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땡자 Sep 23. 2022

글쓰기, 치유가 된다.

순간을 영원처럼


2014년 말부터 2015년 말까지는 내 인생의 암흑기였다. 왜 암흑기 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은 꺼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가슴 내가 준비가 될 때까지는 가슴속에 묻어두련다. 그냥 그때의 나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였고 미친 여자였다.


밤이 되면 보통 사람들처럼 잠을 자고 싶어 마시기 시작한 술. 나는 그 술에 점점 깊이 빠져들었고 아이들이 등교해서 하교할 때까지 틈만 나면 술을 마셨다.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정신줄을 단단히 잡고 ‘좋은 엄마’라는 가면을 쓰고 열심히 연기했다. 그런데 그 연기가 와르르 무너진 날이 찾아왔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아이들이 없는 틈에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다. 아이들이 올 시간이 된 것 같아 눈을 뜨니 오후 4시가 아니라 새벽 4시였다. 


‘새벽이라고?’

‘애들은? 저녁은?’


내 몸이 생각처럼 침대에서 빠져나오지 않는다. 마치 비를 잔뜩 맞은 운동화처럼 찝찝했고 무거웠다. 나는 다시 누워 고개를 돌렸다. 침대 주변에는 빈 맥주 캔들이 흩어져 있었다. ‘아이들이 없을 때는 정신 나간 미친 여자 같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기 전에는 정신을 차리고 술을 다 버렸는데. 이런 실수는 한 적이 없었는데’라는 생각에 내가 최악의 인간처럼 느껴졌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물을 마시려고 부엌에 갔다. 분명 내가 아침부터 쌓아두었던 그릇들이 깨끗이 닦여있었다. 아이들끼리 저녁에 뭘 먹었는지도 알 수 없게 깔끔히 치워져 있었다. 아이들 해 놓은 설거지를 보고 나는 누가 내 머리통을 팍 때린 것처럼 얼얼했다. 아이들이 내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몰랐다. 그저 나만의 괴로움에 갇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명치부터 목구멍까지 꽉 막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이상한 막힘이 목구멍에서 입으로 터져 나오지 않고 내 눈에서 흘렀다. 멈추지 않는 눈물로. 


계속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지도 닦지도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니 나는 1년 동안 내 고통만 생각한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나를 ‘엄마’라고 온 마음으로 나를 믿고 의지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했고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 달라지기로 결심했다. 그냥 마음만 먹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책꽂이에 꽂혀있는 새 노트를 꺼내  ‘다시 잘 살아보자.’라는 첫 문장을 썼다. 


대학 이후 정말 오랜만에 연필로 무언가를 쓰는 것이다. 새벽이라 그랬을까 나만 있는 조용한 거실에 ‘사각사각’ 연필 소리만 들리는데 그 소리가 나에게는 ‘잘하고 있어. 그래 그렇게 써봐’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고 그 순간 나는 홀로 있었지만 내 안에 움츠리고 있던 진짜 나를 만난 것 같아 전혀 외롭지 않았다. 하얀 종이에 쓰이는 검은 글자를 통해 내가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시공간을 뛰어넘는다는 말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학창 시절 나는 독서가 지루했고  글쓰기는 귀찮았다. 전교생 모두가 참여하는 백일장에서는 글 대신 그림을 그렸고 ‘참 재미있다.’, ;참 맛있다’, ‘참 좋았다’와 같은 ‘참참참’으로 이루어진 문장으로만 일기를 썼다. 그랬던 내가 창밖에 해가 뜨는 줄도 모르고 내용도 없는 글을 계속 썼다. 마치 답답한 마음이 눈물이 되어 흐른 것처럼 내 손에서 글이 마구 흘러내렸다.


글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쓰고 쓰고 쓸수록 1년 동안 내 안에 있던 모든 감정들을 배출해 가는 것 같았고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생각나는 대로 그냥 막 쓰기 시작했다. 내가 원망하는 사람들 리스트를 만들어 저주하는 글을 쓰기도 했고 타국에 계시는 엄마에게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쓰기도 했고 남편에게 직접 말할 수 없었던 쌍욕도 쓰기도 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내용이지만 다 쓰고 나면 마음이 편해졌고 계속 쓰고 싶어졌다. 난생처음 느끼는 이 기분이 너무 좋았고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내가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글쓰기를 통해 치유가 되고 있다니, 정말 뜻밖에 일이다.






몇 번의 암흑기가 또 찾아오겠지만 나에겐 술보다 중독성은 강하지만 끊을 필요가 없는 최강 치유템  ‘글쓰기’라는 비장의 무기가 있기에 예전처럼 나약해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떡볶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