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켄드의 끝은 함께의 시작일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고 하더니,
나도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지금 직장에서도 ‘신입’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한 5년 차가 되었다.
기본적인 루틴은 익숙해졌지만,
어느 조직이나 그렇듯 ‘책임’이라는 것이 조금씩 더해지는 시기다.
직책이 붙고, 결정할 일이 많아지고,
스트레스는 예전보다 더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럴 땐 주말에 아내에게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주말부부라서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장 예민하고 날카로운 모습을 매일 보여주지 않아도 되니까.
가끔 상상한다.
아내가 지금의 삶을 내려놓고, 나만 보고 이곳으로 온다면?
그건 분명, 아내의 큰 희생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계속 흔들린다면,
그건 나에게도, 아내에게도 미안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항상 마음 한 켠을 맴돈다.
10년, 20년, …
이렇게 계속 200km를 두고 견우와 직녀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물론 나의 직장 생활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고,
그 시점이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
‘딩켄드’라는 수식어가 ‘딩크’가 될지, ‘위켄드’가 될지, 아니면 다시 ‘함께하는 부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지금의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둘 다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
나에게는 인생의 스승이라 부를 수 있는 분이 있다.
결혼 주례도 해주셨던 대학원 지도교수님이신데,
학문적인 가르침뿐 아니라 인생의 자세에 대해 정말 많이 배운 분이다.
그분은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까운 가족일수록 더 잘하고, 더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60을 바라보는 지금도
어떤 모임이나 행사가 있을 때면 늘 사모님과 손을 꼭 잡고 함께 참석하신다.
그 모습은 내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하나의 장면이다.
나도 언젠가, 그렇게 되고 싶다.
아이는 낳지 않았지만,
요즘은 가끔 ‘아이를 낳으면 어떤 부모가 될까’ 상상을 하곤 한다.
나는 큰 인물이 되는 것보다,
큰 스트레스 없이, 화목하게 자라주는 아이가 좋겠다.
얼마 전, 처제가 철학관에서 받아온 아기 이름 후보들을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나는 그중에서 이런 뜻풀이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일생 큰 재난 없이 운세가 순조롭고, 심신이 화평하며, 육친덕이 있고 가정이 화목.
외유내강하고 특이한 재능이 있으며 안정 위주의 순탄한 삶.
의리 강하고 두뇌 뛰어나 무리의 존경을 받고 재물도 왕성함.”
하지만, 가족들은 대부분 “크게 성공할 이름” 쪽을 선택했더라. ㅎㅎ
어쩌면 나는,
애를 낳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안 낳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 삶을 조금 더 잘 살아내고 싶을 뿐이다.
딩켄드로 살아간 지난 5년.
앞으로도 우리는 고민하고, 노력하고, 웃으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