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lowcarver Mar 24. 2017

공간의 조건

[혼삶의 발견] 어떤 곳에 살 것인가

독립을 위해서 가장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아마도 공간.


내 일상을 영위할 공간. 


  그 공간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지?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얼마만 한 공간에서, 어떤 공간에서 살고 싶은지? 그런 것들은 예전의 나에게는 막연한 추상이었을 뿐이다. 부모님이 사는 집에는 언제나 나의 방이 있었으니까. 거주 공간을 선택하는 건 항상 부모님의 몫이었고 나는 그저 따라가서 방 한 칸을 차지하면 되었다. 학교든 학원이든 늘 공간의 근처에 부속되어 있었으니 그런 것은 내가 고민할 거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최초로 거주에 대해서 고민했던 건, 입사 3년 차쯤이었던 것 같다. 회사까지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야 하는 1시간 반의 이동거리가 연차와 야근이 누적될수록 풀리지 않는 피로와 여가시간의 몰살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집을 옮기게 되었지만 이 때도 독립이 아닌 공간의 이동이었을 뿐, 부모들의 울타리 안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선택도 나의 몫이 아니었고, 공간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으니 그저 회사에서 좀 더 가까운 거리로 울타리를 옮겼던 것뿐이다. 

  그 후 이어진 해외근무 역시 회사의 선발이었고, 나는 회사가 정해준 지역이 최초에 내가 원했던 지역이라는 것에 흡족해하며 비행기를 타고 다음의 거주 공간으로 이동했다. 게다가 해외에서 지냈던 기숙사는 사무실에서 그보다 더 가까울 수는 없는 위치였기에 더더욱 만족했었다.


공간. 그것은 내게 선택된 것이었다. 위치도 크기도 형태도 대개는 주어진 것을 수용하며 지내왔다. 그러니 독립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공간은 참으로 막연한 것이었고 그걸 고민하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럽고, 무거웠다. 나는 그저- 내가 숨 쉬고 먹고 마시는 이토록 익숙한 공간에 대해서 참으로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것, 아무런 고민도 성찰도, 바람도 없었다는 것에 놀랐을 뿐이다. 


각설하고, 고민하다 보니 나에게도 내가 살아갈 공간에 대한 조건이랄까 기대치가 몇 가지 있었다. 


회사와의 거리. 공간의 확정성, 나의 경제력만으로 선택 가능한 곳-정도?

물론 햇볕이 잘 든다거나, 이왕이면 소음이 적다거나,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라거나 자잘한 희망사항이 있었지만...


우선, 회사에서는- 무조건 가까워야 했다. 출퇴근 시간에 걸리는 시간과 그로 인한 소모가 얼마나 큰지, 정신적, 체력적으로 얼마나 지치는지 다년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십분 거리와 한 시간 거리는 퇴근 후 삶의 질을 크게 좌우한다. 길 위에서 버리는 시간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었다.   


두 번째는,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는 확정적인 나의 공간. 1년이나 2년의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비워줘야 하거나, 매달 내야 하는 월세에 대한 고민이 없는 온전한 공간이 필요했다.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작아도 어떤 상황에서도 삶을 유지할 수 있고, 어디를 헤매다 와도 편하게 발 뻗고 쉴 수 있는- 내 소유의 공간. 


마지막은, 도움받지 않을 것. 물론 월세도 전세도 아니기 위해서는 웬만한 지출로는 어림도 없을 거였다. 나의 주머니 사정을 탈탈 털어보니, 적어도 '방'하나쯤은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나를 스쳐간 쓰나미 같았던 업무가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야근에 몸부림치면서도 잘 버텨주었던 체력에 대견함이 느껴진다.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심플하게 살고 싶다. 요즘 미니멀이 유행이기는 하지만. 꼭 그래서라기 보단. 해외 근무를 다녀온 후로는 어쩐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하는 고민이 생겨서 소비에 대한 욕구가 줄었다. 최소한의 물건으로 가볍고 단순하게 살고 싶었다. 


조건은 조건일 뿐. 무엇이 되고, 무엇이 안될지는 우선 부딪혀봐야 알 것이다. 

처음 나의 공간, 나의 방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만 해도 그것이 이렇게 지난하고, 생각할 게 많고, 고민스럽고, 그간의 무심함과 무지, 선택 장애에 대한 크나큰 자책의 길인 줄을 알지 못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내가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때는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챙기고 있음을 예전에는 몰랐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 숨 쉬듯이 당연하게 누리고 있던 것들이 부모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능한 것이었다는 걸.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다 보니 독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