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브리데이미 Jul 25. 2019

빨래

 바구니에 쌓인 빨래는 세탁기에서 건조대로, 건조대에서 옷장으로 갔다가 다시 바구니로 돌아온다. 사계절의 바람이 해진 목 칼라와 소맷단을 관리하는 동안 빨랫감은 미세먼지에 노출된 채 계절의 공기를 마시며 늙어간다.     


 빨랫감의 순환에도 한계는 있다. 겨울옷을 정리하다 보면 지나간 시간의 찌꺼기가 보푸라기 인 스웨터에 일어나 있다. 바람의 갈퀴와 물살의 소용돌이를 견디느라 헝클어진 옷감에 동그랗고 단단한 실뭉치가 뾰루지처럼 돋아났다. 보푸라기 제거기의 날선 칼날이 서걱서걱 돌출된 부분을 제거해 나가지만 역부족이다. 옷감은 이미 처음의 매끈한 결을 잃고 낡아 있다.     


 사람이나. 관계나. 물질이 가진 본질이 아무리 뛰어나도 시간은 그 모든 최초의 형태에 변형을 가한다. 잘 관리된 가죽제품에서 풍기는 독특한 아우라나 오래된 빈티지 와인처럼. 때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시간을 자원으로 하는 물건이 나름의 매력을 지닌다는 예시를 모델로 하여 ‘내 인생도 비슷하게 꾸려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위로로 삼다가도.     


 시간을 자원으로 삼아 알차게 꾸리고 싶은 인생이 빨래하는 일로 조금씩 소모될 때마다 초조해진다.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순노동을 반복할 때의 권태감이 젖은 빨래를 꺼낼 때 축축하게 품안에 스민다. 어떨 땐 그냥 다 내팽개쳐 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나 몰라라 내버려 두어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 쌓여가는 빨래를 보면 줄어드는 쌀독을 볼 때와 같은 압박감에 조여 든다. 화장실 한 켠에 쌓인 쉰내 나는 셔츠가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것 같다.    


 저걸 빨아야 하는데
 (빨고 나서는) 널어야 하는데
 (널고 나서는) 걷어야 하는데



 어느 날 늙어 뒤를 돌아보았을 때. 추억의 한 페이지에 ‘빨래’ 같은 게 장식되어 있을 리는 없다. 그저 매일. 문을 나서는 가족들의 입성을 보며 느꼈던 만족감이 당장의 삶을 충족시키는 마약처럼 예측가능 한 보람의 형태로 손끝에 닿을 뿐이고 그것으로 족할 때가 많다.    


                                                     

 베란다가 누렇게 물이 들 정도로 해가 들어온 날에는 바삭한 빨래에 코를 들이밀게 된다. 때를 벗겨낸 자리에 들어갔다 나온 향긋한 세제의 흔적. 구린 구석 없는 옷가지에서 나는 청결 백 프로 보장 냄새. 딱히 누군가에게 풍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집안일의 연속선상에서 어느 날 우연히 하늘의 기운과 구름의 흐름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이것저것 들어맞을 때 나는 수지맞은 냄새다.    


 아깝다. 빨래 널면 잘 마를 텐데.



세상의 모든 자원을 알뜰하게 모아 기어코 내 식구의 몫으로 만들고야 말리라는 아줌마 정신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본다. 나도 어릴 때는 햇살 좋은 날에 빨래 생각 같은 건 안 했는데.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 내 대신 빨래 걱정을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모네가 루앙 성당 위에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보며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그리는 동안 아낙네들은 무심한 눈길로 옷을 빨며 세상의 청결을 담당해왔다. 세상을 바꾼 건 인상파 화가들만이 아니었다. 고리타분한 시선으로 묵묵히 빨래를 하던 아낙네들도 세상을 지키는데 한몫 해왔다. 그들이 없었다면 파리는 꾀죄죄한 입성으로 가득했을 테고 인상파 화가들도 차마 햇살 아래 풍경을 밝고 아름답게 그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피사로의 <천을 너는 여인>. 당시 여자들은 건조기가 없어 햇살 좋은 날을 골라 말려야 했을 것이다.


 몸에서 나오는 때를 더럽게 보고 빨래를 업으로 삼는 직업을 천인으로 삼은 힌두교와 달리 불교에서는 때를 빼는 과정을 정화로 여겨 스님들이 직접 자신의 옷을 빠는 수행의 도구로 삼고 있다.     


 일상의 감각으로는 인지하기 힘든 시간의 흐름이 세탁기의 맹렬한 회전을 따라 맴돌다 배수구 통로로 흘러간다. 흘러가는 물살에는 떠내려가는 게 나은 피로와 상념도 녹아 있다. 낙하하는 물줄기의 비명소리가 식구들의 노고처럼 들릴 때가 있다. 경쾌한 멜로디로 정화 작업의 엔딩을 알려주는 세탁기의 문을 열면 다시, 일이 시작된다.      

작가의 이전글 가정주부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