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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자 Nov 27. 2022

폭로

-씀-

앞으로 더 걱정만 끼치겠다고,

편노(큰 아이의 닉네임)의 실체를 폭로할 생각은 없었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한 달에 한 번 편노와 함께 책을 읽고 틀이 없는 수다로 책을 소개하고, 일주일에 한번 편노의 자작 시를 포스팅을 하고 있다.


어떻게 그 나이에 부모랑 책을 같이 읽는 다냐며 '부럽다', '멋지다', '아이와 함께 하고 싶다','감수성이 남다르다','섬세하다', '시인으로 키워도 되겠다' 등 댓글을 통해 분에 넘치는 칭찬을 해주셨다. 나는 모든 댓글을 읽으면서 너무 감사했고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이 아이에게 빨대를 깊이 꽂아 내 블로그를 핫하게 키워보겠다는 야망도 잠시 꿈꿨었다. 하지만 올해 내 생일에 편노가 건네준 손 편지를 받자마자 내가 편노에게 씌운 과대포장을 벗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 생일파티는 생일 당일 아침에 하는데 일단 떡진 머리와 눈곱 그리고 잠옷이 필수 드레스 코드다. 축가를 부를 때는 비몽사몽 잠이 덜 깬 반쯤 감은 눈과 양치 전 입 냄새를 갖춰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에게 선물과 생일카드 증정식과 인증샷까지 마무리되어야 생일파티 행사가 끝난다. 그런데 올해 내 생일에는 새벽 출근을 해야 하는 남편의 일정 때문에 우리 집 생일파티 룰이 적용되지 못했다. 상황이 그런지라 어쩔 수 없이 저녁을 먹기로 했지만 나는 괜스레 서운한 마음이 들어 아침부터 아이들에게 자꾸 시비를 걸었다.


'아침에 생파 안 하니까 생일 같지도 않다.'

'축하 노래라도 불러줘~~'

'오늘 저녁에 뭐 먹을 거야?'


아이들은 각자 등교 준비로 바빠그런지 아님 저녁에 생각해 놓은 생파 계획이 따로 있어 그런지 나의 태클에 아무 반응이 없었다.


밖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서 케이크 하나를 놓고 조촐하게 내 생일 파티를 했다. 선물은 아직 배송 중이라 축하 카드만 받았고 먼저 딸들의 카드를 읽었다. 예쁘게 꾸민 봉투와 가지런하게 쓴 글씨 속에서 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편노의 카드. A4 원고지 용지.

편노답다.

꾸미겠다고 작정할 수도 록 더 안 예뻐지는 그런 똥 손을 가진 편노이기에 나도 크게 기대하진 않았지만 반으로 접힌 편노의 카드를 펴고 읽자마자 나는 속으로 웅얼거린다게 나도 모르게 내 목구멍을 타고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나아갔다.




"이게 뭐여? 암호야? 해독해야 해?"
"래퍼나셨네. 주시고 주시고 라임 맞췄냐."
"앞으로 더 걱정만 끼치겠다고, 엄마 생일에 선물 대신 시름을 안겨주는 거야?"
"악필이 불효를 하는구나."



내가 속사포처럼 말을 뿜어내니 편노는 키득키득 웃기만 한다.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편노에게 '논술 시험 아직 손으로 써야 하는 거지? 편노야 논술을 포기하거나 서예학원 다니자.'라며 같이 키득키득 웃는다.


그날 밤, 남들이 내 아이에게 잘 한다 잘 한다 칭찬을 해주니 진짜 잘하는 줄 알고 우쭐했던 나를 돌아보며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서예학원을 검색했다.




안내: 편노의 카드를 읽다가 '킹'받는 독자님이 계시다면 지극히 정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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