한 발자국 먹짱에게 다가서 귀를 기울였다.
“나도 먹고 싶은 것만, 먹고 싶을 때만 먹고 싶단 말이야.”
무슨 생각이었을까? 피터는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다. 뭐랄까, 빚을 졌다고나 할까? 먹짱이 지금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가 어쩌면 먹짱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속 깊은 고민이자 비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아무런 대가도 없이 들어버렸다. 친구도 아닌 피터 자신이.
그래서 피터는 먹짱이 그의 비밀을 자신에게 알려줬으니 자신도 그에게 비밀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구도 아닌 녀석에게 빚을 지고 싶지 않았다. 단지 그 마음뿐이었다.
바깥이 점점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점심을 마친 아이들이 교실을 나오고 있는 것이다. 피터는 아이들이 화장실로 들이닥치기 전에 행동을 서둘러 먹짱에게 다가갔다.
불쑥 자신의 앞에 다가온 피터를 먹짱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봤다. 처음엔 자신을 바라보는 피터의 눈빛이 너무 올곧고 불타올라서 자신을 때리려 다가오나 싶어 뒷걸음질쳤다. 그런 먹짱에게 피터가 말했다.
“오늘 밤 10시에 동네 뒷산으로 와.”
“왜… 왜? 싫어. 내가 왜?”
“다이어트하고 싶다며.”
“응.”
“내가 왜 다이어트하는지 알고 싶다며.”
“그렇지.”
“알려줄게. 그러니까 나와. 알았지?”
“으…응. 알았어.”
피터가 화장실을 나섰다. 문이 열리자마자 곧장 아이들이 화장실로 들이닥쳤다. 그중 먹짱과 같은 반 아이들이 화장실에 우두커니 선 먹짱에게 한 달음 달려가 또 조잘조잘 떠들기 시작했다.
“먹짱 왜 여깄었어? 오늘 멸치볶음 완전 맛없었는데 너가 먹어줬어야지. 너 때문에 오늘 잔반 남겼다고 담임한테 또 혼났단 말이야. 아, 먹짱 때문에 다 망했어.”
어디서 먹짱이 여기 있다고 들었는지 하나둘씩 아이들이 먹짱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다들 오늘 급식이 얼마나 맛이 없었는지 얘기하기 바빴지만 먹짱의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지금 먹짱의 머릿속엔 온통 유유히 떠난 피터의 뒷모습뿐이었다. 그렇게 삐쩍 마른 녀석이 어째서 떠날 땐 그리도 듬직해 보였는지 먹짱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