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태훈 Jun 08. 2019

개인주의 철학산책

똑바로 서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릴 때부터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여러 가지 매체 기웃기웃거렸다. 이 대장정에선 감성에 호소하거나 고통에 공감하면서 좋은 게 좋은거야라는 뻔한 이야기를 듣는 건 참 쉬운 일이다. 나는 그런 것들에서 은혜를 받기가 참 힘들었다. 그 와중에 내 마음에 쏙 들어왔던 것이 있었는데 그게 개인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삶의 이해 방식이다. 오늘은 그걸 소개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연애상담으로 인기가 있었던 라디오. 맨날 헤어져가 답이다.

 나에게 그 첫 만남은 김어준이었다. 당시 그와의 첫 만남은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 이 라디오는 한국의 굳건한 '정답'을 쫒는 문화에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걸으라고 했던 것으로 나에게 기억된다. 나꼼수를 할 때까지도 그는 정답에 대해 돌을 던지는 사람이었지만 요즘은 자신이 사랑하는 대통령을 지키는데 열심인 것 같아 아쉽긴 하지만. 어쨌든 그는 무언가 틀린 길을 가면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거라고 겁먹고 있던 나에게 자신의 길을 가라고 말을 해준 첫 번째 사람이었다.


암 치료를 거부하셨다더니 요즘도 글을 쓰시는 것 같다.

 그다음은 대학생 시절 경제와 자본주의 시스템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공부하던 중 접한 복거일이다. 사실 한국 지식인 또는 언론에서 다루는 경제학 담론의 색깔은 두 가지다. 대기업 편을 들기 위해 펜으로 시장주의를 곡해하려 드는 사람(최근에 경제신문에서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의 저서를 왜곡해서 번역하다가 들킨 해프닝도 있었다)이랑 좌파운동의 정당성을 과장하기 위해 자본주의 시스템이 잘 다루지 못하는 지점을 호도하는 사람. 이런 세태에 복거일은 시장주의를 중심으로 건전한 사회발전을 위한 자유주의와 문화적 자유주의를 강조한 사람이다. 그는 좌파우파 주류 세력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지식인이었다. 어쨌든 균형 잡힌 시각으로 개인의 결단을 존중하는 경제관에 많은 영감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덕분에 스튜어드 밀 책도 읽었다. 개인주의는 사실 자유주의와 한 몸이다. 집단주의 운영체계에 자본주의를 설치하여 사상 실험을 하고 있는 동아시아 3국에 경의를)


사회 불감증을 해결하고 한국판 오성운동을 위해 노력하는 방송

 그다음은 마음에 울리는 목소리를 들은 건 '황상민의 심리상담소'였다. 황상민 박사는 WPI라는 성격유형 검사로 유명한 사람인데 이글의 주제는 아니고 그 사람이 평소에 개인의 문제에 대해 통념적으로 빠지는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생각의 철학적 근간에 개인주의를 사용하고 있다는 걸 최근에야 통감하게 되었다. 사회 탓을 하거나 도덕적으로 잘못한 사람을 비난하고 '착한 사연자'를 위로하기보다는 왜 당신이 그 상황을 알면서도 어떤 결단도 하지 않았는지를 지적하는 부분에서 그 철학의 베이스가 깜짝깜짝 튀어나온다. 늘 하는 위로- '힐링'을 모르핀으로 규정하고 사실이나 문제를 똑바로 보라는 점에서 그의 잔인함이 개인주의적 철학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그는 자기 말이 잔인하게 느껴지냐고 옆 사람에게 묻지만 사실 아무 말도 안 해주는 사람들이 진짜 잔인하다)


개인주의자로 살아가기 본격 지침서

  그다음은 드디어 이 책이다. 꽤나 오래된 책이지만 나는 이 책을 늦게 읽은 편이다. 이때부터 harmless 하게 착하게 사는 것을 응원하는 문화에서 벗어나 NO를 말하는 삶의 단서를 찾은 것 같다. 이 책의 내용은 명료하다. 과업을 분업하고 정직하게 말하고 자기 문제를 사회의 문제로 던지지 말라. 이런 삶의 어려움도 2권에서 묘사된다. 현실에서 나쁜 인간이 요구하는 부당하고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모든 것에 대해 싸우는 삶을 싸워야 한다고 젊은 청년에게 말한다. 비록 그것 때문에 자기가 힘들더라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좌파나 우파가 맛있게 요리해놓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체감도 하게 된다. 처음엔 그게 무섭기까지도 했다.


네이버의 진주

 네이버 뉴스에 쓰레기 같은 기사들만 읽다가 가끔 진주 같은 글을 읽을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임경선 이 기고한 칼럼들이었다. 처음엔 '어 괜찮네'라고 했다가 자꾸 보다 보니 세상에 이런 이야기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대개 가정의 사연을 다루다 보니 나랑 연관시키기 힘든 점도 있지만. (그러고 보니 황상민, 임경선 둘 다 맥북을 쓴다)


유명한 그분

 SJW 운동에 바른 소리 하다가 교수 해임될뻔한 걸 계기로 중년 아이돌이 되어버린 피터슨.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공동체주의적 갈망과 개인주의를 잘 얽은 사람이다. 그의 철학은 잘 보면 방 정리 잘하면 세계를 구할 수 있다로 들려서 수신제가치국이랑 비슷한 것처럼 들리지만 결국 들어가 보면 네가 똑바로 서야 하고 거짓말 안 하고 싸워야 한다로 귀결된다. '충성'이나 '조화'를 위해 언급되는 한국 유교가 아니다. 권력있는 가재, 정직하고 강한 사람이 돼서 세상을 똑바로 세우라는 이야기다. 그동안 구조주의적 사고에 천착하던 좌파에 대한 엄청난 반작용으로 떠오른 그도 역시 개인주의 철학이다. 막연하게 '나는 사회에 의해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어요'라고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그는 직언하기를 좋아한다. 행복 대신 고통이 주는 가치를 역설하는 그도 역시 무서운 이야기를 한다. 그 책을 요약하면 예수 같은 삶을 살기 위해 평온한 삶을 포기하라는 거니까. (동시에 자기는 지독한 자본주의자고 요즘 돈 많이 번다고 고백하는 거 보면 재미있는 사람이다.)


집에서 나체로 있는 사람과 결혼 이야기


 여러 가지 미디어를 소개했으니 만화도 소개하자면 '라라라'라는 만화인데 여주인공이 철저한 개인주의 철학을 고집한다. 만화니까 과장되게 표현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녀의 행동을 잘 보면 위에서 소개했던 철학들을 그대로 실천하는 삶을 보여준다. 만화라고 했지만 피터슨이나 황상민이 문제를 뭉개는 방법 대신 대차게 싸우기를 택하고 좌파든 우파든 다까기를 하다가 어디 쪽의 사랑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 개인의 일상에서만 실천되는 개인주를 다룬 라라라는 오히려 현실보다 더 순한 맛이다. 자신의 일을 정하고 자신의 느낌에 충실하며 도망치기보다 싸운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런 삶을 걸어 나가는 걸 보면 나도 저런 배우자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상상이 될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다. 그런데 나도 그녀랑 비슷한 성격이다 보니까. 그렇게 구분되어 있기를 좋아하는 성향이 비슷한 두 사람이 이어져서 결혼에 골인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참 어려운 꿈이다.


 여기까지 개인주의 철학의 향기가 나는 팟캐스트, 일반교양, 만화 여러 매체들을 소개했는데 서로 다른 방법이지만 그 메시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과 사회, 타인을 저주하기 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에서 개선의 노력을 한다.

집단의 목소리, 도덕의 목소리로 타인을 조정하거나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 하지 않는다.

막연한 불만이나 사회적 문제에서 자신을 규정하지 말고 자신의 문제를 명확히 규정한다.

과업을 분할하고 내 문제를 해결한다. 타인을 돕는 건 그 사람이 하고자 할 때 시작한다.

개인의 결단을 존중하는 사회를 지향한다. 목소리를 억누르는 모든 권위적 시도와 도그마에 저항하자.

욕먹어도 정직하게 살자.


 당신의 성격과 무관하게 개인주의 철학은 위의 것들을 우리에게 주문한다. 평온을 추구하던 이들에게 이런 설루션은 아프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각자 글쓴이가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개인주의 철학만큼이나 아끼는 철학의 방법, 인생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것들이 영 신통하지 않았다면 이번 여름은 개인주의 철학을 만나보는 게 어떨까. 나는 그게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기생충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