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혼자 잘 놀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마치 고독을 하나의 기술처럼, 습득해야 할 능력처럼 여긴다.
그러나 이제 나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연습이 아니라 현실이다.
선택이었던 고독은 어느새 운명처럼 일상이 되었다.
처음에는 의미 없는 통화와 형식적인 안부가 짐스러웠다.
그런 관계들을 하나둘 멀리하면서, 나는 모르는 사이 관계의 실타래를 스스로 끊어내고 있었다.
원망할 대상은 없다. 내가 먼저 손을 놓았으니까. 그렇게 하나씩 정리해 낸 관계들은 어느새 빈 공간을 만들었고, 그 공간은 생각보다 허전하고 크게 느껴졌다.
고독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무게에 적응해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외로움이 밀려올 때의 답답함과 무거움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이 있다.
바로 스스로에게의 가혹한 시선이다. 조금만 나태해져도 불안해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만 안심하는 내 모습이 때로는 고독 그 자체보다 더 고통스럽다.
혼자 있으면서도 혼자 있는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바보 같은 나.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홀로 있음 속에서 비로소 선명해지는 진실들이 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었던 날것의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절실함, 스스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간절함.
이러한 감정들은 사람들 속에서는 들리지 않던 내면의 목소리였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말했다.
"고독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고독이야말로 당신을 당신 자신에게 돌려줄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때로는 무섭도록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그것은 내가 온전히 나 자신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다. 타인의 시선이나 기대에 가려져 있던 진정한 자아와 대화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도 혼자였고, 죽을 때도 혼자일 것이다. 관계들은 그 사이의 아름답고 소중한 만남이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평생 함께해야 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고독을 견뎌내는 것은 단순히 혼자 있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근본적인 용기다.
진정한 관계는 자기 자신과의 화해에서 시작된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다면, 어떻게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겠는가. 내가 나의 고독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어떻게 타인의 내면 속 고독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고독은 때로는 냉혹하지만,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가르쳐준다. 바로 자기 자신과 평화롭게 지내는 법을. 그리고 그 평화를 얻은 후에 만날 인연들은 이전과는 꽤 많이 다른 차원의 깊이와 진실함을 가질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것은 내가 나 자신의 가장 진실한 친구가 되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고독 속에서 나와 화해한 사람만이, 세상과도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 오스트리아의 시인이자 작가.
때론 시 같은 문장으로, 때론 과한 설명으로 글을 적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 한 분이라도 잠시 마음이 머물렀다면, 그것만으로도 글 쓰는 사람으로서 충분히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