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운 사람

by 재아

요즘 주변을 보면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라는 단어는 자주 보이고 들린다. 하지만 '정겨운 사람'이라는 표현은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들었고, 썼을까. 문득 이 단어가 오늘 나의 머릿속을 맴돈다.


나름 좋은 사람은 객관적이다. 누가 봐도 괜찮은 사람, 흠잡을 데 없는 사람.

그리고 착한 사람은 도덕적이다. 옳은 일을 하고,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사람.


그런데 정겨운 사람은... 뭐라 한 단어로 정의하기가 어렵다. 지금 맴도는 머릿속 생각은 정겨운 사람은 하나의 정의가 아니라 다각적 경험으로 표현할 수 있고 관계 속에서 비로소 느껴지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최소한 내 기준에서는 정겨운 사람 앞에서는 아무 말 없이도 몸이 먼저 반응한다.

구겨진 마음이 펴지고, 기죽은 내 삶은 조금 여유를 찾게 된다.

"별일 없지?" 같은 평범한 질문에 하루가 조금 덜 버겁게 느껴진다.

그 사람 앞에서는 애써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그저 있는 그대로 있어도 괜찮다는 허락이, 말없이 전해진다.


만질 수 없지만 느껴지는 질감 같은.

헤어지고 나서도 남는 여운 같은.

가슴 어딘가에 스며드는 울림 같은.

정겨운 사람은 이런 감각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감각은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선한 작용을 한다.

나를 조금 더 나답게 만들고, 세상을 조금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든다.


정겨운 사람은 상대에게 대단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아니다. 거창한 위로를 건네지도 않는다.

다만 그 존재만으로 주변을 조금씩 바꾼다. 그 사람을 만나고 나면, 나도 모르게 다른 누군가에게 나 역시 더 부드러워진다. 마치 작은 불씨가 옆의 불씨를 지피듯, 한 사람의 정겨움은 또 다른 정겨움을 만들어내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정겨운 사람이라는 말이 요즘 잘 들리지 않는 것이.


이 말은 속도가 아니라 머무름에서,

성취가 아니라 관계에서,

증명이 아니라 느낌에서 피어나는 것이라서 더욱 귀해지는 단어가 되어 가는듯하다.


정겨운 사람.

우리가 잊고 지낸 이 이름을, 다시 불러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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