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선택들이 만들어 낸 오늘

폭풍의 언덕에서

by 재비


'출근 못 할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문자를 보고 이른 새벽에 잠이 확 깨버렸다. 순간 새벽에 Y가 있는 곳으로 픽업을 간다고 했던 이사님이 생각나서 급하게 바로 연락을 드렸고, 이사님도 일단 공장으로 출근하라고 하셨다. Y가 보낸 그 문자에 나는 답을 할 수 없었다.



공장으로 처음 출근 하는 날. 넓은 공간에 기계들은 가득 차있지만, 내 마음은 텅 비어있었다. 솔직히 왜 이렇게 됐는지. 내가 직원들의 마음을 몰라줘서? 내 처신이 잘못돼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얼마나 잘못했으면 이렇게 혼자 남아야 하는 건지 비참한 기분이 몰려왔다. 친했던 동생인 L도 잃었고, 열심히 따라와 주던 Y도 많이 힘들게 했었다는 죄책감과 박탈감이 느껴졌다. 텅 빈 공장에 혼자 들어서는데 눈물이 나서 머리를 푹 숙이고 있었다. 고개를 올려보니 이사님이 먼저 와 계셨고, 이사님 얼굴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나서 펑펑 울어버렸다. 이사님은 다 안다는 듯 어깨를 토닥이며 달래 주셨다. 그러면서 오늘 본점, 2호점에 제품이 안 가도 되니 얘기 좀 하자고 하셨다. 이미 기계 안에 시간 맞춰서 미리 넣어두었던 반죽들이 발효가 많이 되고 있어서 안될 거 같다고 했지만, 신경 쓰지 말고 앉아보라 하신 후 얘기를 이어갔다.



그러면서 이사님은 본인의 생각, 앞으로의 계획 등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 브랜드에서 보다 나가서 재밌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대표님과 같이 꾸린 사업체고, 지분이 있지만, 정리하고 제주도에서 같이 사업을 시작해 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해주셨다. 유통, 컨설팅 사업을 접목한 사업인데, 그때당시 센세이션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동업을 할 정도로 가진 게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 했다. 그러자 이사님은 내 실력이 자본력이라 금전적인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내가 지쳐있고 앞이 캄캄할 때 뭔가 그런 얘기를 해서 더욱 솔깃했던 거 같다. 나중에 그런 사업을 하더라도, 지금 현재 대구점 오픈은 눈앞에 있고, 완전히 외진 곳이기 때문에 생산 인력을 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서 당장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이사님은 사람이 구해질 때까지 같이 제품을 만들어 주기로 했고, 회사에 있던 바리스타 실장님이 청소나 다른 부분을 조금씩 분담해서 도와주기로 했다.



그때부터 시작됐다. 공장 주변에 숙소를 회사에서 구해줬고, 그 안에 여러 가지를 채워 뒀다. 혼자서 매장 2개의 제품을 만드는 건 별 탈없이 했지만, 대구의 매장은 생각보다 규모도 컸다. 기존에 하던 빵과 케이크, 쿠키까지 같이 했어야 했는데,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이사님은 원래 커피를 하시던 분이기 때문에 빵을 만들어 본 적이 전무했고, 처음부터 가르쳐 드려야 했다. 설거지할 시간도 없었다. 설거지를 쌓아 두면 실장님이 와서 정리를 해주셨다. 그렇게 하루에 20시간 19시간씩 일하다가, 결국에 대구 오픈당일 24시간 넘게 일하며 새벽 5시에 퇴근하는 기염을 토했다. 숙소로 가서 쪽잠 자고 나와서 다시 본점, 2호점에 보낼 빵을 만들곤 했다. 새벽까지 늘 빵을 만들면서 이사님도 많이 피곤해하셨다. 그만 만들고 가자고 하셔도 내가 오히려 조금 더 하고 가자고 했다. 왜냐하면 대구점을 오픈하고 나서 대표님이 항상 전화가 와서 하는 말씀이 ' 거기서 보내준 제품이 여기에 턱없이 모자라서 다른 빵집에서 빵을 사 와서 매대에 깔고 있다'였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생각이 들었다. 지분 3% 때문에? 아니다. 돈 때문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3%는 나는 한 번도 구경해 본 적이 없는 돈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서류상으로 뭔가를 작성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구두 계약일 뿐이었다. 내가 좀 더 똑똑했어야 했다. 내가 거기서 그렇게 일할 수 있었던 건 그냥 책임감 하나였다. 그 3%를 받지는 못했지만 3%만큼, 아니 내가 만든 제품을 깔아야 하는 모든 매장이 다 내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대표님의 발언을 그냥 듣기가 너무 힘들었다. 다른 집에서 구매를 해서 매대를 채우면 그건 더 이상 내가 원한 회사, 브랜드의 모습이 아니었다. 물량이 너무 부족하니 다른 사설업체의 제품을 납품받아서 대구로 보내기도 했다. 그쪽이 마진이 더 낫기도 하고, 내가 골라서 보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1달 가까이 쉬지도 못하고 모든 체력을 쥐어짜며, 링거를 맞아가면서 근무했다. 운이 좋게도 직원들이 하나 둘 구해지기 시작했다.



직원들에게 인계를 해주니 숨통이 조금 트이는 거 같았다. 숙소에 같이 살게 된 직원도 있었는데, 그 친구랑 같이 숙소 생활을 했다. 같이 저녁에 맥주를 마시는 날도 있었다. 퇴근 시간은 내가 더 늦었지만, 그래도 인원이 구해지니 업무가 수월해졌고, 휴무도 생기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사님은 잠깐 시간 내서 실장님들이랑(이사님 와이프도 실장님이었다.) 워크샵 겸 여행을 가는 게 어떠냐는 질문을 했다. 솔직히 그냥 쉬고만 싶었지만, 먼저 제안해 주셨고, 나중에 같이 일하는 부분에 대해서 말씀하시려고 하는 거 같아서 동의하고 1박 2일로 강원도로 향했다.



예상했던 대로 강원도 숙소에서는 사업얘기를 시작하게 됐고, 사업의 처음은 제주도에 쇼케이스 매장을 하나 내는 거였다. 거기에 내가 만든 빵과 디저트 그리고 이사님이 만드는 커피로 사람들에게 인지도를 쌓고, 어디까지나 쇼케이스 매장이기 때문에 일찍 문을 닫고 저녁이 있는 삶을 살자는 거였다. 저녁에는 바다에서 직접 잡은 문어로 라면도 끓여주신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 매장을 필두로 컨설팅을 해주고, 재료들이나 기계를 넣어서 마진을 남기는 유통도 같이 하실 거라고 했다. 나중에는 재료 수입얘기까지 했는데, 그건 먼 훗날의 얘기하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봤다. 나는 제주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제주도에서 삶은 어떨까. 일본에 있을 때는 가족과 떨어져 있어도 괜찮았는데, 제주도에 쭉 살아야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 그리고 제주도에서 제품은 어떤 걸 만들지? 이런 생각이 주를 이뤘다. 뭔가 여기서 일하는 것보다 행복한 그림이 그려지는 건 확실했다. 멤버는 실장님 2명, 이사님, 나 이렇게 4명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이사님의 큰 그림을 듣고, 희망도 생겼고, 순차적으로 퇴사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대표님께는 일을 계속하기 힘들다고 했고, 처음에는 좋게 얘기하시더니 나중에는 화를 내시기도 했다. 당장 그만두는 것도 아니고, 인계를 하고 퇴사를 할 거니 걱정 마시라고 했다. 같이 숙소를 쓰는 친구가 S였고, 다른 한 명의 친구인 H였다. 둘 다 또래였고, 내가 자리를 비울 때는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해줬다. 나의 퇴사의 소식을 전달해야 할 것 같아서 고민하고 있는 찰나에, H가 S에 대한 얘기를 했다. S가 한 번씩 빵을 구매해 간 적이 있는데(그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금액보다 더 많이 가져간다고 했고, 나에 대한 얘기도 안 좋게 했다고 했다. 자초지종을 확인하고, 사실확인부터 했어야 했는데, 그때 뭐가 씌었었는지 H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다 믿게 되었다. 이미 H에 말을 거의 믿는 상태로 S에게 확인을 하니 S는 너무 억울하다며 퇴사하겠다고 했다. 인계도 하지 않고 퇴사라니. 사실 화가 났었다. 숙소에 있을 때도 이것저것 챙겨줬었는데.. S에게 숙소 열쇠를 나에게 주고 잘 정리하고 가라고 차갑게 얘기를 했다.



그 이후로 H와 나는 둘이서 일하게 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표님이 내가 퇴사한다고 하니, 공장을 대구로 옮긴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결국에는 H는 본점으로 가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본점에는 나를 면접본 제빵실장이 다시 재입사를 했다는 거였다. 대표님이 다시 입사를 시켰다는 얘기를 들었다. H는 그래도 집이랑 가까워져서 더 좋다고 긍정적으로 말했다. 그게 기특해서 라인업이 다양하지는 않지만 가서 잘해보라고 얘기했고, 남은 날까지 같이 마무리 잘해보자고 했다.



어느 날 새벽에 나이 지긋한 남자 2명이 공장 앞에 서있었다. 그때 당시 40대 중반? 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대구에서 사장님이 인계받으라고 보낸 사람들이었다. 작업 중에 담배를 많이 피워 대기도 했고, 위생관념도 없었다. 인계는 잘해줘야 할 것 같아서 얘기를 해주면 돌아서면 까먹고, 애초에 인계를 받을 생각도 없어 보였고, 집중하지도 않았다. 퇴사날은 점점 다가오는데 나는 인계를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고 노력했다. 둘 중 한 사람이 경력이 더 많았고, 그 사람은 직급이 부장이었는데, 퇴사할 사람이라도 현재 회사에서는 내가 직급이 높으니 나이를 떠나서 듣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데, 이거는 뭐 벽 보고 얘기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어느 날 오븐을 보게 시켰는데, 하얗게 구워야 하는 빵을 팥빵처럼 진하게 색을 내서 내가 '몇 번을 인계해 드렸는데 왜 자꾸 실수를 반복하세요?' 하면서 뭐라고 했더니. 앞치마를 던지며 얘기했다.



'아이씨 진짜 어린 X이. 더러워서 일 못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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