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배우는 '접근과 회피' 문제의 해결방안
우크라이나 전쟁은 나에게 많은 화두를 던져주었다. 개인과 국가의 관계, 권리의 정당성, 강국이 이익을 관철하는 과정. 러시아에 굴복하지 않고 싸운 대가로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인 지정학 이익과 세상에서 가장 거리가 먼 사람들이 죽었다. 이럴 때 나는 한반도의 지난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고구려는 당나라와 싸우다가 멸망했다. 그에 반면 신라와 고려, 조선은 황제국의 속국임을 인정함으로써 평화롭고 안정적인 시절을 보냈다. 그 평화가 공짜는 아니었다. 황실의 수족이 되어 때론 군대를 파견하고 공물과 노비를 바치고 독립된 주체로서 마땅히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중국의 지배관계에 흠을 내지 않도록 스스로를 검열해야 했다. 그것으로 얻어낸 평화는 얼마나 가치가 있었던 걸까?
비용을 감수하는 평화, 어떠한 타협도 없는 진정한 평화를 얻기 위한 싸움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까 구체적이지 않은 상상만으로는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황제국에 숙이고 평화를 선택한 신라, 고려, 조선의 왕족들은 국민의 안녕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왕권을 유지하는 게 그들의 이해에 최선이었기에 평화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현재 북한도 크게 이와 다르지 않다. 김정은이 핵무장을 통해 한반도 긴장을 유지하는 건 인민의 평화와 주체적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부 불만세력들을 단속하고 외부 침략도 억제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영속화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보면 신라부터 북한 김 씨 왕조까지 이 역사를 지배한 것은 국력의 격차에 따른 패배주의와 알량한 정치 엘리트들의 타협이었다.
그러나 그 타협이 영구적으로 우리에게 나쁘게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 외세에 완강히 저항하며 전투적인 태세로 살았던 몽골, 티베트 같은 국가들이 한때 자신의 제국까지 세우며 영광을 높인 결과. 청나라에 복속되어 결국 중화제국의 일부로 tainted 되어 버렸고 이는 현대 중국이 탄생했을 때 중국인들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하고 그들의 영토 병합을 강행하게 되는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한반도 왕국은 그것과는 반대였다. 긴 역사 동안 각인된 ‘조용히 황제국을 섬기는 이미지’ 덕에 홍타이지는 조선을 위험하지 않았다고 보았고 청나라를 섬기겠다는 약속만으로 전쟁이 끝나게 된다. 이는 조선이 중화제국의 범위에 편입되지 않는 결과를 낳았다. 만약 조선을 청나라의 배후를 위협할 수 있는 무서운 나라라고 홍타이지가 판단했다면 티베트와 한국의 운명은 반대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한민족 역사 최대의 전성기를 살고 있다. 고구려 이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최고의 수준의 주권을 행사하며 자유롭게 살고 있다. THAAD 같은 것도 배치해보면서 말이다. 유사시에 조금만 손보면 바로 중국을 감시할 수 있는 무기체제를 북한만 견제하는데 쓸 거라고 알랑방귀를 끼고 있지 않는가. 조선시대였으면 생각도 못 할 일이다. 패배주의적 저자세가 준 운명의 바통. 이렇게 보면 무조건 나쁜 것처럼 보이는 패배주의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포커에서 결단 없이 Die를 반복하면 마지막에 올인을 해야 하는 운명에 처할 수도 있지만 언젠가 좋은 패를 만날 수도 있는 것처럼. 운명은 모른다.
한국의 역사를 생각할 때 나는 유대 민족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침략에 저항했지만 로마에 멸망하고 여러 번 독립을 시도하다 패배하고 결국 자신의 고향에서 강제 추방당해 전 세계를 방황했다. 하지만 그들은 잊힌 여타 수많은 민족들처럼 다른 사람들과 동화하여 적응하기보다 독립적인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왔고 결국엔 영토를 구매해 기반을 마련한 뒤 팔레스타인들을 쫓아내고 독립했다. 전쟁은 계속 이어졌다. 그럼에도 연전연승 마지막엔 핵무장까지 하며 완벽한 자신의 주권을 되찾았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주권이 조상님들의 패배주의적 태도와 미국의 이념전선에 대한 열정이 부딪쳐 생성된 기막힌 우연의 부산물이었다면 유대인들의 운명을 지배한 것은 이천 년에 가까운 세월로도 지울 수 없었던 종교적 정체성과 주권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건 싸움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싸움이 유대인들처럼 좋은 결과를 만들진 못했다. 소아시아, 동유럽에는 이름 없이 사라지거나 거의 절멸된 수많은 민족이 존재한다. 의외로 길게 살아남은 것은 전쟁을 선택하지 않은 이들이었다. 이스라엘 지역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은 마지막 한 명까지 결사항전하지 않았다. 패배로 힘의 차이를 인정한 이들은 지배권력의 차별을 수용하며 게토화 된 지역에서 살며 강력한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공동체를 유지했다.
유대인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타협을 자기 보존적 타협이라고 명명한다면 이와는 반대로 자기 파괴적인 타협을 하는 사례는 인도나 동남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주권을 상실한 뒤에 적극적으로 서구문화를 숭배하며 자신의 피부 색깔을 희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해서 정말로 그 사람의 피부 색깔과 삶, 질서가 좋게 바뀌었는가? 바뀌지 못했다. 모든 것을 리셋시킨 2차 대전으로부터 7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발전하지 못하고 재자리 걸음을 걸을 뿐이었다. 필리핀은 필리핀이 돼버렸다. 가장 진보적인 인도인들이 실리콘 밸리에서 인도인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을 동안에도 대다수의 인도인들의 정신은 카스트 제도를 기반하여 누군가를 차별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견고화하고 있다. 이런 자기 파괴적 타협은 개인의 측면에서도 벌어진다.
민족과 국가와 개인이 완전히 똑같은 이치로 작동한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대변동 위기, 선택, 변화』같은 책은 국가의 운명과 개인의 운명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논증하고 있다. 나도 그의 관점을 지지하는바, 민족과 국가에 적용된 이치를 한걸음 확장시켜 개인의 삶에 적용시켜보고자 한다.
격류가 흐르는 내울을 건너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해보자. 몸을 가누기 힘든 급류에 몸을 맡겨 떠내려가도록 놔둘 것인가. 아니면 내가 생각한 방향으로 한 걸음 한걸음을 내딛을 것인가. 어쩌면 급류에 몸을 맡기고 떠내려가다 물살이 약해진 곳에 도착해 손쉽게 내울을 건널 수도 있다. 억지로 걷다 지쳐 쓰러져 발조차 닿지 않는 곳에서 익사할 수도 있다. 강에 발을 담그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렇게 보면 세상에서 살아남는 건 하늘에 맡겨진 일. 하지만 물에 떠내려가는 순간 처음에 생각했던 목적지에는 도착할 수는 없다는 건 확실하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에 전적으로 달린 문제다.
항상 위험을 선택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기에 우리는 종종 그것을 피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시도하지 못함을 아쉬워한다. 원하면서도 피하는 것. 이런 작용을 심리학에서 ‘접근과 회피’라는 이름으로 다룬다. 원하는 것을 위해 갈등을 선택하게 되면 당장 리스크를 안아야 한다. 결과는 좋을 수도 있지만 안 좋을 수도 있다. 회피하게 되면 우리는 순간의 안정을 얻는다. 갈등을 선택할 때 우리는 성장하고 최종장엔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하지만 진짜 위험을 회피하지 못하면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접근과 회피에서 유발되는 심리적인 갈등은 냉소주의를 부른다. 냉소주의는 회피에 따른 심리적 방어의 결과다. 싸움을 회피하면서 놓쳐버리는 기회를 평가절하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반면 진지한 패배에는 냉소와 관계가 없다. 실패의 아픔과 성공하지 못한 안타까움만이 있을 뿐이다. 절치부심하며 다음 기회를 노리는 사람에겐 기회와 과거의 자신을 평가절하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냉소란 방패가 없을 때 우리의 마음은 무방비하게 내부와 외부의 평가에 노출된다. 이것은 마음에 상처를 낼 수 있다. 그런데 다행히 우리는 그 상처를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첫째, 마음의 상처는 우리가 상처가 있다고 믿는 만큼 아프다는 특징이 있다. 상처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금세 잊힌다. 둘째, 요즘 사회는 원시부족사회보다 훨씬 험담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다. 익명사회의 몇 없는 장점이다. 당신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고 해도 잠자리에서 머리가 깨질 위협도 없다. 따라서 요즘 같은 사회에 진정으로 우리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건 스스로에 대한 자기 비하뿐이다. 이러한 시대에 맞는 싸움의 방법만 잘 익힌다면 우리는 마음에 상처를 걱정하지 않고 끝없이 싸움의 길을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하며 성장하는 기쁨을 만끽하며 살아갈 수 있다.
젊은 시절 좌파 계몽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나이를 먹은 뒤에 우파로 전향하거나 냉소적 태도로 일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역사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윤치호나 ‘후쿠자와 유키치’. 굳이 과거의 인물까지 보지 않아도 나이 먹은 사람들이 보수적인 길로 향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더 이상 변화와 싸움을 선택하며 감당해야 하는 비용과 불안을 감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심은 알고 있다. 그렇게 공포와 실패에 방점을 두고 변화를 선택하지 않을 때 정신의 죽음이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인간은 의미의 동물이다. 의미가 주어지지 않을 때 우울감이 찾아올 뿐이고, 그리고 의미를 원하는 전사에게 두려운 것은 등의 칼자국이지 죽음이 아니다. 흉터마저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게 인간이니까.
정리하면 국가와 개인의 운명에서 패배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최악의 사건은 자기 정체성을 포기하거나 싸움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며 관조하는 냉소주의에 무릎을 꿇을 때 시작되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냉소주의와 정체성의 상실이지 패배나 성공에 따른 부산물이 아닌 것이다. 이 글을 보는 이들이 (특히 나) 냉소의 유혹을 이겨내고 계속해 인생의 항해를 할 수 있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