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내리고 싶지 않았다

by 재아

수증기 분자들은 공기 중에 흩어져 자유롭게 떠다니다가 찬 공기를 만나면 서로 응결하기 시작한다. 점점 더 많은 분자들이 모여 물방울이 되고, 그 물방울들이 모여 구름이 된다. 구름 속 물방울들은 만유인력의 법칙에 맞서 버티고 버텼다. 공기의 부력과 상승기류가 잠시 붙들어 주지만, 물방울은 계속 커진다. 0.5밀리미터를 넘어서면 더 이상 공기가 지탱할 수 없다. 결국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질 수밖에 없다.


비는 구름을 통해 미리 알렸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바람이 달라지고, 습도가 올라간다. 오뉴월 뙤약볕까지 온몸으로 가리면서 신호를 보냈다. 하얀 옷 챙겨 입으면 저마다 고운 추억을 가진다 해서, 가끔은 동지섣달 추위에게까지 부탁했다. 하얀 눈으로 미리 예고하며, 솜털 잠바를 입혀 가며 알렸다.


그래도 가끔 예고 없이 쏟아질 때가 있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구름이 순식간에 몰려들고, 포화 상태를 넘어선 순간 한꺼번에 쏟아진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비가 내리는 게 아니다. 지구가 당기고 당겨서, 버티다 버티다 결국 떨어진 것이다.


하얀 옷도 입혀 보고, 오뉴월 솜털 잠바도 걸쳐 보며 너에게 알렸다. 습도계를 보면 알 수 있고, 하늘을 보면 예감할 수 있었다. 가끔 심술궂게 쏟아질 때도 있지만, 비는 예의가 없었던 게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신호를 읽지 못했던 것 아닐까.


"화(火)"도 그렇다.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것 같지만, 돌이켜보면 어떤 조짐들이 있었다. 구름이 모이듯 작은 징후들이 쌓여갔고, 포화점을 넘는 순간이 있었다. 그것을 화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화는 그저 법칙을 따랐을 뿐이다.
나도 그랬다. 버티고 버티다, 결국 떨어졌다. 누군가 나를 비난할 때, 나는 말한다. 나는 충분히 신호를 보냈다고. 상대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게 나만의 잘못인가.
비는 여전히 내린다. 법칙을 거스를 수 없어서, 무거워서, 어쩔 수 없어서. 나도 여전히 누군가에게 예고를 보낸다. 알아채 주기를, 우산을 준비해 주기를 바라면서. 비가 예의 없는 게 아니듯이.



때론 시 같은 문장으로, 때론 과한 설명으로 글을 적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 한 분이라도 잠시 마음이 머물렀다면, 그것만으로도 글 쓰는 사람으로서 충분히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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