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답 둘

쓰기 잡설

by 땡자

설 연휴 마지막날, 대학동기들 모임을 갖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는 만났다. 매번 일찍 도착하는 친구와 늦게 도착하는 친구까지 일 년 만이지만 항상 변함이 없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작년보다 친구들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 메뉴를 고르는 중에도, 음식이 서빙되는 중에도, 심지어 입으로 음식이 들어가는 중에도 숨 쉴 틈 없이 수다를 떨었다. 일 년 치 근황을 쏟아내며 워밍업을 끝내고 한 친구의 딸의 대학 합격 축하 및 입학 수기 이야기로 메인 수다로 넘어갔다. 그 친구는 큰 딸을 스카이 중 한 곳에 보내고 올해 작은 딸까지 명문대 입학 준비를 하고 있다. 또 다른 친구는 아들이 과학고에 다니면서 올해 대학 조기입학이 목표다. 아이들도 공부를 잘했지만 친구들의 노력 역시 대단했다. 친구들의 이야기는 아직 자녀가 초등학생인 친구들에게는 마치 대치동 유명 학원 명문대 입시 설명회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분위기에 나는 중간중간 끼어들어 '애들마다 다르지.', '하고 싶은 것부터 찾아야.'라는 말을 툭툭 던졌다. 내가 무슨 대안학교 교장인 듯 말이다. 이런 나의 문장은 친구들 대화 속에서 마침표 대신 점점점이라는 말줄임표 속으로 사라졌다. 멈추지 않을 것 같던 우리의 수다는 학원을 간 친구의 아이 픽업으로 끝이 났다. 우리는 '내년에도 건강하게 보자'라고 서로에게 손을 흔들며 다음 1년을 기약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명문대는 아니지만 제 선택으로 대학을 결정하고 자라고 있는 큰아이를 자랑하지 못했을까? 방학 계획을 지키려 애쓰는 쌍둥이 얘기를 하지 않았을까'라는 후회로 가득 찼다. 겉으로는 아닌 척했지만, 나는 아직 학벌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 겉과 속이 다른 속물이라는 것을 인정하려니 괜히 기분이 나쁘고 내가 싫어졌다. 그날 밤, 나는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하듯 일기장에 나의 못난 감정들을 쏟아냈다. 종이 위의 적힌 글은 내 감정을 빠짐없이 받아주었다. 종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나는 위로를 받았다.


내가 그날 글을 쓰지 않았다면

끝까지 친구와 친구의 아이를 부러워했겠지.

내가 그날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내 아이들을 남들과 비교하며 괜히 성질을 내겠지.

내가 그날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내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보지 못했겠지.


나는 아직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여전히 비교하고 흔들린다.

그래서 쓴다.


#쓰기잡설

#나는왜쓰는가

#속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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