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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carver Jul 13. 2017

약간의 타협

[혼삶의 발견]

자라면서 부모님을 보고 생각한 것이 하나 있었다. 


절대 대출은 받지 말자. 


챙겨야 할 동생들이 많았고, 이래저래 집안 대소사도 많았던 터라 늘상 얼마 간(?)의 대출에 시달려야 했던, 우리 엄마는 통장에 무수히 찍히는 이자를 보면서 입버릇처럼 말하셨다. '은행 배 불려주는 일 하지 말아라.' 그 말에 힘입어 이제껏 마이너스 통장도, 대출도 내 인생에는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나 어찌 된 것이 7년을 쉬지 않고 일했고, 나름 연봉 꽤나 된다는 직장이고, 해외근무까지도 했건만, 서울 하늘 아래 '방 한 칸' 얻기가 어려웠다. 방이 여럿 있는 아파트나 빌라가 아니라, 그저 원룸 말이다. 내 상황이면 그래도 양호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서글퍼졌다. 도대체 서울 하늘 아래 그럴싸한 아파트 한 채를 얻으려면 몇 년을 일해야 하나 하는 자조적인 한숨. 


관심이 없었기에 당연히 담을 쌓고 살았는데, 막상 대출을 받자고 하니 은행을 알아보랴, 이율 알아보랴. 정신이 없었다. 물론. 미리 알아봤다면 좋았겠지만 관심 무의 영역인지라 미루고 미루다가, 잔금이 나가기 직전 주에서야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대출의 첫 느낌은 어쩐지. 진정한 사회인으로서 첫 발을 디딘 기분이다. 


그 첫 발의 의미는 '약간의 타협'과 '진정한 부채감'이었다. 

물론 내 개인적인 욕심도 한몫했겠지만, 사회에서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지고 살다 보면 내 원칙에 맞지 않는 타협을 할 때도 있다는 것. 그리고 부모님의 돈이나 지인의 돈 아닌, 완전한 타인- 금융권의 돈이라는 리얼 빚. 


사회생활을 한 지 7년 만에 진정 독립을 이루었다. 

처음으로 금융권의 돈에 손을 벌리게 되었다. 

그리고 꼼짝없이 1년은 직장에 묶여 살아야 한다. 


내가 살아갈 혼삶의 첫 발. 대출과 향후 1년간의 (강제된) 로동.....



몇 달의 생활을 해본 결과, 정기적으로 빚을 갚는다는 것은, 상당히 절제된 생활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리고 월급 다음 날이 되면 가슴이 두근두근 한다. 몇 시에 대출금이 나갈까? 

좀 어이없지만, 돈이 나갈 때 뿌듯하다. 그만큼 빚이 줄었으니 말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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