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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태훈 Feb 08. 2021

고전적 게이머 정신의 재조명

Return to classical gamer spirit

 

 나는 요즘 "고전적 게이머 정신의 복원"이라는 아이디어에 정신이 팔려있다. 왜냐하면 최근에 부상한 놀이문화들은 매우 소비적이고 참여자들에게 어떤 고통이나 성장의 경험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강하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는 그 시장의 그저 돈주머니일 뿐이라는 느낌마저도 받는다.


  예를 들어 OTT는 우리를 무한한 스토리텔링의 바다에서 자신을 잃게 만든다. P2W 게임들은 우리를 현질 or 열등감의 감수를 고민하게 만든다. 순간의 쾌락은 지나가버리고 허무함만이 남아 버리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유형의 자산이나 화폐와 관련된 것만이 허무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날카로운 사고 및 적응능력이다.


 고전적 게이머 정신은 내가 문제시하는 문화와는 다르다. 이들은 그저 흘러가는 비디오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다. 가혹한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 기능을 단련하고 지식을 탐구한다.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노력과 몰입뿐이다. 이 과정에서 언제나 공평하고 규칙이 있고 자율성을 보장하는 정신이 배경에 깔려있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 없다. 이런 놀이는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적응할 능력을 키우게 해 준다.


 불운하게도 요즘 게임산업을 보면 게이머 정신과는 멀게 돌아간다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소금물 먹임'으로 비유되는 현질 유도 게임, 영화를 지향하는 게임, 너무나 편한 것만을 경험하게 하려는 게임, 게임적 경험보다 컬렉션이 더 중요한 게임. 게이머들을 단련시키고 노력하게 만드는 '고전적 게임'들과는 너무나 큰 괴리를 가진 것들이 대세를 점유해가고 있다. 이미 어떤 측면에선 돈 쓰는 맛을 즐기는 수단, 그저 도박에 대한 갈망을 강원랜드 안 가고 풀기 위한 수단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서 병적인 무언가를 감지하고 비판을 하고 있다. 다만 무엇이 병인지는 하나하나 정확히 규정하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군다나 그것의 우월성을 따지는 것도 의미 있는 일도 아니다. 중세의 귀족계층은 하층민을 착취해 얻은 잉여자산을 과시적으로 낭비하는데 몰두했었고 그 덕에 여러 가지 문화들이 발전했다. 그리고 그런 문화는 중세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그보다 고대에도 현대에도 여전하다. 선진국의 사람들은 돈이 많다. 잉여자산으로 고퀄리티의 일러스트, 연출, 그래픽, 보이스, 대규모 서버가 반영된 '블록버스터' 게임이 발전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리고 그 문화를 즐기려면 입장권은 비싸다. 

 

 이런 것은 고전적 게임과는 거리가 멀다. 고전적 게임은 놀이의 본질에 충실한 것이다. 사회적인 과시를 위한 수단이 아니다.


 푼돈을 가지고 가성비를 따지며 귀족들의 파티장에 들어가 블록버스터를 구경하고 가상의 소셜에서 '깔개' 또는 '반찬' 역할을 하느냐. 진정으로 모두에게 열려있는 놀이의 장에서 스스로의 위대함을 증명하고 타인과 공명하는 경험을 추구하느냐.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언제나 가치는 모호한 경계를 가지고 분류하는 작업은 어렵고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다만 그 반대로 무엇이 건강한 건지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것인지 정도는 스스로 설정하고 체감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런 배경에서 나는 고전적 게임들이 가졌던 지향점을 여전히 공유하는 게임들을 지지한다. 소박하지만 간결하다. 현금보다 운이, 운보다 실력이 좌우하는 게임 경험을 지지한다. 대리만족보다 스스로 성취감을 얻는 게임 경험을 지지한다. 편하지는 않지만 각자 다른 인간 내부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그 도전을 지지한다.


 2021년에는 이런 내 믿음들을 반영한 활동을 많이 하고 싶고 또 그것을 믿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공유하고 싶다.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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