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de in x Jun 21. 2019

당신의 새로운 시작은 어떤 계절인가요?

[에세이] 교환학생을 떠나는 당신의 인터뷰 : 첫 번째 편지

이 글은 실제로 20대를 인터뷰하고 작성했습니다. 평범한 20대로서 ‘다른 20대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이 글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질문으로 그들이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미래를 향한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가진 그들에게 연애편지 형식의 인터뷰로 위로와 응원을 하고 싶었습니다.
‘20대’라는 숫자에 집중하기보다 한 사람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와 누구나 공감할 만한 생각과 고민을 풀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당신에게.


안녕. 잘 지내요? 당신의 계절은 지금 어디쯤 머무르나요?


제 마음의 계절은 수시로 바뀌고 있어요. 하얗게 빈 편지지를 보며 아무도 밟지 않은 겨울의 하이얀 눈길을 걷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한 글자를 적어요. 발자국을 새기기 무섭게 계절은 봄이 되어 글자마다 당신의 이야기가 초록의 새싹처럼 피어나고 형형색색의 꽃으로 고개를 들어요. 당신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기쁨을 숨길 수 없어 입술을 꾹 물어도 잇새로 미소가 흘러나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살에 닿는 공기가 어항 속처럼 느껴지는 여름 장마의 먹구름이 드리워요. 까만 구름에서 언제 비가 내릴지 몰라 불안해져요.


마음의 계절이 변하는 까닭은 당신에게 쓰는 첫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멋들어진 말로 시작하고 싶었는데, 첫 편지라는 사실에 요동치는 마음이 멋대로 문장을 적어요. 긴장과 겁은 멀쩡한 사람도 한없이 모자라게 만들어요. 첫 편지, 새로운 시작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약한 존재 같아요. 무심코 적다가 또 지우고 다시 적어보고. 하염없이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을 무엇으로 누를 수 있단 말인가요.


당신은 곧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 독일로 떠나겠지요. 처음으로 떠나는 유럽이고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당신이 처음으로 해외에서 살아보는 꽤 긴 시간이 다가와요. 언어나 인종차별에 대한 걱정도 했지만, 그런 이유들이 당신의 새로운 시작에 먹구름을 드리우지 못했어요. 신기했어요. 새로운 시작에 겁내지 않고 기대된다며 밝게 웃는 당신이요.


그 표정으로 중학교 때 이야기를 하더군요. 피리 부는 사나이의 배경인 ‘하멜른’이라는 마을에 가보고 싶었다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인터넷 지도를 검색해서 파란 지붕의 교회를 봤을 당신의 모습이 떠올라요. 그땐 평생 못 가볼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 꿈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했어요. 기대감. 당신의 시작엔 온통 기대감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당신의 계절이 어디에 있느냐 물었지요? 지금 당신의 계절도 여름 같아요. 먹구름이 대신 햇살이 가득한 여름의 해변이요. 햇살은 별 거 아닌 모래를 반짝이는 보석으로 만들고 늦은 밤까지 지지 않고 자리를 지켜요. 해변에서 그 햇살을 온전히 피부로 맞으며 행복한 당신이 거기 있어요.


당신은 늘 새로운 도전에 두려움이 없을까요? 내리쬐는 햇살에 어떤 그늘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일까요? 누구나 과거의 좌절을 경험하면 도전을 주저하기 마련인데, 당신은 실패 없는 인생을 살았던 게 아닐까요?



그건 불가능한 일이지요. 다른 사람들처럼 당신도 원하던 학교에 떨어졌고 크고 작은 좌절이 계속 있었어요. 그리고 실패가 실력이 부족한 일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노력이나 새로운 도전을 시도조차 잘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눈 가리고 아웅’에 ‘고집불통’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면서요. 의외로 이번에 도전한 일이 당신에겐 도전을 위한 도전이자 다음 계절로 바뀌려는 작은 바람인가 봅니다.


과거에 겪은 당신의 좌절에 대해 판단할 자격도 없지만, 판단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노력에 대한 부족함도 당신만이 알고 판단할 수 있어요. 그저 실패에 눈물 흘렸을 계절이 편치 않았음이 분명해서 마음이 아리었습니다. 눈물과 함께 쌓인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기에 도전을 위한 도전에 용기를 낸 당신이 더 대단했어요. 경제적 도움 없이 혼자 회사에서 묵묵히 일하며 새로운 도전을 준비한 당신에게 어깨를 토닥토닥해주고 싶어요.


사실 당신이 독일로 교환학생을 간다는 말에 우려했어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주변 사람들 때문이라는 대답이 마음에 걸렸어요. 친구들이 SNS에 올린 유럽여행사진 때문에, 재밌다는 단편적인 이야기만 듣고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했어요. 같은 시기에 같은 나라로 가는 연인의 결정에 영향을 받았다고도 했어요. 유럽에 살면 행복하고 재밌을까?라는 단순한 부러움이 환상이 되어 현실을 고통스럽게 만들까 봐요. 당신이 묻지 않은 고민을 했어요.


이런 종류의 걱정은 언제나 릴 가능성이 있는 일기예보와 비슷해요. 봄 하늘에 벚꽃과 함께 날릴 미세먼지를 위해 일기예보를 보고 대비를 해야 해요. 그러나 비가 온다고 해도 오지 않을 수 있어요. 일기예보를 믿고 우산을 챙기지 않았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도 해요. 이번 일기예보는 틀렸어요. 당신의 결정이 부러움에서만 비롯되었다고 해도 응원했겠지만, 알면 알수록 당신이 남들을 따라 하기 위해 교환학생을 결심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더 나은 현실과 당신을 위한 시작이었어요. 제가 묻지 않아도 당신은 자신에게 이미 질문하고 있었어요.


‘알 수 없는 미래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아도 되는 걸까?’

‘일로 얻는 성취나 만족감이 돈을 비롯한 다른 가치보다 우선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좋아하는 일을 더 심화해서 공부하고 독일에서 일할 수 있을까?’


추상적이고 인생의 전체에 대한 질문부터 구체적인 진로까지 나름의 고민 끝에 떠나는 길이었어요. 평소엔 쉽사리 새로운 일을 시도하지 않은 당신이 결정한 새로운 시작이자 삶에 대한 목적을 찾아 더 행복해지길 바라는 첫 발자국이네요. 이제 햇살 같은 당신의 표정이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독일에 가서 기쁜 마음과 함께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기대와 설렘이었어요.

실패하지 않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겠지요. 먹구름에서 내릴 비가 두렵다면, 나가지 않고 안전한 침대 속에서 머물러도 돼요. 하지만 당신을 보고 들으니 새로운 시작이 걱정되고 두려워도 먹구름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의지가 생겨요. 일기예보 같은 걱정은 언제나 틀릴 수 있어요. 틀리지 않고 비가 내려도 큰 우산으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요. 먹구름은 더 까매지고 우산은 없는 상황이 와도 까짓것 말리면 그만인 옷과 씻으면 깨끗해질 몸으로 비를 맞아야겠어요. 두려움이 새로운 시작의 설렘마저 덮어버리지 못하게요.


먹구름이 가득했던 장마와 해변의 햇살이 있는 여름이 지나면, 곧 가을이 찾아와요. 당신의 가을은 수확하는 작물들로 풍요로울 수도, 떨어지는 낙엽처럼 쓸쓸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언젠가 계절은 또 달라지기 마련이고 계절의 새로운 시작에서 걱정하기보다 지금의 여름처럼 항상 설렜으면 좋겠습니다. 그 계절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입을 수 있는 옷을 입어요. 당신이 꿈꾸는 작은 도전으로 삶을 충만하게 가꾸길 바라요. 무사히 돌아올 당신을 이 자리, 어느 계절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당신처럼 새로운 시작을 하는 제이드 드림.



편지는 20대를 인터뷰하고 작성된 글입니다. 글에 사용된 그림은 글의 내용(편지)과 함께 인터뷰이에게 전달될 예정입니다. 인터뷰를 하고 편지를 쓰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아래 글을 봐주세요. ▼

https://brunch.co.kr/@jadeinx/91


매거진의 이전글 요즘 이십 대들은 어떻게 살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