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광교호수공원_멈추게 되는 브런치 맛집

by 땡자

세 번째 소개할 달리기 맛집은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한 광교호수공원이다. 광교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원천유원지 자리에 호수공원이 새로 지어졌다. 신대호수와 원천호수를 중심으로 둘레길과 쉼터가 있어 산책하기에 좋은 공원이다. 집에서 차로 15분 이상 소요되며 갈 때마다 사람이 많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갈까 말까 하는 곳이었다. 굳이 시간을 내 가야 할 정도의 장소는 아니었다. 그랬던 곳이 달리기 맛집이 된 것은 2024년 경기도 마라톤 풀코스 대회 덕분이었다. 42.195km라는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 LSD (long slow distance_장거리 달리기) 훈련이 필요했다. 첫 번째 달리기 맛집 성복천도 LSD 훈련을 하기에 적합한 장소지만 매번 같은 곳을 길게 뛰려니 지루했다. 장소의 변화가 필요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용인 근처 LSD 훈련을 검색해 보니 많은 러너들이 광교호수공원을 추천한다. 코 앞에 러너들의 성지가 있었다니.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다.

러닝 인플루언서들이 가장 많이 추천하는 고래런 코스로 광교호수공원 첫 LSD 훈련을 시작했다. 고래런은 약 10km 거리로 GPS로 기록된 경로가 마치 고래처럼 보여 지어진 이름이다. 두 마리 고래를 만들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우고 달렸다. 신대호수 주차장에서 출발해 1km쯤 지나니 세 갈래 길이 나왔다. 분명 공원 지도를 보며 경로를 익혔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 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잠시 멈추고 경로를 확인했다. 그리고 500m 뒤 또 갈래길이 나왔다. 또 멈추고 경로를 확인했다. 그렇게 가다 서다를 몇 번 반복하니 피로도가 쌓였다. 달리기가 싫었다. 평소, 가구조립 할 때나 설명서 대로 하지 그 외는 내 맘대로 하는 성격이라 그런가 남들이 정해놓은 경로를 따라가는 게 힘들고 짜증 났다. 그렇다고 걸어서 다시 주차장으로 가자니 뛴 거리가 아까웠다.

'내가 언제 남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라는 생각으로 시작해 '내가 굳이 고래 두 마리를 그려야 할 이유가 있나? 복잡하게 생각 말고 오늘의 목적, 장거리 달리기에만 집중하자.'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비우고 다시 달렸다. 같은 날, 같은 장소인데 기분이 상쾌해지고 몸이 가벼웠다. 가다 서다를 반복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공원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신대호수에 하늘, 구름, 빌딩들이 빠져있다. 마치 호수 아래 새로운 동네가 있는 듯 보였다. 호수의 윤슬 덕분에 그 풍경이 더욱 반짝였다. 풍경에 취해 달리고 있다는 생각을 잠시 잊을 때쯤 언덕배기가 등장한다. 놀러 온 게 아니라는 걸 각성해 주려는 듯이 말이다. 그래도 괜찮다. 그 오르막을 지나면 나를 반겨주는 원천호수가 있었다. 원천호수를 중심으로 주상복합 아파트, 카페, 음식점, 슈퍼마켓 등이 있다. 카페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 슈퍼에서 과일값을 물어보는 사람, 아파트와 공원이 연결되는 출입구에서 헤드폰을 쓰며 달릴 준비를 하는 사람, 반려동물과 산책하는 사람, 유모차 속에 아이의 살피며 산책하는 커플. 원천호수는 잔잔한 신천호수와 달리 에너지가 넘친다. 이곳은 나에게 더 이상 광교호수공원이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뛰는 보스턴 어느 공원이고, 힙한 뉴요커가 뛰는 센트럴파크이고, 나의 동경의 도시 파리 센강이다.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정해진 코스과 기록의 부담을 내려놓고 오직 달리기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달리다 슈퍼에 과일이 맛있어 보이면 멈추고 양손 가득 과일을 산다. 달리다 배가 고프면 멈추고 빵을 사 먹는다. 달리다 예쁜 카페가 눈에 들어오면 멈추고 테라스에서 커피 한잔을 마신다. 똑같이 달리다 멈추는 행위다. 하지만 수동적으로 타인이 만들어 놓은 경로를 따라가는 것과 내가 만든 길과 방식으로 달리는 것은 시작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태도에 큰 차이가 있다. 또한 성공과 실패를 떠나 달리기라는 행동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찾게 된다.

장거리 달리기 훈련은 생각만 해도 지루하다. 마라톤 선수도 아니고, 서브3가 목표도 아닌 나에겐 더욱 그렇다. 그래도 이 훈련을 이어가는 이유는 분명하다. 오래도록 건강하고 즐겁게 달리고 싶기 때문이다.

원천호수를 한 바퀴 더 돌다 슈퍼 앞에서 잠시 멈췄다. 땀에 젖은 손으로 과일을 집어 들고 계산대 앞에 섰다. 다시 이어폰을 꽂고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오늘의 달리기는 여기까지가 아닌 이제부터다.

이유와 목표, 그리고 나만의 방법을 알게 된 지금, 나는 예전보다 훨씬 자주 광교호수공원을 찾게 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강과 바람이 말을 거는 곳 황산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