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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태훈 Oct 23. 2020

편리의 미래

 

편리함이 뺏아간 깊은 즐거움

 구글스토어든 공짜 포털이든 공공데이터든 접할 수 있는 데이터가 늘어나는 시대이다. 기존 종이 미디어가 하던 일을 컴퓨터로 옮기고 단일 컴퓨터로만 하던걸 네트워크 상에서 하던 게 지난 00년대까지의 유행이었다고 한다면 10년대는 네트워크와 인간을 잇는 작업이 진행되었다고 나는 본다. 너무 추상적으로 이야기한 것 같으니 동물들도 다 하는 유희 게임을 기준으로 설명해보겠다.


 RPG 게임은 원래 미니어처를 가지고 상상을 말로 풀어내는 것이 시초였다. 룰북이란 것이 있어서 그 안에서 플레이어의 마음대로 자신을 꾸미고 행동하는데 이때 복잡다단한 현실의 원리를 반영하기 위해 주사위를 활용했다. 주사위가 6이 뜨면 쏜 화살이 적의 목에 맞는 것 주사위 1이 뜨면 주사위가 아군에 맞는 정도의 표현이다. 이것이 테이블 RPG다. 그 이후에는 주사위와 미니어처는 컴퓨터로 들어왔다. 대표적으로 폴아웃, 발더스게이트가 있다. 그리고 이것이 온라인 RPG의 시대로 이어졌다. 대규모 플레이어들이 실시간 전쟁을 치르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요즘에는 모든 것을 자동으로 진행하고 유저는 간간히 전반적인 틀이나 자원들만 관리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그다음이 무엇일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더 빠르고 더 간단하게 즐거움을 주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이 과정을 다시 추상적으로 표현하면 비용(주사위, 팀을 모으는 사회적 활동)은 외부에 맡기고 인간은 향유만 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독서문화나 푸드테크에도 적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편리함이 낳는 것은 그 활동이 플랫폼에 결속되는 것이다.


처음 주사위를 컴퓨터로 굴렸을 때는 플레이어들이 시간을 절약해 더 많은 시간을 유희에 투자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겠지만, 요즘 게임은 플레이어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요즘 유행하는 게임 산업에 남은 건 내가 게임 속 유능함을 현실의 돈으로 살지 안 살지 고민뿐이다. 산업화된 유흥의 결말이다.


 유저가 굳이 캐릭터를 만들 필요가 없이 서버가 캐릭터의 스탯과 스킬 셋을 제공한다. 유저가 굳이 캐릭터의 외형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게 일러스트로 캐릭터를 제공한다. 캐릭터는 스토리를 가질 필요도 없다. 유저는 와서 스토리를 구경하면 된다. 이렇게까지 오면 이미 게임이라는 것은 이미 영화랑 비슷한 어떤 것으로 변했다고 개탄할만한 것 같다.


트레이드 오프가 일어나는 곳은 게임뿐만이 아니다.

 이런 변화는 모든 곳에서 진행 중이다. 대면 대신 비대면으로, 비대면 서비스를 위해 터치를 여러 번 할 일을 한 번으로 처리하는 구독 경제. 이런 트렌드가 전 방위적으로 그것도 아주 고도화되면 인간에게는 어떤 헌신할 몰입할 가치가 남게 되는 걸까.


 친환경의 역설이란 게 있다. 비행기 연료가 매우 비싸던 시절에는 여행객의 수요가 적었다. 연소 후처리 기술이 좋지 않을 때 비행기가 뿜어낸 오염물질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점점 연소 후처리 기술이 좋아졌지만 비행기 연료가 점점 싸지면서 여행객이 늘어나 결국 오염물질의 총량은 변하지 않거나 오히려 늘었다. 절약도 마찬가지다. 냉장고의 전기효율이 늘어나 유지비가 줄어들면 우리는 또 다른 편리를 찾아 가전 가구를 늘린다.


 또 다른 예시로 다음 기사도 참고해보자. Big5 성격검사도구의 성실성의 과도함이 낳는 문제에 대한 기사다.


https://newspeppermint.com/2015/08/03/m-conscientiousness1/

 

 성실성 성격요인은 생산적 활동과 좋은 가정생활을 견인하는 긍정적인 성격 요소로 알려져 있다. 그런 성격 요인도 세상의 좋아짐에는 오히려 반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이혼율과 마약사범 문제가 떠오르지 않는가.


tokyo 'walts'


새로운 흐름은 시작된다.

 세상사 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이다. 편리를 거부하는 움직임도 있지만 그런 움직임은 고립되기 편한 지형이다. 고립이냐 끝도 모르는 편리(공멸이 예상되는)를 향한 흐름에 동참할 것이냐. 새로운 흐름은 없을까 그런 고민을 안 할 수가 없게 된다. 물론 이 글이 강조하고자 했던 건 극단점 편리함이 우리에게서 빼앗는 것을 부각해보는 관점일 뿐이다. 다른 관점도 얼마든지 우리는 차용할 수 있다. 레코드판 산업이 (또 최근엔 라디오 테이프도) 부흥한 것을 보면 어쩌면 우리는 편리함의 극단으로 향함을 통해 불편함이란 새로운 욕망을 찾아냈다고 볼 수도 있다. 역시 사람은 답을 찾는 동물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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