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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자 Jan 07. 2023

미처 몰랐다

-씀-

싫다.

싫다.


추운 겨울이 싫다.

시작된 아이들의 겨울 방학이 싫다.

돌아서면 끼니때, 삼시세끼 메뉴 고민은 쉬는 날이 없어서 싫다.

"여보세요?" "엄마, 오늘 저녁은 뭐 먹어?"라는 전화 통화가 싫다.

회사에서 퇴근해 집으로 출근하는 네버엔딩 쳇바퀴 일상이 싫다.

항상 아빠 말고 엄마만 찾는 아이들이 싫다.

눈 뜨자마자 영양제를 털고 운동보충제를 챙기는 남편이 싫다. 

"OO님, 사장님께서 회의실로 오시래요?"라는 직원의 말이 싫다.

"OO님, 이래서 되겠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사장의 말이 싫다.

매일 아침 눈 뜨지 못해 조깅하지 못하는 내가 싫다.

시간이 없다며 불평불만하는 내가 싫다.

왜 이렇게 사는지 내가 싫다.


싫다.

싫다.

싫다.




며칠 전 퇴근길, 차는 막히고 머릿속엔 생각이 넘쳐나 얼굴을 오만상으로 찌끄리던 찰나에 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오늘 저녁 뭐 먹어요?"

"모르겠는데.."

"맛있는 것 먹고 싶은데."

"맛있는 것? 그게 뭐야? 얘기를 해. 엄마는 모르겠어 뭐가 맛있는지."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짜증을 냈다. 내 목소리에 민감한 딸은 갑자기 목소리가 시무룩해지더니 아무거나 먹어도 된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 좁은 차 안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었고 이 상황이 그리고 모든 것들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데스노트를 쓰듯 내가 싫은 모든 것들을 지금 바로 써 내려가고 싶어 휴대폰 음성녹음기를 켜고 랩을 하듯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내뱉었다. 쏟아냈지만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집에 들어와 침대 위에 가지런히 놓인 내 옷가지를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겉옷도 벗지 않은 채 천천히 집안을 둘러봤다.

아침, 점심 설거지는 깨끗하게 되어있고 항상 넘쳐있던 2개의 빨래바구니는 깨끗하게 비워져 있고 거실에 널브러져 있던 옷들은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사막에 나뒹구는 풀처럼 거실에 나뒹굴던 머리카락들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차 속에서 니들이 너무 싫다고 소리쳤는데, 이러면 반칙이지.

'니들 뭔데?"

방학이지만 일한다고 바쁘다고 피곤하다고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나를 위해 말없이 나를 도와준 니들.

나의 아이들, 나의 스승님들은 불평불만만 쏟아 내며 왜 나만 힘들어야 하냐며 투덜거린 나에게 '그래도 감사하라'라는 말을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나의 스승님들! 감사합니다!


나의 마음의 분노가 '감사'뽀로롱~ 변하니 냉장고 속 안 보였던 식재료들이 마술처럼 보였고 그날 저녁 한상 거하게 차려 나의 스승님들을 즐겁게 해 드렸다.


 




자기 전 오랜만에 감사기도를 드리면서 엄마가 떠올랐다. 지금 내 나이 때, 중풍과 치매로 편찮으신 할머니를 보살피셨고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 딸 셋, 그리고 여동생 셋을 돌봤던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으로 지내셨을까? 생각에 꼬리를 물자 엄마에게 조금 더 잘해드리지 못해 미안했고 이만큼 잘 키워주셔서 감사했다. 이 마음을 그냥 사라지게 두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일어나 종이에 써 내려갔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면 지금 이 마음을 더 잘 표현했을 텐 데라는 아쉬움은 남지만 사라지지 않게 기록하려는 행위 자체에 만족하려 한다.

   




미처 몰랐다.


미처 몰랐다

그녀도 나처럼 싫었을 텐데


미처 몰랐다

그녀도 나처럼 조금 더 놀고 싶었을 텐데


미처 몰랐다

그녀도 나처럼 하고 싶은 일이 많았을 텐데


미처 몰랐다

그녀도 나처럼 조금 더 자고 싶었을 텐데


미처 몰랐다

그녀도 나처럼 이 쳇바퀴에서 해방되고 싶었을 텐데


미처 몰랐다

이제 그녀를 알 수 있다 생각했는데


그녀는 내 곁을 떠나갈 준비를 하며

또다시 내가 모르는 그녀가 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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