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묘제 참석차 오랜만에 시골에 갔다. 제실 근처를 걷다 우연히 마주한 상수리나무 한 그루. 다른 나무들 사이에서 유독 묵직한 존재감으로 서 있다. 굵은 줄기, 거친 껍질, 그리고 규칙도 없이 뻗은 가지들. 이 나무가 여기까지 자라는 데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렸을까. 아마도 수십, 수백 번의 봄을, 여름을, 가을을, 겨울을 견뎌냈을 것이다.
봄이 오면 상수리나무는 연둣빛 새잎을 터뜨린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땅에서 물을 끌어올려 생명을 다시 시작하는 일. 그 작은 잎 하나를 위해서도 꽤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여름엔 장맛비와 폭염을 견뎠을 것이고, 때론 벼락에 줄기가 갈라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나무는 멈추지 않는다.
가을이 되면 상수리나무는 도토리를 맺는다. 작고 단단한 열매 속에 다음 생명을 담아낸다. 잎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 연습이라도 하는 듯 노랗게, 갈색으로 물들었다가 하나씩 떨어진다. 겨울엔 앙상한 가지만 남아 찬바람을 견딘다. 눈의 무게가 가지를 휘게 하고, 어떤 가지는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부러진다. 껍질이 벗겨지고, 속살이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봄이 다시 오면, 상수리나무는 그 상처 위로 새 껍질을 덧입는다. 부러진 가지 옆에서 새싹이 돋는다. 완벽하게 복구되지 않는다. 흉터는 남는다. 하지만 그 흉터가 이 나무를 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단단하게 만든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을 그렇게 버텨낸 상수리나무는 거목이 되어 산을 지키고, 수많은 생명에게 쉼터가 되어준다.
내 아파트 정원의 나무들도 마찬가지다. 정원사의 손길을 받는다. 병든 가지가 잘려나가고, 모양이 다듬어진다. 아플 것이다.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손질이 나무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 계절의 변화도 겪는다. 한여름 뙤약볕과 겨울 혹한을 모두 받아낸다. 그렇게 매년 한 살씩 나이를 먹으며, 그 나무는 우리 일상의 풍경이 되고, 작은 평온이 된다.
나의 삶도 그랬다. 봄처럼 새로운 시작이 설렜고, 여름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무언가를 이루려 애썼다. 가을처럼 결실을 맺기도 하지만, 때론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도 왔다. 겨울처럼 춥고 고단한 시간을 견뎌야 할 때도 당연히 있었다.
실패로 마음이 부러지고, 상처로 자존심이 깎인다. 예상치 못한 시련에 뿌리가 흔들린다. 누군가의 날선 말에 껍질이 벗겨진 것처럼 아리다. 때론 벼락처럼 갑작스러운 불행이 나의 영혼을 송두리째 갉아먹는다.
그래도 나는 자란다. 상수리나무가 상처 위로 새 껍질을 만들어내듯, 나도 아픔을 딛고 일어선다. 완벽하게 회복되진 않는다. 흉터는 남는다. 그래도 괜찮다. 그 흉터가 내가 살아온 증거고, 견뎌낸 시간의 기록이다. 부러진 가지 자리에서 새 가지가 돋듯, 나도 새로운 방향으로 다시 뻗어나간다.
산속 그 상수리나무를 다시 본다. 울퉁불퉁한 껍질, 여기저기 남은 상처, 구부러진 가지. 그 모든 것이 이 나무의 역사이고,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도, 우리도, 지금 그렇게 사는 중이라고.
상수리나무가 사계절을 온전히 겪으며 거목이 되듯.
때론 시 같은 문장으로, 때론 과한 설명으로 글을 적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 한 분이라도 잠시 마음이 머물렀다면, 그것만으로도 글 쓰는 사람으로서 충분히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