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닥 필름을 구매해서 사진기에 추억을 담아 현상소에 맡기고 며칠을 기다려 사진이 나오면 곱게 앨범에 추억을 꽂는 그런 시절. 그리운 이의 전화 한 통 기다리기 위해 종일 집에서 전화기만 바라보던 그 시절. 며칠을 종이에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사랑을 고백하던 그 시절. 삐삐에 적힌 숫자로 대화했던 그 시절. 공중전화에 줄을 서서 전화하던 그 시절.
전화 한 통, 문자 한 문장에 진심과 기다림이 있던 그 시절. 불편했지만 더 간절했고, 서툴렀지만 설레었다.
얼마 전 창고에서 오래된 앨범을 꺼내 보다가 깜짝 놀랐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내 삶이 단절된 것처럼 사진이 없는 것이다. 20대 초반까지는 빼곡히 채워진 앨범이 그 이후로는 텅 비어있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바로 핸드폰을 확인해 봤다. 역시나 핸드폰을 여러 번 바꾸면서 백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많은 사진이 사라진 상태였다. 클라우드에 저장해 뒀다고 생각했던 소중한 순간들도 저장이 되었던 건지, 아니면 애초에 저장도 안 되었는지 나의 무지로 없다.
예전에는 필름 한 통이 소중해서 정말 찍고 싶은 순간만 신중하게 골라 셔터를 눌렀다. 그 한 장 한 장이 모두 나름의 이야기를 가진 기록이었고, 현상이 끝나면 실망스러운 사진도 있었지만, 그조차 추억의 일부로 앨범에 고이 간직했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장씩 찍어대면서도 정작 남는 것은 별로 없다. 편리해진 만큼 소홀해진 것이 분명 존재했다.
편지를 쓸 때도 그랬다. 편지지를 고르고, 잘 써지고 잉크 똥 안 나오는 펜을 확인하고, 첫 줄부터 신중하게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다.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써야 했기에 마음을 정리하고 전하고 싶은 말을 곰곰이 생각한 다음에야 펜을 들었다. 아니 어떨 땐 연필로 지우고 적고를 반복해서 나름 완성한 글을 다시 잉크 똥 안 나오는 펜으로 정성스레 옮겨 적었다. 우표를 구매해서 붙이고 빨간 우체통에 넣으면서도 상대방이 언제 받을지, 어떤 기분으로 읽을지 상상하며 기다렸다. 지금의 메신저처럼 읽음 표시도 없었지만, 며칠 후 답장이 올 때까지의 그 설렘과 기다림 자체가 소중한 시간이었다.
음악을 듣는 것도 하나의 의식이었다. 레코드판을 조심스럽게 꺼내고, 먼지를 털어내고,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바늘을 내리는 그 과정 자체가 음악을 듣기 위한 준비였다. 녹음 잡음이 고스란히 들리고, 때로는 건너뛰기도 했지만, 그것조차 그 노래만의 개성이 되었다. 한 장의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것이 당연했고, 가사집을 펼쳐놓고 한 줄 한 줄 따라 읽으며 음미했다. 그뿐이랴…. ‘아이와’와 ‘소니’를 아는가? 양대 산맥인 두 카세트를 가지고 테이프 늘어질 때까지 좋아하는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그땐 그게 행복이었고, 삶이었다.
AI의 발전으로 너무나 빠르게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할 수 있는 지금이 대단하고 경이롭긴 하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몇 초 만에 답을 얻을 수 있고, 전 세계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깊이 있게 생각할 시간도, 기다리며 상상할 여유도 사라진 것 같다.
녹음 잡음이 고스란히 들리는 엘피판이나 카세트로 음악을 듣고, 절대 빠를 수 없는 종이 신문을 애써 찾아보는 게 독특한 취미가 된 지금. 그 아날로그 감성을 애쓰지 않아도 누릴 수 있었던 그 시절을 살았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행운이었고 감사함이다.
어느 젊은 가수가 태어나지도 않은 시절에 나왔던 노래를 멋들어지게 리메이크해서 노래하는 걸 보면, 그 시절의 불편함이 주는 감성이 절대 부족함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그 불편함 속에서 더 진실한 무언가가 피어났던 것은 아닐까.
불편함이 부족함이 아니듯이, 편리함이 풍족함도 아닌듯하다. 때로는 느림이 깊이를 만들고, 기다림이 간절함을 키우며, 불편함이 소중함을 깨닫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