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에브리데이미 Oct 15. 2019

누군가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

# 딸려 온 부록이 좋은 경우에 대해

 누군가와 친하다는 건 그 사람의 세부적인 특징을 알고 있다는 건데,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 고유의 속성을 잊을 수 없다는 것. 부록을 잡지보다 애정 하게 되어 잡지는 버리더라도 부록은 간직하는 경우처럼. 어떤 사랑은 상대의 작은 디테일이나 고유의 특성에 빠지는 쪽으로 흐르기도 한다는 걸, 그를 통해 알았다.    


 운전을 할 때의 그는 차 안 가득 울리도록 음악을 채워 놓고 다니는 습관이 있었다. 이전의 나는 언제 어디서든 음악에 잠겨 있어야 할 만큼 심취해 있지는 않아서 차 안의 소리가 엔진음뿐이어도 크게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번 좋은 것을 알아버린 감각은 이전으로 돌아가기가 힘든 채로 확고하게 길들여졌다. 그를 만난 후의 나는 음악이 없는 삶에서 음악이 있는 삶으로 진입했고 이전과는 미세하게 달라진 세계에서 살게 되었다.

    

 간직하고 싶도록 좋아했던 사람의 모습은 나에게도 영향을 미쳐 내 삶을 조금씩 바꿔 놓았다.    


 나는 또 그가 떠난 자리에 맴도는 불가리 옴므의 잔향을 좋아했다. 두고 간 그림자가 등 뒤에 그늘진 기분이었다. 이전의 나는 남이 뿌려놓은 향수에는 살짝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모르는 이에게서 스쳤다면 코를 찡그렸을 수도 있는 향기를 그에게서 맡은 후, 사람이 말과 표정만으로 자기의 인상을 남기고 다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친구의 친구를 만나 셋이 친구가 되는 것처럼. 어느새 나는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따라 좋아하며 우리끼리의 그룹을 짓게 되었다. 몸이 마른 그가 즐겨 입는 두터운 스웨터를 강아지 만지듯 쓸어내리다 수염이 뾰족하게 자란 턱끝을 까끌까끌 비비며 가지고 놀았다. 과일을 좋아하는 그의 곁에 머무르다 보니 덩달아 귤을 까먹고 포도를 집어 먹는 일이 늘어났다.    


 눈과 코와 귀, 혀와 손끝. 몸의 기관이 그에게 익숙해져 갔다. 사람을 사귀는 일은 그의 속성을 내 몸에 새기는 일. 그의 이니셜을 문신으로 각인하는 것처럼 기억 한가운데에 새기는 일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의 인생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려서는 아빠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받아먹으며 입맛을 길들였고 커서는 친구들과 함께 한 아티스트의 팬이 되어 쫓아다녔고, 지금은 아들과 함께 공룡 박물관을 찾아다니는 지경에 이르렀다. 거대한 티라노 사우루스 모형물이 어색하게 입을 벌리는 동안 입모양과 맞지 않는 울부짖음이 스피커에서 터져 나오는 전시장 한가운데에 있다 보면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하는 현타가 오고는 했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보고 싶었던 적 없는 공룡을 쫓아다니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원래의 나는 취향이 확고한 스타일이라 남에게 맞춰주는 걸 잘 못하고 피곤해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면 그것이 내 취향이 되고 주관이 될 수도, 의외의 행복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영향력’이라는 거창하고 근사한 말은 뉴스에 오르는 유명인이나 SNS 셀럽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이 미치는 영향력은 수적인 파장으로는 어마어마할지 모르지만 또 그만큼 광범위하고 얕게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나에게 미치는 가장 깊고 지속적인 영향력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전 06화 소개팅에서 까인 날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앞치마 벗는 김에 노브라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