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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태훈 Nov 17. 2022

조직의 문화를 조직하기

스타트업으로 보는 위계적 질서와 합리적 질서의 융합

문화와 기업의 관계

 지금은 기업의 시대, 다극화된 세계질서 속에서 각 기업들이 자신의 강점에 맞춰서 생존하는 모습을 세계지도에서 바라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보인다. 세계 최고의 정밀도와 최고 최대 규모의 제조업이 있는 기업은 아시아에 있고 최고의 금융인프라와 브랜드들은 서구에 몰려있다. 이것은 단순히 산업 발전사에 따른 우연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동양과 서양의 기업이 한때는 모두 같은 시장에서 열심히 싸웠던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은 문화적 차이의 결과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문화에 어떤 힘이 있기에 기업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걸까? ‘노동력과 경영의 성질’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예전에 폭스콘의 노동환경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고밀도로 밀집된 사람들이 컨베이어 벨트 앞에 모여 생리활동까지 억제하며 장시간 서서 작은 물체를 다루는 작업을 동아시아 사람들은 기꺼이 해내지만 그것을 서양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고 기사는 다루고 있었다. 실로 그렇다. 그래서 TMSC가 최고가 되고 버핏의 두 번째 IT 포트폴리오가 된 것이다.

 경영학에선 아시아인들이 고맥락 문화를 가지고 위계적 질서에 많이 좌우된다면 서구 기업은 그 반대로 합리주의적 질서에 의해 좌우된다고 해석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동아시아 사람들은 타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에 살고 있고 서양은 반대다. 서양중에서도 특히 미국인들은 타협을 지질한 것으로 보는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그것은 미국의 Frontier 정신으로 대표된다. 그 정신 속에서 그들은 주어진 삶을 유지보수를 하며 안정적인 삶을 꾸미는 것을 멸시하고 개척하는 것을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으로 여긴다. 문화권 별로 이렇게 생각의 결이 다르니 경영도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당연히 노동자의 태도와 노동의 강도도 달라진다. 기업이 국가의 운명이라면 문화는 국가의 운명인셈이다.


문화로 결정된 운명들

 자신의 비전을 추구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서구적 문화에 기반한 R&D, 일관성 있는 브랜딩을 통한 장기적으로 획득한 프리미엄을 바탕으로 한 막대한 영업이익 그것이 애플이다. 반면 비전보단 결합력과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며 이를 '관리의 삼성'이란 아이콘으로 대표되던 삼성전자는 선도적인 기술도입과 미세공정 분야에서 앞서지만 의미 있는 R&D와 브랜딩을 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 차이는 긴 세월에 걸쳐 드러났다. 전화기가 공산품으로서 가격 경제력과 품질만 보증하면 되는 시절엔 삼성전자가 시장을 지배했다. 하지만 전화기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명품(지위재)가 된 현재의 시점에선 지배자는 애플이 되었고 버핏의 포트폴리오에 들어간 최초의 IT기업이 되었다. 휴대폰을 만들지도 않던 회사가 휴대폰을 만들던 전문가 그룹을 이긴 것이다.

 삼성 말고도 다른 예도 있다. 국외시장에서 항상 죽을 쑤던 현대기아 자동차는 외국에 디자인 R&D 센터를 짓고 외국의 네임드 디자이너들을 대거 채용한 뒤 해외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이런 측면을 보면 확실히 아시아에서 지배적인 위계적 질서는 브랜딩과 R&D에 취약하다. 위계적 질서는 군대처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데는 유리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찾고 근본적인 대답을 내는것과 사람을 설득하는 데는 취약하다. 

 그러나 현대와 기아에 벌어진 이 변화는 우리에게 하나의 아이디어를 준다. 바로 기업 안에 여러 가지 문화를 수용함으로써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문화 혼합이 이긴다.

 현대기아 자동차에서 벌어진 이 사건을 나는 '문화 혼합’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조직의 일부를 이질적인 문화와 접목시키고 기능을 맡긴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체적으로 볼 때는 수준 낮은 문화 혼합이다. 조직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각 문화는 자신의 격벽 안에서 놀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더 높은 수준의 문화 혼합의 예로 스타트업을 이야기하고 싶다. 스타트업은 현존하는 조직 중 문화를 가장 기민하게 경영에 고려하는 조직이다. 근래 매년 조직문화를 다루는 베스트 셀러들은 모두 스타트업에 대한 책이었다. 문화가 기업의 운명을 결정한다면 스타트업의 문화를 분석해보면 어떤 문화가 최고의 생산성, 최고의 혁신과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최근에 읽은 토마스 란폴트의 ‘피터 틸'이란 책은 피터 틸이 ‘팔란티어’를 어떻게 구성하고 그가 혁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소개하고 있다. 나는 그 책의 내용을 기반으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영역에서 혁신을 하는 조직은 '위계적인 질서와 합리적인 질서 사이에 어떤 포지션'을 선택하는지를 분석하고 현실에서 자주 보게 될 ‘동료’, ‘팀’, ‘회사’는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지 써보려고 한다.


팔란티어의 합리적 질서

 피터 틸은 그가 시장 자유주의자임에도 경쟁을 좋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경쟁에 이기기 위해 몰두하면 나머지 능력을 기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론 경쟁이란 자체가 시장에서 독보적 포지션을 차지하지 못하고 남들이 하는 걸 뻔하게 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쟁을 중요하게 여기는 '위계적 질서'와는 먼 이야기다. 가장 성공적인 테크기업인 아마존이나 테슬라, 스페이스엑스가 높은 노동강도와 경쟁을 미덕으로 여기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이례적이다. 보통 경쟁의 낭비적인 측면을 주목하며 합리적인 소셜 엔지니어링을 강조한 것은 좌파 섹터의 담론이다. 그렇다면 그와 팔란티어는 합리적 질서로 무장한 공산주의적 조직일까?


사적인 네트워크를 중요하게 여기는 팔란티어

 합리적 기업이라 하면 모두에게 평등한 블라인드 채용을 하는 열린 네트워크가 떠오르지만 팔란티어는 그런 회사가 아니다. 그의 회사는 오직 스탬퍼드 졸업생들만 올 수 있고 회사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공개되어 있지 않다. 피터 틸은 외부의 객관적인 컨설턴트의 조언 대신 그의 생각을 비판할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측근과 친하게 지내며 그 소수의 의견을 중하게 듣는다. 나아가 그들은 사람을 고용할 때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지를 체크한다.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회사의 목표의 달성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면은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질서와 거리가 멀다. 오히려 끼리끼리 모여 패거리 질서 내에서 안정감과 동질감을 추구하는 위계적 질서에 가깝다. 


비합리적 목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스타트업

 합리적이기 위해선 모두에게 받아들여지는 타당한 근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합리적인 것만을 쫓아선 비즈니스의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기 힘들고 계산기의 값이 뚜렷하게 나오는 레드오션에서만 싸울 수밖에 없다. 합리적인 기회엔 누구나 달려들지 않을 이유가 없고 작은 파이라도 만족하면서 경쟁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틸은 경쟁을 피하려고 하며 경쟁을 피하기 위해 누구도 쉽게 접근하지 않는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컬트적 열망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팔란티어의 구성원들은 스스로를 회사원이 아니라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서브컬처’ 신도 집단이라 생각한다. 주식이 상장하는 날 뉴욕에서 샴페인을 터트리는 대신 회사에서 티셔츠를 입고 ㅂ드게임을 즐기는 팔란티어의 모습은 컬트집단으로서 스타트업의 정체성을 잘 드러낸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가치를 우리들은 알고 있다.'은 틸의 리더십에 드러나는 조직문화의 정수다. 극단적인 종교에서나 볼 법만 이런 마음가짐에는 결단한 이들의 삶과 일에 강력한 동기부여를 하는 힘이 있다. 누구도 알지 못하므로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선 자신들이 직접 그것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일론 머스크나 틸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서브컬처의 리더다. 기독교가 황제에 의해 승인되기 전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서브컬처였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숨겨진 비밀을 믿고 찾는 사람만이 비밀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메시지이다. 비밀을 쫒는 비합리성의 감수 그것이 스타트업 문화의 본질 중 하나이며 합리를 요구하는 일반 조직과는 가장 대비되는 지점이라 생각한다.


스타트업은 결혼 생활과 비슷하다

 허니문부터 죽음의 골짜기까지. 결혼과 스타트업은 합리적 정신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모험과 갈등의 해결을 요구한다. 서로에게 양보하고 헌신할 수 있어야 하는 팀 활동에 만약 소모적인 정치를 채택하며 매 순간 측정된 리스크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 깍쟁이가 있다면 과연 좋은 팀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측면에서 틸의 회사는 비합리적이며 위계적인 이미지로 비치는 ‘팀을 위한 양보'를 요구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입장에선 "꼰대"소리들을 만한 회사다.

 소모적 토론을 이 책은 ‘참호전’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책에선 팔란티어가 토론을 하되 그것이 참호전으로 변하는 것을 막는데 주력을 한다고 한다. 토론이 의견을 수렴하고 방향을 찾기 위한 합리적 질서의 대표적 상징이라면 집단과 외집단 구분으로 벌어지는 감정적 신경전은 위계적 질서의 대표적 산물이다. 팔란티어는 전자는 긍정하면서 후자는 부정한다. 어떤 체제의 긍정적인 면은 흡수하고 부정적인 면은 배척함으로써 각 질서의 이익을 최대한 피킹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살면서 그런 식의 '진정한 토론'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가능한 뛰어난 사람들을 모으지 않는가. 그리고 팔란티어는 그들에게 ‘그 일은 당신만이 실현할 수 있다’라는 동기부여를 통해 그들 모두를 절체절명적인 운명으로 묶어 그 비전을 가능케한다.

 이것은 오직 스타트업에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모든 회사가 하나의 배라는 비유는 이런 의미에서 틀린 이야기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회사의 주인은 법적으로 정해져 있고 세세한 계약으로 묶인 피동적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선 가능하다. 스톡옵션을 가진 모든 이들이 주인이고 모두 피동적 생활을 하기 싫어서 모험을 선택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동기부여는 모든 조직의 영원한 숙제다. 일반적인 업무를 결혼생활의 수준으로 까지 결합시켜버린 스타트업들의 프랙티스는 이 영원한 숙제에 대한 답이라 해도 과장이 아닌듯하다. 심지어 이들의 결론은 결혼생활에서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론하되 소모전은 하지 않아야 하며 각자가 운명적인 기여를 해야 하는 건 결혼도 마찬가지니까.


 개인의 자유를 위해 국가를 위해 일하는 틸

 우리는 누군가의 일을 하는 게 누군가를 좋아해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기본적으로 진영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게 인간의 선천적인 한계이기 때문이다. 국가에 대한 태도에서도 이것은 적용된다. 국가에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를 하는 건 국가가 하는 일에 찬동하며 국가란 최초의 폭력의 확장을 지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는 자유주의의 맹렬한 신앙인이지만 '국가가 적절한 힘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9.11 테러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자유가 불필요하게 억압받는 일이 발생했다'라고 본다. 이건 진영논리가 디폴트인 인간에 대한 안티테제다. 이 테제는 사물의 본질과 사물에 대한 태도를 독립시키고자 한다. 이것은 지향하는 비전과 현실의 니즈를 유연하게 맞춰 현실을 유연하게 해석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만약 자유지상주의자로서 국가와 척을 지고 민간에서의 사업만을 추구했다면 팔란티어 같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까? 미국은 9.11 이전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을까? 아직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 시전으로 돌아간건 아니지만 9.11 이전의 비전으로 돌아가는것을 꿈꾸는 정보사업자가 존재하는건 미국에 축복이다.


프레임의 축복

 ‘사물은 사물일 뿐’이다. 사물에 숨겨진 의미를 발굴하고 이끌어내고 해석하는 건 사람이다. 그리고 유연하게 의미를 적용할수록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위계적 질서와 합리적 질서'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도 적용된다. 프레임은 하나의 기준에서 본 세상의 특징일 뿐이다. 관점이 없는 건 문제지만 관점이 하나인 것도 문제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유연한 해석에서 찾아낸 유용함이고 한 가지 프레임으로만 문제를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프레임이 많을수록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


'유연하면서도 견고하게'

 모순되어 보이는 말이지만 여러 분야에서 어떤 모듈을 개발할 때 적용되는 공통적인 원칙이다. 건축도 마찬가지, 현수교를 짓는 방법을 3D 모델로 설명하는 유튜브를 본 적 있다. 그 영상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현실로 만들어내기 위해 과제를 모듈로 나누고 하나하나를 구축하고 연결해나가며 모순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담겨있었다. 나는 현실의 조직 문제도 그 조직이 풀고자 하는 문제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문제를 잘개 쪼개지 못한 처음에 그것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문제를 잘 쪼개고 잘 쪼개진 문제들을 하나씩 처리할 수 있을 때 불가능이 현실이 된다.

 스타트업은 이런 설계 이상의 구현체다. 스타트업은 꿈꾸는 사람들의 조직이기도 하지만 꿈에서만 살 수도 없으므로 철저히 땅에 발을 디디고 (그것도 맨바닥에서) 현실의 문제를 푸는데 특화된 조직이다. 그리고 그들은 완벽하게 폐쇄적이며 상하관계로 정의된 관료적 조직과 완전히 개방된 민주적 네트워크 그 사이에서 양쪽의 장점을 혼합한 하여 불가능한 것을 해낼 뿐이다. 그들의 삶은 유연하고 견고한 그들의 목표와 사고의 원리를 입증하고 있다.

 불가능한 것을 해내는 그 떨림. 그래서 난 스타트업의 일하는 문화를 지지한다. 그건 도시처럼 너무나 개방된 나머지 아무런 구심점 없이 떠도는 혼돈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혼란도 용납하지 못하는 공무원 사회도 아니다. 그건 이름 없이 받아들여주고 이름 없이 떠나보내는 익명적 민주주의 관계가 아니다. 그렇다고 군대나 회장님의 엄포에 따라 명령계통과 공포에 의해 컨트롤되는 군대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경제적 공동체이기도 하고 같은 비전을 공유하는 '의미 공동체'이기도 하고 생활을 함께하는 공동체다. 동시에 자발적이며 살아있는 생물이다. 그래서 나는 이게 멋지다고 생각한다. 완벽은 없기에 나쁜 면도 있겠지만 그것이 인류사에서 찾아낸 몇 안 되는 궁극적 협업의 형태라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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