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역사(2)
학교 또래들의 유치한 정신연령에 질려 있던 나는 교회에서 ‘오빠’라는 종류의 신인류를 발견하고는 꿈에 그리던 뮤즈를 발견한 심정이 되었다. 그들은 성가신 장난으로 관심을 표현하는, 서투른 사춘기의 수줍음은 일찌감치 졸업한 상태였다. 겨우 몇 년 더 살았을 뿐인데. 그 몇 년 동안 남자가 여자를 꼬시는 방법을 백 가지쯤 터득해 몸에 익힌 사람들 같았다.
그런데 왜 하필 교회 오빠였을까?
일단 학교 오빠들은 너무 양아치 같아서 좀 무서웠다. (바지를 어떻게 줄였는지 힙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 눈 둘 곳이 없었다.) 친해질 기회가 있었다면 무서움도 풀렸을 텐데. 학생들의 연애사에 민감한 남녀공학이 학년 간의 단합 같은 걸 도모 할리도 없었다. 복도나 운동장에서 힐끔거리는 게 전부였고 처음에는 그 정도만으로도 넘치는 설렘을 주체하지 못했으나 이내 갈증을 느꼈다. 처음 중학교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복도에서 마주친 방송부 오빠(일자 통바지를 입은 안 노는 오빠였다)에게 반해 친구의 팔뚝을 내리치며 “어떡해! 어떡해! 봤어? 봤어?” 설레발을 쳤으나. 설레기만 하고, 고백할 용기는 없고, 별 일 없는 나날이 계속되자 얼마 못 가 제 풀에 지쳐 식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지구력 있는 짝사랑을 뒷받침 하기에 맞춤한 곳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보장되는 주기적인 만남, 팀 모임과 성경공부라는 명목으로 어우러지는 형제자매 간의 자연스러운 교제. 나누고 챙겨주는 섬김의 분위기에서 들기 쉬운 착각과 오류.
가히 십 대 남녀의 사교의 장이었던 그곳에서 나는 ‘누군가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공기’의 기류를 타고 목사님 아들에게 꽂혔다. 목사님 아들이라니. 과연, 집사님 딸다운 선택이었다. 온 가족이 함께 교회에 가는 일요일이 되면 집안이 한바탕 뒤집어졌다. 언니들 옷장을 다 헤집어 놔서 ‘어디 패션쇼 나가냐’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꿋꿋하게 거울 앞에서 옷을 다섯 번씩 갈아입었다. 출발 시간은 다가오는데 마음에 드는 옷은 없고… 몇 개 안 되는 사복이 지겨워 새롭게 매치할 요령으로 시도해본 코디는 어째 점점 난해해지고… 총체적 난국의 상태로 마지못해 예배당에 앉아 있으면 대학생 뺨치게 차려입은 세련된 유 XX 언니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유 언니는 목사님 아들과 잠깐 사귀었다가 헤어진, 그의 전 여친이었다. 둘은 헤어지고 나서도 외국의 쿨한 X와이프, X 허즈밴드처럼 사이좋게 지냈다. 유치원 때부터 같이 커온 죽마고우라 가능한 것 같았다. 수십 년 살다 이혼한 부부의 냄새를 풍기며 둘 만의 뭔가가 티 나게 있어 보이는 짝짜꿍이었다. 뒤늦게 이 교회에 합류하게 된 나로서는 도저히 흉내내기 힘든 케미였다.
짝사랑에 가슴 앓는 이는 나만이 아니었다. 이제 막 이성에 눈뜬 십 대들 아니랄까 봐 중고등부와 청년부는 다들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중이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데 그게 다 엇갈려서 결국 한 커플도 탄생하지 못하는 모순과 딜레마에 빠진 상태였다. 내 친구 진은 김 오빠를 좋아하고 김 오빠는 유 언니를 좋아하고 유 언니는 박 오빠를 좋아했다. 집단적인 비극이 될뻔한 사랑의 작대기는 십 대 남녀가 같은 공간에 모여 친하게 지낸다는 사실만으로 유쾌하게 상쇄되었다. 오빠들은 여자애들을 웃기기 위해 열심히 애썼으나 웃겨서 꼬신 다음에 어떻게 해보려는 수작 따위는 부리지 않았다.
우린 집단적인 연애 상태에 빠진 채로 하나의 유기체처럼 지냈다. 수련회 준비다 뭐다, 문학의 밤 준비다 뭐다 하며 틈만 나면 모일 궁리를 하며 같이 밥을 먹고 움직였다. 일요일. 모임이 끝나면 오빠들은 추운 겨울에도 근처 운동장에 가서 축구나 농구를 하고는 했다. 여자애들은 운동장 계단에 앉아 덜덜 떨며 기다리다 ‘추위를 못 이겨’ 잠바를 집어 들었다. 짧은 순간, 누가 누구 잠바를 덮느냐는 선택이 늘 미묘한 문제로 남아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 번도 ‘문제시’ 되어 드러난 적은 없지만. 나름의 서열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여자애들 그룹의 리더 격이었던 유 언니가 목사님 아들 잠바를 집으면 나머지 애들이 남는 것 중 마음에 드는 오빠 걸 집어 덮었다. 아무도 안 덮으려고 했던 잠바는 인기 없는 남자의 상징처럼 남아 홀로 쓸쓸히 벤치를 지키고는 했다.
길거리의 고등학생이나 이십 대 초반 정도의, 당시 오빠들과 비슷한 나이 때의 남자애들을 발견할 때마다 깜짝 놀라고는 한다.
내가 저런 애들한테 동경과 연정을 품었단 말이야?
아직 어린 티를 못 벗어난 남자애들과 당시 오빠들을 일치시켜 보려고 하는데 전혀 다른 모양으로 찍힌 데칼코마니를 보듯 기이하게 안 맞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오빠들은 저런 애송이가 아니었다. 세상사를 알만큼 아는 어른이었고, 유머와 매너로 무장한 여심 제갈량이었고, 무료한 십 대의 방황을 차단해준 엔터테인먼트였는데…. 나는 또 거기에 기대 십 대를 보냈다니…. 뒤늦게 마법에서 풀려 누추한 현실을 자각한 신데렐라처럼 얼떨떨한 정신으로 과거를 회상하다 놀라고는 한다.
기본적으로 부모님에 기대어 사는 우리였지만. 가정에서 제공해주는 의식주와 애정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었던 시기라 함께 있는 시간으로 서로를 채우며 살았다. 손도 안 잡고 뽀뽀도 안 하고 둘만의 시간 같은 것도 없었지만. 당시 우리는 인생에서 딱 한번뿐인, 그때 그 시절의 가장 완벽한 연애를 하던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