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던 성복천은 가정식 백반 같은 코스다. 특별히 당기는 음식이 없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메뉴처럼, 뛸 장소가 마땅하지 않을 때면 늘 성복천을 찾게 된다. 같은 길을 반복해 달리다 보면 지루해질 법도 한데, 이상하게 질리지 않는다. 따뜻한 밥과 몇 가지 반찬만으로도 충분한 한 끼가 되는 것처럼, 성복천은 언제 달려도 부담이 없다. 달리기를 멈추지 않게 해 준, 내 러닝의 가장 기본적인 밥상이다.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달리고 있을까. 마라톤 풀코스 서브 3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고, 남들처럼 달리기를 엄청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처음 성복천을 달렸을 때,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아오, 나 죽겠다’라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새하얘져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던 그 순간. 행동과 생각이 하나가 되었던 그 짧은 경험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마 그 기억 때문에 나는 지금도 어떻게든 계속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복천이 일상의 밥이라면, 광교호수공원은 여행지에서 즐기는 브런치 같은 곳이다. 그곳을 달릴 때면 괜히 뉴욕 센트럴파크를 달리는 뉴요커가 된 기분이 들어, 계획했던 거리보다 더 멀리 뛰게 된다. 광교산은 또 다르다. 로드에서만 달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 주었고, 내 의지대로 산길을 정해 달릴 수 있어 신이 난다. 평일의 규칙적인 일상 속에서 벗어나 잠깐의 해방감을 주는 코스다.
마라톤 대회를 앞두고는 용인아르피아 트랙을 찾는다. 결혼식이나 큰 이벤트를 앞두고 식단을 조절하듯, 기록을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계획을 세우고, 정확한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트랙 위를 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혼자 진지해진 나를 보며 ‘뭣 때문에?’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이내 잡생각을 지우고 달리기에 집중한다.
달리다 보니 작은 지병도 생겼다. 체온이 떨어지면 손가락이 시리고 아픈 병 덕분에, 실외 러닝만을 고집하던 내 편견도 깨졌다. 밖에서 달릴 수 없는 날에는 헬스장 트레드밀이 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포기가 아니라 방식의 변경일뿐이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영하의 날씨 탓에 나는 야외가 아닌 헬스장으로 향할 예정이다.
이제 나는 달리는 동안 팔과 다리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심장 박동에 귀 기울인다. 몸과 마음이 수다를 떨며 거리를 채워간다. 회사와 가정, 사람 관계에서 생기는 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걱정. 이 모든 불안은 달리기와 함께 사라진다. 달릴 수 없을 것 같은 장거리를 달려내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그렇게 달리기는 내게 명상의 시간을 내어준다. 그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고,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나를 발견한다.
기록을 단축시키기 위한 달리기가 아닌,
남들에게 칭찬받기 위한 달리기가 아닌,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위한 달리기가 아닌
나를 위한 달리기,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한 달리기를 위해
오늘도 운동화 끈을 묶고
내 발이 닿는 모든 곳에서 달리기 맛집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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