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de in x Jul 06. 2019

이런 사람도 되고 싶고 저런 사람도 되고 싶어요?

[에세이] 선택의 미로를 헤매는 당신의 인터뷰 : 두 번째 편지

이 글은 실제로 20대를 인터뷰하고 작성했습니다. 평범한 20대로서 ‘다른 20대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이 글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질문으로 그들이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미래를 향한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가진 그들에게 연애편지 형식의 인터뷰로 위로와 응원을 하고 싶었습니다.
‘20대’라는 숫자에 집중하기보다 한 사람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와 누구나 공감할 만한 생각과 고민을 풀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당신에게


새벽에 문득 당신이 떠올라서, 오직 당신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영화를 봤어요. 늘 말하던 아멜리에라는 프랑스 영화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불어 사이로 주인공처럼 살고 싶다는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고, 매 장면마다 당신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묻고 싶었어요.


당신의 말마따나 짧은 앞머리와 귀 끝에 닿는 짧은 단발을 한 아멜리에는 귀엽고 순수했어요. 화장실 벽 안에 있던 오래된 물건의 주인을 찾아주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도, 매번 당하기만 하는 야채가게 종업원을 위해 사장에게 복수하는 장면도 사랑스러웠어요. 과거의 상처로 그녀만의 세계 속에 사는 것 같아 보여도 주변 사람을 알뜰하고 기발하게 챙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영화를 보니 당신이 더 그리워졌어요. 아멜리에엔 온통 당신뿐이에요. 주인공이 풍기는 분위기가 당신과 참 비슷했어요. 엉뚱한 상상에 말똥말똥하게 뜨는 눈도 닮았고 신나는 일을 마주했을 때 웃는 미소도 똑같아요. 그리고 영화 속 아멜리에는 곡식 자루에 손을 넣거나 작은 수저로 크림 브릴레를 깨뜨리는 것, 생 마르탕 운하에서 하는 물 수제비 뜨기를 좋아하더군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질문과 동시에 거침없이 말하는 당신이 떠올랐어요. 당신은 즐겨하는 게임과 연보라 같은 파스텔 색깔, 가족이나 연인과 보내는 시간,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좋아해요. 다 기억하고 있어요.

 


영화에 대해 흘리듯 말했던 마지막 말까지 기억해요. 주인공처럼 살고 싶은 마음과 달리 현실은 백만 광년 떨어져서 우울하다고요. 이미 충분히 사랑스러운 당신은 지금 무슨 고민을 할까요? 왜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느끼나요? 당신의 짧은 대답은 오히려 더 호기심을 생기게 했어요. 현실에 대해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걸까요? 미궁에 빠져서 더 해결하고 싶은 탐정이 된 기분이었어요. 당신의 말속에 숨은 흥미로운 단서를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은 영상을 만드는 일을 좋아하지만, 현실은 영상으로 먹고살기 힘들다고 했어요.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회사의 사람들은 재밌어도 회사는 안락한 공간이 아니라고 하네요. 인생에 목적이 확고해서 뚜렷한 계획과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실천하는 삶이 당신이 생각하는 멋진 어른이래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가 그냥 지금처럼 흘러가면서 살고 싶어 해요.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백수가 되고 싶은 마음 반, 영상을 만드는 직업에서 얻을 수 있는 성취를 꿈꾸는 마음이 반이래요. 복권은 안 사도 복권에 당첨되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하지요. 아, 다이어트는 한다고 말하고 맛있는 음식을 아주 잘 먹는 것도 귀여워요.


미로공원에 놀러 간 적이 있어요. 미로는 처음이라서 만만하게 생각하고 입장했어요. 길은 아무렇게나 선택하며 친구들과 웃고 사진을 찍고 떠들기에 바빴어요. 미로의 벽은 높은 나무로 세워져 끝도 바로 앞의 길도 보이지 않아요. 한창을 걸어간 길인데 직전에 서야 비로소 막혔음을 알게 돼요. 우연히 갔을 때 정답이기도 해요. 순전히 운이지요. 그렇게 한참 동안 미로를 헤매고 지친 탓에 나가고 싶었어요. 입장할 때 챙긴 지도를 보며 출구를 찾는데, 빨리 풀려고 할수록 착각해서 같은 길을 맴돌더군요. 당신도 비슷한가요? 지금 미로 속에 있어요?


나이의 앞자리가 1에서 2로 바뀐 이후로 당신은 자유롭게 펼쳐진 선택을 마주 했겠지요.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고 더 많은 자유를 책임져야 해요. 대학, 취업, 연애, 결혼 같은 굵직한 미래부터 내일 뭘 입고 무엇을 먹을지의 사소한 결정까지. 출구가 안 보이는 미로에 입장해요.


당신은 미로를 헤매는 건 당연해요. 스물넷, 우리에겐 아직 경험이 별로 없어요. 어떤 선택이 가장 행복한 미래로 가는 방법이고 누가 나에게 상처를 줄지 모르겠어요. 오늘 했던 생각이 내일까지 같다는 확신을 할 수 없어요. 좋아하는 일을 정말 좋아하는지 누가 알려주나요? 만에 하나 정말 좋아한다면, 그 일을 위해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까요? 누구나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는 방법을 원하겠지만요. 당신은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 듯했어요


아멜리에를 따라 엉뚱한 상상을 해봐요. 세상 사람들 전부가 거대한 미로 속에 던져졌다는 생각이요. 어떤 나이로 어디에 어떻게 살든 사람들은 미로가 처음이겠지요. 잠시 고개를 돌려 미로 속에 던져진 다양한 사람들을 봐요. 미로를 풀 생각은 없고 누워있는 사람이 있네요. 여유롭게 낮잠을 청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다음 사람은 송골송골 땀방울을 떨어뜨리며 뛰어가고 있어요.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에게 부딪칠까 황급히 자리를 비켰어요. 미로를 다 부수며 뚫고 지나가거나 날개로 미로의 벽을 넘어가는 사람도 있네요. 저 멀리 당신이 보여요.


당신은 가만히 서서 미로를 서성이고 있어요. 고개도 이리 갸우뚱 저리 갸우뚱 돌려보고 두리번거리며 다른 사람들을 살펴요. 그러고 나서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가요. 그리고 다시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해요. 아직 당신은 미로의 출구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당신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어요. 질문 대신 인정이 필요하다고 했던 씁쓸한 말까지요. 잘하고 있어요. 포기하지 않아서  고마워요. 발길을 정하지 못하고 서성거려도 상관없고 다른 사람들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도 괜찮아요. 긴 고민 끝에 한 발자국밖에 내딛지 못해도 충분히 스스로를 칭찬해주세요. 당신의 모든 결정이 당신이 생각한 최선의 선택이니까요.

그래도 아멜리에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영화의 마지막을 떠올려요. 아멜리에가 사는 집의 빨간 문 밖에 무엇이 있는지. 빨간 문 앞에서 그녀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당신은 이미 알고 있어요. 미로 속에서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된다면, 내게 꼭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당신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꺼내보는 새벽, 이미 잠들었을 당신에게 편지로나마 전해봅니다.


당신과 함께 미로를 헤매는 제이드가.



편지는 20대를 인터뷰하고 작성된 글입니다. 글에 사용된 그림은 글의 내용(편지)과 함께 인터뷰이에게 전달될 예정입니다. 인터뷰를 하고 편지를 쓰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아래 글을 봐주세요. ▼

https://brunch.co.kr/@jadeinx/91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새로운 시작은 어떤 계절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