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꽤 괜찮은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노력과 타인의 노력에 저울을 달지 않는 듯하다. 문득 떠오른 생각은 아니다.
여러 사람들과 차를 마시던 중 본의 아닌 토론이 벌어졌다. 한 지인이 자신의 노력만을 높이 평가하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타인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달랐다. '왜 저럴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협했고, 나와 직접 연관된 문제는 아니었지만 듣기가 불편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노력을 계량화하고, 비교하고, 평가하는 데 익숙해진 듯하다. 자신의 노력을 한쪽 저울에 올려놓고, 타인의 것을 다른 쪽에 올려놓으며 무게를 재는 일이 빈번해져 버렸다.
공자는 『논어』에서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이라 했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 가르침을 거꾸로 실천한다. 자신이 쏟은 노력은 금처럼 귀하게 여기면서, 타인의 노력은 돌멩이처럼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저울을 다는 행위의 본질이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인가? 반대로 결과가 좋다고 해서 모두가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일까? 이 명제는 우리 사회가 애써 외면하고 싶어 하는 불편한 진실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에게는 박수를 보내고, 실패한 사람에게는 냉담한 시선을 던진다.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무수한 변수들, 운과 기회와 타이밍이라는 요소들은 의도적으로 삭제된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정성껏 가꾼다 해도 가뭄이 들면 수확은 빈약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적당히 심어놓아도 그해 날씨가 좋으면 풍년이 든다. 그렇다고 가뭄 속에서 애쓴 농부를 게으르다 할 수 있겠는가. 또 풍년을 맞은 농부가 모두 자신의 근면함 덕분이라고 자랑할 수 있겠는가.
노력이란 것은 규격화된 정량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하루 열두 시간을 일해도 버거워하고, 누군가는 같은 시간을 일하고도 여유가 있다. 개인의 역량과 환경, 주어진 자원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눈에 보이는 시간과 행위만으로 노력을 재단하려 든다.
운칠기삼(運七技三). 이 오래된 사자성어는 두 가지 방식으로 해석된다. 하나는 운이 70퍼센트, 실력이 30퍼센트라는 냉소적 현실론이다. 다른 하나는 아무리 운이 중요해도 30퍼센트의 기량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낙관적 노력론이다. 이 사자성어가 자주 사람들 사이에 쓰이는 이유는 아마도 이 두 해석 모두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 후자의 해석을 선호하는 듯하다. 자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정직하게 들여다보면 그들에게도 결정적 순간에 찾아온 행운이 있었을 것이다. 적절한 시기에 만난 멘토, 우연히 들어간 회사, 예상치 못한 기회. 이런 것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공도 없었을지 모른다.
주변의 일부 지인들을 보면 자신이 모든 것을 혼자 이룬 것처럼 말한다. 세상에 혼자 잘나서 된 것은 없건만, 그들은 자신이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기에 성공했다는 서사만을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함께했던 동료들, 기회를 준 선후배들, 묵묵히 뒷받침해 준 가족들의 존재는 희미해진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인성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자수성가'라는 신화를 지나치게 숭배하면서 생긴 구조적 문제다. 스스로 일궈낸 성공만이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 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도움을 인정하는 것을 약점으로 여기게 되었다. 마치 누군가의 도움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성취가 깎이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성숙함은 오히려 그 반대에 있다. 자신의 성공이 수많은 사람의 보이지 않는 기여 위에 세워졌음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겸손이자 지혜다. 아이작 뉴턴조차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중요한 것은 존중하는 태도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그 사람의 노력을 인정하는 것, 결과가 좋을 때 함께한 이들을 기억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자 성장의 방법이다.
노력에 저울을 달지 않는다는 것은 무관심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각자의 노력이 지닌 고유한 무게와 맥락을 이해하려는 적극적 관심이다. 똑같이 계단을 오르더라도 어떤 이에게는 가벼운 산책이고, 어떤 이에게는 고통스러운 여정이다. 숫자로 환산된 계단 수만으로는 그 의미를 알 수 없다.
글을 쓰다 보니 막연한 생각이 조금씩 선명해진다. 자신이 쏟은 땀방울을 내세워 타인을 폄하하지 말 것. 동시에 자신의 성취 뒤에 있었던 무수한 손길들을 기억할 것. 이 두 가지만 지켜도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성공에는 법칙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법칙의 가장 중요한 항목은 아마도 '감사'일 것이다.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해 준 보이는 손길과 보이지 않는 손길에 대한 감사. 그 감사가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저울을 내려놓을 수 있다.
노력의 무게를 잘못된 저울로 재지 않는 세상. 그곳에서는 각자의 수고가 존중받고, 서로의 성취가 축복이 될 것이다.
손에 쥔 저울을 내려놓고, 그 빈손으로 누군가의 손을 잡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지혜인지도 모른다.
때론 시 같은 문장으로, 때론 과한 설명으로 글을 적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 한 분이라도 잠시 마음이 머물렀다면, 그것만으로도 글 쓰는 사람으로서 충분히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