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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자 Nov 08. 2022

떡볶이

 씀

                                                                                                              © 709K, 출처 Pixabay




어릴 적부터 매운 음식을 좋아했던 나는 엄마가 해 주시는 돼지비계가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와 고추기름이 잔뜩 묻어있는 떡볶이를 매일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입학 후 그 소원 중 하나가 이루어졌다. 심지어 엄마가 해 준 떡볶이보다 천배 만배 더 맛있는 떡볶이를 매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단 돈이 좀 필요하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그래도 나는 너무 행복했다.


그 천국 같은 곳은 초등학교 근처 ‘꽃방울 분식’이었다. 가게 전면 유리창에서 주방과 홀이 다 보이는 5평이 안 되는 작은 분식점으로 직사각형 모양의 큰 떡볶이 팬과 어묵탕 냄비가 전부였다. 혼자 가게를 운영하시는 주인아줌마는 체격이 크고 피부색이 짙고 말씀이 별로 없으셔서 어린 나에게는 엄청 무섭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주문할 때 말보다는  ‘100원’만 슬쩍 올려두고 주인아줌마가 “떡볶이 100원어치?”라고 되물으면 고개만 끄덕거렸던 적이 많았다.  지금 그 아줌마를 떠올려보니 성격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냥 많이 지쳐있으셨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하교 후 학교 앞 문방구 불량식품 코너를 과감히 패스하고 꽃방울 분식으로 직진하게 만든 그 집 떡볶이는 가늘고 긴 밀가루떡과 빨간 떡볶이 양념 그저 여느 분식점과 큰 차이점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 집만의 매력을 뽑는다면 국물이 많지도 적지도 않은 그 중간 정도의 농도로 국물에 떡을 쓱 묻히면 주르륵 흐르지도 않고 또 너무 되직해서 떡에 국물이 잘 안 찍히는 것도 아닌 내 입맛에 딱 맞는 환상의 농도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매력은 그 집만의 떡볶이 속 삶은 달걀이다.  다른 분식점에서 삶은 달걀을 시키면 바로 껍질을 까 떡볶이에 넣어주는데 꽃방울 분식은 주인아줌마가 의도적으로 그런 신 것인지 아니면 귀찮아서 그런 신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떡볶이 떡과 삶을 달걀을 함께 넣고 조리했다. 내가 좋아하는 바로 그 국물에 삶은 달걀이 ‘하루 종일’ 헤엄을 치다 내가 먹으러 갈 때쯤엔 부드러운 흰자 부분이 조금 쫀득해지고 노른자는 살짝 멍든 것같이 푸르슴하게 변해있다. 이때가 떡볶이 국물에 달걀을 으깨 먹을 최고의 타이밍이다. 이때부터 나와 작은언니는 떡볶이에 삶을 달걀을 넣어먹는 버릇이 생겼다. 하지만 그 시절에 꽃방울 분식에서 먹었던 완벽한 타잉밍의 삶을 달걀은 어디서도 먹을 수 없었다.


꽃방울 분식의 단 하나의 단점은 불량한 위생상태였다. 종종 가게에서 먹다가 바퀴벌레도 만날 수 있고 덜 닦인 컵과 포크를 사용하게 될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나에게 문젯거리도 아니었다. 그저 매일 맛있는 떡볶이를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나의 최애 꽃방울 분식의 떡볶이를 매일 먹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일단 나는 작은 스프링 노트에 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적었고 엄마와 언니들 대상으로 알바를 시작했다. 모으다 보니 떡볶이를 매일 먹어도 돈이 남아 내가 사랑하는 외할머니의 최애 간식인 ‘제리뽀’도 종종 사다 드렸다. 




알바 목록 (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엄마 다리 주무르기 10분 100원

엄마 다리 주무르고 멘소래담 발라주기 100원

엄마 허리에 파스 붙여주기 100원

엄마 심부름 100원

엄마 흰머리 개당 10원

큰언니 방 정리 100원





중학교 때까지 열심히 다녔던 꽃방울 분식점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 당시 야반도주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었는데 아마도 꽃방울 분식 주인아줌마도 그리 급하게 떠나신 것 같다. 그 뒤로 우리 동네는 물론 먼 옆 동네 코끼리 분식, 미소의 집, 애플하우스 등 유명하다는 떡볶이집 원정을 다녔다. 꽃방울 분식 떡볶이처럼 완벽한 국물 농도와 삶을 달걀 맛은 아직 못 찾았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난 일주일에 2번 이상 떡볶이는 먹고 있다. 


요즘은 전국의 맛난다는 떡볶이를 쉽게 주문할 수도 있고 중국 당면, 치즈, 분모자 등 다양한 토핑과 매운 정도도 내 맘대로 정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떡볶이 먹을 수 있어서 나의 떡볶이 사랑은 현재 진행형이다. 


만약 지금 꽃방울 분식을 찾아 그 떡볶이를 먹는다면 그때 그 맛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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