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선택들이 만들어 낸 오늘

춘추 알바시대

by 재비

돈맛을 봐버린 나는 받고 있는 용돈에 전혀 만족하지 못했다.

하지만 중학생을 써주는 사장님은 없었기에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그냥 평범하게 학교만 다니는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때 정말 이제는 진짜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여러 군데 찾아봤다. 결국 면접 합격해서 일을 하게 된 곳이 '파파이스'였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가맹점이 많았다.


첫날에 들어가서 둘러보니 내 또래는 거의 없고, 고등학교3학년 언니들이 많았다.

제일 먼저 '땡큐박스'라고 되어있는 곳을 청소하게 됐다.

땡큐박스는 그냥 쓰레기통이었다.

사람들이 먹다 남은 콜라, 그리고 일반 쓰레기 등등

그때 5월인가? 그래서 날파리 초파리가 엄청 많아서 자주 치워줘야 했는데

그게 내 몫이 되어버렸다. 막내라서? 그런가? 왜 이걸 나만 해야 하지? 생각했지만,

각 잡고 하는 알바가 처음이라 원래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원래 있던 언니의 친구들이 나보다 나중에 들어왔는데,

그 언니들은 땡큐박스를 한 번도 청소를 안 했다는 사실...


주문받고, 주방에 오더 넣고, 음료랑 메뉴 세팅 해주고, 포장해 주고, 그런 일들을 할 줄 알았는데

그런 일들은 경력자들만 하는 거였고 처음에는 그냥 청소하고, 주방뒤쪽에 들어가서

무거운 기계에다가 비스킷 만들어서 굽고? 그런 일을 하는 거였다.

하루종일 서서 일하니 다리가 너무 아프고 퉁퉁 부었다.

밥으로 햄버거를 줘서 매일 먹다 보니 살이 쪘다.

처음에 받은 유니폼이 조금씩 작아져서 저녁을 굶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성장기라 배가 미친 듯이 고파서 굶을 수가 없었다.

약간 아웃사이더 같은 느낌이었지만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기가 학교도 아니고 싫다는데 친하게 지낼 생각도 없고, 용돈을 버는 것이 더 좋았다.


주방에서 일하는 친구 중에 한 친구가 무뚝뚝했지만 나한테 잘해줬다.

마감까지 같이 일하게 되는 날은 거의 없었지만

무거운 거 있으면 도와주고, 집이 반대편인데 집에 가는 버스도 같이 기다려줬다.

고마웠다.


그러던 어느 날 매니저에게 '요즘 피곤해 보이는데 좀 쉬는 게 어때?'라는 식의

해고통보를 받았다.


이유인 즉

나에게 유일하게 친절했던 친구가 남자애였다.

매니저한테는 두 명의 여동생이 있었는데, 자주 매장에 와서 얼굴을 비췄다.

둘째는 내가 봐도 날씬하고 예쁜 모델 같은 느낌이었고, 셋째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중학생이었다.

근데 그 중학생 동생이 나에게 친절했던 그 남자애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동생이 지금으로 따지면 SNS인 '다모임'이라는 사이트에 나로 추정되는 저격글을 올렸다.

그걸 보고 나도 참을 수 없어서 같이 올렸었는데, 그걸 매니저가 본 것이었다.

내가 해고되는 면담자리에서 언급하더라.

매니저는 그때 당시 20대 중반정도로 나이가 좀 있었는데 그런 사적인 감정 때문에

나를 해고한 게 아직까지 이해가 안 간다.


파파이스를 그만두고 다른 곳에 수소문해서 여러 가지 알바를 했다.

보통은 음식점에 홀서빙 일을 많이 했는데, 제대로 월급을 주지 않고,

일당으로 일했는데 일당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괜찮은 알바자리를 찾으며 수많은 곳을 거쳤다.


그러다 같은 반 친구의 소개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는데,

거기에서 대학교 때까지 오래 알바를 하게 된다.


'조선칼국수'라는 부산에서 유명한 밥+술집이었는데 줄여서'조칼'

칼국수가 메인이지만, 수제비, 비빔밥, 전, 막걸리 등등

괜찮은 먹거리들이 많아서 사람이 꽤 많이 왔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는 손님이 넘치듯이 몰려오는 지옥이었다.

고등학생들은 시급을 적게 줘도 기꺼이 일했다. 일시 켜주는 데가 잘 없었기 때문이다.

시급을 적게 줘서 그런지 성인 알바는 거의 없었고, 고등학생들이 많았다.

그때 당시에 최저시급이 2800원인가 했었는데 나는 2500원을 받고 일했었으니까.

학생시절 아르바이트 했던 언니 오빠들이 대타로 오는 경우가 있어서

좋은 언니 오빠들을 많이 만났다. 아르바이트하면서 남자친구도 만들고 재밌었다.


다 좋은데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쉬는 날이 없었던 것.

주 7일 근무인데, 피 끓는 청춘이라 너무너무 놀고 싶을 때는 한 번씩 연락 안 받고 잠수도 탔다.

예를 들어 6시까지 알바 가야 하는데 그날은 학교에서 소풍 가던 날이었다.

교복 안 입고 옷도 잘 차려입었고, 저녁에 친구들이랑 너무 놀고 싶은데,

알바를 가야 하니까 그냥 제쳐버린 거다.

그리고 나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출근했고, 죄송하다고 넉살 좋게 그냥 앞치마 입고 일한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뭔가 미친것 같지만, 휴무 없는 거 진짜... 지금 시대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노동력 착취.


조칼 알바를 하면서 배운 거는, 식당이모들이 많이 드세다는 것.

하지만 나만 싹싹하게 하면 이모들이 잔정이 많아서 잘해준다는 사실.

바쁘고, 음식 잘못 나와서 실랑이할 때. 화날 땐 같이 소리 지를 때도 있었다.

솔직히 옛날에는 싸움을 피하는 쪽이었다.

뭐 육탄전을 벌이거나, 말싸움해서 이길 수도 있겠지만 감정소모를 많이 기피했던 것 같다.

일을 하면서 많이 거칠어졌다.

'어른이니까...'라는 생각으로 착하게 '네네'만 해서는 절대로 이 험난한 알바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는 사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조용하고 소극적이지는 않지만, 하나하나 걸고넘어지는 피곤한 성격이 아니고,

겁이 많은 내가, 뭐든 그냥 넘기지를 않고, 하고 싶은 말을 그냥 해버리는 성격으로 바뀌어 버린 게.


그렇게 대학생이 되자마자 동아리 활동이다 뭐다 해서 주말에만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조칼을 그만두고 호프집이나, 치킨집, 콜센터 같은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연하 남자친구를 만나서 놀고먹느라 학교를 안 나가서 학자금 대출이 안돼 휴학을 하게 되었다.


동네에 오래 일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동네 빵집에 손으로 쓴 '알바구함'을 보고

집에서 무작정 이력서를 써서 매장에 맡기고, 다음날 면접을 보게 됐고 합격해서 일하게 됐다.

지금은 부산에서 많이 유명해진 곳이고, 매장도 많지만 그때 내가 일하게 됐을 때는 본점 하나뿐이었다.

빵집 매장알바는 처음이었다.

매번 홀써빙만 하다가 생소했고, 최대 난제는 내가 돈 주고 빵을 사 먹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아예 없다는 것.

빵은 매점이나 편의점에 파는 피자빵만 먹어봤었고, 먹어봐야 식빵, 팥빵정도.

처음 매장에 출근하는 날에 제품 가격을 외워야 했는데, 세상에 빵 종류가 이렇게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빵과 과자를 만드는 사람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선택들이 만들어 낸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